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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 Nov 18. 2024

찾아오는 시, 머무르는 시, 다가가는 시

꽃이 된 시와 만나다



쓸쓸한 기온이 따스한 온기로 바뀌더니 다시 차가운 냉기가 뼈를 파고드는 시간이 다가왔어요. 유난히도 추위가 힘든 사람은 긴 겨울이, 기나 긴 겨울방학이 다가오기 전부터 숨이 막히는 듯, 정체를 알듯 말 듯 한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매일 걷던 길도 내가 닿는 시선이 분명 같을 텐데 유독 시리고 추워 보이는 건 제 마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시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지만 유독 올해 가을은 어느 때보다 시로 가득하고 시로 충만하게 보냈던 것 같아요. 혼자 시를 읽고 시집을 구경하다 마음에 드는 시집을 발견하면 놓칠세라 얼른 구입하고 좋은 시를 만나면 종이에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필사하며 느꼈던 감동을 함께 하고 같이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더 따뜻했고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혼자 시를 읽고 습작하는 모습을 본 친구들의 응원으로 시에 대한 저의 이야기들을 브런치 북으로 풀어낼 수 있었고 부끄러워 계속 깊은 동굴 속으로 던지고 밀어 넣었던 자작시도 선보일 수 있었어요. 세상에 덜컥 나와도 되나 싶은 저의 고민들을 시로 치유하는 감사한 시간들이었어요. 슬프고 힘든 일들이 많다 보니 암울한 단어들을 자꾸 찾게 되었어요. 스스로 그 틀을 벗어나기 위해 따뜻한 시를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추워지는 계절에 몸과 마음은 움츠러들지만 눈과 손은 따뜻해지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에게 눈이 익은 시, 시인이 많기도 적기도 합니다. 시중에 나가 서점을 가도 시집은 많으나 아는 시인이 많이 없어서 어떤 시를 읽을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저는 그저 차분히 시집들을 뒤적여 보다가 유난히 마음에 드는 시들이 눈에 띄는 시집이 있더라고요. 제가 운율과 리듬감을 좋아하다 보니 반복된 어구나 일정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시를 주로 읽고 좋아하는 편이에요. 날카로운 가을바람에 얼른 커피 한잔 하러 들어가 손과 몸을 녹이며 익숙한 시 한 편을 읽어 내려가면 어느새 추위로 복잡한 이야기로 어지러웠던 마음이 차분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시인과 시이지요? 힘든 요즘 같은 시기에 저는 이 시가 눈에 들어왔어요. 유명한 시이기에 알고는 있지만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지는 요즘, 저의 아픈 마음을 더 울려주었어요. 목표가 생기면 끝까지 파고들어야 하는 성향이지만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진행과정 중에 순식간에 날아와 박히는 예고 없는 충격과 절망은 열심히 달리려는 열정들을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게 했어요. 그렇게 뭉그러진 마음들을 다시 추슬러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회복기가 너무 자주 돌아오다 보니 정신적인 피폐를 수도 없이 경험해야 했어요. 그렇게 무기력과 맞닿을 즈음 도종환 시인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만나 상처 난 마음을 위로받았습니다.


세상풍파가 닥쳐오면 한 없이 무너져 내리며 하늘을 원망하고는 하지요. 모두들 평화롭고 아름답게만 살아가는 데 나만 이렇게 끔찍한 고통이 다가오다니. 너무 속상하고 혼자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막막하곤 합니다. 하지만 두세 걸음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광경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평온하고 문제없이 즐거워 보이는 모든 이들도 사실 무너지고 쓰러지고 일어서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사실이요. 사람만 그럴까요 꽃들도 나무들도 새와 나비들도 모두 그렇게 흔들리고 거친 바람을 이겨내고 피어내려 애를 쓰고 있어요.


내 안에 갇혀 힘든 순간이 오면 자꾸 내 안에 들어가지 말고 시를 읽고 느끼며 시 안으로 나를 꺼내오길 바라요. 그렇게 시에게 위로받고 시에게 상처를 보듬어 받으며 고단한 굴곡들을 안전히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청소년기에 처음 만난 이 시는 마음을 떨리게 했습니다. 남자친구도 없었고 연애는 해볼 생각도 못하던 나이였으나 감수성만큼은 잘 갖추어졌었나 봅니다. 누군가에게 꽃이 되는 상상 해보셨나요? 절 불러주고 제 꽃이 되어줄 남자친구는 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지만 다행히 제게 와서 꽃이 된 사랑이 둘이나 있어요. 세상 가장 소중한 두 아이들이지요.


제 인생에서 아이들을 낳기 전과 아이들을 낳은 후로 크게 나뉘는 것 같아요. 엄마를 만들어 준 것도 더 깊게 고민하고 사고할 수 있는 것도 주어진 상황 이외의 새로운 도전을 가능하게 한 모든 이유가 두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엄마를 부르고 엄마가 아이들을 부르는 상황은 항상 전투로 점철된 피투성이지만 가끔은 서로에게 꽃이 되기도 합니다. 훗날 아이들이 성장하여 품을 떠나면 애틋하게 불러보고 싶은 저의 꽃이 되겠지요?



 꽃

                                   이육사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約束)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따라 타오르는 꽃 성(城)에는
나비처럼 취(醉)하는 회상(回想)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청포도, 광야로 유명한 시인 이육사의 시집에도 ’꽃‘이라는 시가 있어요. 이육사 시인은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잃었던 시인이지요. 그래서 이 시는 일제 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의 광복을 열망하는 시로 해석이 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던 우리나라의 상황이지만 마침내 꽃이 피듯 해방을 맞이할 거라는 의미 합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강조하면서 시인의 광복에 대한 의지와 열망을 보여주고 있어요


저는 힘든 상황에 놓인 채 이 시를 읽었을 때 시인의 독립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는 시구에 감동하면서 절망을 경험하는 개인의 삶에도 투영해 보게 되었어요. 가끔 부모님들을 모시고 대학병원을 가면 아프고 힘든 환자가 항상 너무 많더라고요. 현실에서 잠시 한 발짝 떼고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면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느라 끝없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다른 이에게는 작아 보이는 상황일지라도 본인에게 닥치면 엄청난 크기로 다가온다면 이육사의 ‘꽃’을 천천히 읽어보면 어떨까요?


비도 오지 않는 절망 속에서도 피어나는 빨간 꽃, 추운 겨울이 지나면 숨어있던 꽃들이 다시 아름답게 피어나는 광경이 그려지시나요. 꽃들이 다시 피어나고 나비가 날면 우리에겐 봄을 의미하는 그야말로 고난이 끝나고 행복이 찾아오는 느낌을 줍니다. 누구에게나 힘든 상황이 오지만 또 극복해 내고 새로운 좋은 일들도 생겨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절망을 빠져나오려는 단단한 생각을 배우며 다시 한번 딛고 일어나 힘을 내어보는 하루가 되시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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