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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 Nov 04. 2024

시조의 매력

시조를 구경해 볼까요?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泰山雖高是亦山
登登不已有何難
世人不肯勞身力
只道山高不可攀


               <태산가 - 양사언>



모두 읽는 동시에 아~ 하는 탄성 뱉으셨죠? 어디선가 한 번을 들어봤을 이 시조를 기억하시나요? 저는 아직도 입에서 줄줄 새어나올 정도로 학창시절 열심히 다양한 시조들을 외웠었어요. 조선시대 명필 중 한 분인 양사언 선생의 시조인데 글씨도 잘쓰시면서 시조도 이렇게 멋지게 쓰시다니, 기가 막히는 감탄을 불러 일으킵니다. 지금은 현대 시를 주로 접하다보니 너무 길어진 문장들도 시로 불리우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는 이렇게 규칙적이고 압운과 율격이 살아있는 시조를 더 좋아하고 시처럼 더욱 느껴지더라구요.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이지만 ‘시조’에 대해 맛을 잠시 보고 갈까요? 시조 이전엔 향가가 있었지요? 시조는 고려 후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3장 6구로 구성되어 있어 장단을 넣으면 마치 창을 불러야 할 것만 같아요. 시처럼 쓰여진 가사의 노래를 부르는 느낌처럼요.


많은 의미를 담고 있고 때로는 읽고 이해하기가 어려운 시들. 특히 고시들은 수 천번을 되뇌이며 외워도 감탄스러운 압운을 지니고 있더라구요. 특히 아직도 아이들에게 읊어줄만큼 뼈에 박혀버린 '하여가''단심가'가 그렇습니다. 시대 상황과 자신의 뜻을 시로 표현한 정몽주와 이방원의 능력에 감탄하며 시험을 위해 외웠으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머릿속을 떠나지 못하는 시조의 위대함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 하여가 ]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 듯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고저



[ 단심가 ]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넘어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 청구영언
《 시조원문 》


약천 남구만의 작품인 이 시는 학교 시험을 위해 쪼개고 분석하며 외워야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시조를 읽어보니 이토록 평화로울 수가 없어요. 실제로 남구만은 백성들을 사랑하고 존경받는 관료였고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른 인재였는데 희반 장씨와 인현왕후의 사건들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못했고 당파 싸움에서 소론의 우두머리로 찍혀 함경도로 유배를 가기도 했어요. 숙종의 사랑을 깊이 받았던 재상이었지만 우리에게는 [ 동창이 밝았느냐 ]라는 시조로 익숙합니다.

 


현존하는 시조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청구영언‘ 이라는 조선의 가곡집에 실려 있는데요, 조선시대 문신이자 정치가였던 남구만의 이 유명한 시조도 들어있어요. ‘청구영언’은 조선 후기까지 구비 전승되던 580수의 노랫말을 수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평민이었던 김천택시인님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는 자료입니다. 시조 정리에 큰 힘을 써주신 시인이 계셨기에 이런 멋진 시조들을 감상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시조(時調)란 고려(高麗) 말엽(末葉)부터 발달(發達)하여 온 우리나라 고유(固有)의 정형시(定型詩)의 한 형태(形態). 시조(時調)에는 형식(形式)에 따라 평시조(平時調), 사설시조(辭說時調), 엇시조(旕時調)의 세 가지가 있다고 네이버 사전에 명시되어 있어요. 옛 것이다보니 한자어가 많이 들어가지면 명확한 뜻을 위해 한자어도 같이 한글 곁에 두었습니다.


우리가 배운 교과서나 시인의 이름을 들어본적이 없는 하지만 시를 좋아하고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분이라면 꼭 언급되는 한 분이 계십니다. 조선 후기 역관이었던 ‘이언진’입니다.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가서 보여준 글씨와 문장들로 일본인이 극찬한 천재 시인이었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연암 박지원 선생에게 시를 보여주었다 혹평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27세에 요절하기 전 모든 시를 불태워 버리려는데 아내가 모아둔 시들이 있어 다행히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땅어 넘어진 아이 앙앙 우니까
아빠도 걱정하고 엄마도 걱정
닭은 스스로 껍질서 나와 어미젖 필요 없고
소는 나자마자 걸어 다녀 강보가 필요 없네

兒墮地便啼哭, 阿爸悶阿婆惱.
雞生啄不待乳 犢生走不待抱.


육아하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아이를 키우는 건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나 봅니다. 이언진 시집에 들어 있는 많은 시들 중에는 가볍기도 뭇겁기도 심각하기도 삶과 밀접하기도 한 다양한 시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등불은 붉고 향 연기는 파르스름하고
평점(評點)을 가한 책들 책상에 가득네.
꽃 한 송이 꽂혀 있는 옛 도자기의
그 푸른빛 잠자리의 눈과 같아라

燈暈紫香穗青, 丹鉛雜書棲案.
古甆瓶挿朶花,  碧色同蜻蜒眼.


시를 지어낸 수많은 시인들과 수많은 시들을 다 기억하고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시를 통해 만나게 되는 다양한 표현과 이야기들에 귀기울이다보면 이렇게 남겨져 전해질 수 있는 시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습니다. 시조들을 읽고 그 기록들을 보고 있노라면 시조를 써낸 당시가 아니라도 언젠가 누구에게든 큰 울림이 되고 위로가 되고 감동이 되는 시가 존재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도 언젠가 그런 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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