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살로메 두 손에
20세기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으로 평가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가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시를 헌정한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그 유명한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우리에게도 익숙한 유명 철학자 ‘니체’의 구애를 거절하고 천재 시인 릴케와 프로이트까지 많은 유명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사랑을 받은 여인으로도 유명한 뮤즈 루 살로메. 릴케는 루를 만나 이름도, 필체까지 바꾸고 루를 위한 시를 써서 그녀의 두 손에 헌정했습니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고민했던 것 중 하나가 필명이 갖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필명에 대해 생각하던 중 매력적인 그녀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가 떠올랐고 짧고 간결한 그녀의 이름을 빌려 ‘Lou'라는 필명으로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어요. Lou라는 필명을 꼭 하고 싶었던 것도 지금도 이름보다 ‘루’ 작가라는 명칭이 좋은 이유도 말과 글로 또 대화를 통해 지성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루 살로메처럼 매력적인 작가가 되고 싶은 바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식의 부피도 한참 부족하고 대화로 설득하는 기술을 갖추지 못해 스스로가 안타깝지만 계속 읽고 쓰다 보면 조금은 글을 통해서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지 않을까요? 14살 연상의 루를 만나 깊은 사랑에 빠졌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르네’라는 이름도 루의 조언으로 ‘라이너’로 바꿀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토록 누군가를 절실히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릴케의 시가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릴케는 프라하에서 시집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한 발 내디뎠고 루 살로메를 만나 러시아를 함께 여행하며 종교성을 나타내는 개성 있는 시집을 내게 됩니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유명한 시집 [ Das Stunden-Buch 기도시집 ] 이 바로 그 시집입니다. 14살이나 연상은 여인이 대체 얼마나 매력적이길래 이렇게나 깊이 사랑에 빠진 건지 너무 궁금했어요. 물론 릴케가 루에게만 헌신하는 일편단심을 아니었을지라도 루를 가장 많이 사랑했고 생의 마지막까지도 루를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아마 릴케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기에 루에게서도 그런 사랑을 받길 원했던 게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보았습니다. 릴케 이전에 먼저 태어났던 딸이 죽어 큰 슬픔에 빠졌던 릴케의 어머니가 아들인 릴케를 여자아이처럼 키우려고 머리를 기르고 여자아이 옷을 입혔던 걸로 유명하답니다. 루를 위한 릴케의 시 중에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루에게 갈구하는 듯한 시가 있어 소개합니다.
외딴 길목에서
멀리 있는 외딴 길목에서
활짝 핀 장미를 보았네.
내 힘으론 기를 수 없는 어린 꽃가지를 가지고
나 그대를 꼭 만나 보려네
고향 잃은 핼쑥한 아이들과 함께인 듯
나는 그대를 찾아 헤매네.
나의 가련한 장미들에게
그대여, 어머니가 되어줄 수 없을까.
첫눈에 루에게 반한 릴케는 끊임없이 편지를 보냈고 4년 정도를 함께 했다고 합니다. 루는 이미 결혼을 해서 남편은 있었지만 우정 이상을 원하지 말라는 조건으로 남편과 결혼을 했었기에 자유롭게 릴케와 만났던 것 같아요. 릴케는 루를 위해 편지를 쓰고 시를 지었고 루는 릴케에 관한 책 ‘하얀 길 위의 릴케‘를 집필하였습니다. 릴케가 ‘루 살로메 손에 바칩니다’ 로 시작하는 [ 기도시집 ]에 있는 루를 향한 시로 유명한 구절을 같이 읽어 볼까요?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부러뜨려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
내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안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
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
릴케가 루 살로메에 대한 사랑이 지극 했기에 루에게 바치는 연작시를 비롯해 여러 시를 써내려 갔는데요. 여러 시들이 루 한 사람을 향해 절절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어요. 시 하나하나가 사랑이 가득 담겨서 읽는 내내 달콤하게 느껴지며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번지는 건 저뿐일까요? 시들이 많이 다 적거나 이곳에 옮길 수는 없어 부득이하게 몇 개의 시만 책에서 발췌하여 감상해 보려 합니다.
어린 나이에 겪은 부모님의 이혼과 예민하고 감수성 넘치는 릴케의 본성과 맞지 않는 소년군사학교를 아버지에 의해 입학하며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고 어려웠다고 해요. 성장과정 중에 심리적으로 힘들고 지쳤던 릴케에게 루는 안정과 치유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루는 실제로 릴케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릴케가 시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다양하게 도움을 주었기에 릴케가 죽기 전까지 잊지 못하고 사랑한 여인이었을 것 같습니다. 릴케의 생을 보더라도 로댕을 제외하고는 그와 인연을 맺고 영향을 준 인물이 여성들이 많다고 하는 걸 보면 여리고 섬세한 감성을 통한 인간관계는 여성과의 교류에서 좀 더 편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리고 감수성이 풍부한 릴케는 생의 마지막도 시인처럼 드라마틱했어요. 놀러 온 여자친구를 위해 장미를 꺾다 가시에 찔린 이후 추운 겨울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시인은 슬픈 스토리가 많아야 시를 많이 써낼 수 있나 생각도 들기도 했어요. 사람의 인생이 굴곡이 없을 수는 없지만 릴케도 루 살로메도 특이한 생활의 연속이었고 그 가운데 다양한 작품도 꾸준히 써내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요. 릴케가 루를 위한 사랑만 노래했다면 20세기 최고의 시인으로 손꼽히지는 못할 겁니다. 종교적인 색채가 드러나긴 하지만 다양한 주제로 수많은 시를 만들었던 독일의 대표 시인 중 한 명으로 섬세하게 표현하는 서정시를 써냈습니다.
시를 읽는 즐거움도 있지만 시를 쓰는 즐거움 또한 있습니다. 글로 줄줄이 풀어내는 작가의 이야기도 있지만 약간의 단어들로 작가의 이야기를 써볼 수도 있기에 시가 주는 매력은 일반적인 글과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깊어 가는 가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루를 향한 사랑을 노래한 릴케, 그런 릴케를 바라보며 다독이고 그의 이야기를 적었던 루. 그들의 사랑을 살짝 엿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랑과 이별만큼 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