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책 한 권 읽어보고 싶은 데 어떤 책을 읽어볼까? 매번 읽는 책 말고 새로운 분야나 장르도 궁금한데. 갑자기 다가온 가을에 분위기 있게 시집 한 번!
이런 비슷한 생각들을 해보셨다면 탁월한 결정을 내렸다고 응원을 드리고 싶다. 순식간에 변화하며 셀 수도 없이 쏟아지는 영상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작고 여리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시 한 편을 만나 보는 걸 권유하고 싶기에. 천천히 시집을 읽어나가면 눈과 머리가 맑아지며 한층 여유가 생기고 마음이 조금씩 채워지는 경험을 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큰 마음을 먹고 안 읽어보던 시집을 읽어보고 싶다 마음을 먹었는데 막상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렇게 많은 시집 가운데 어떤 시집을 읽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물어올 때, 바로 ‘이 시집을 읽으세요!’라고 시집 한 권을 내밀며 바로 권하기는 쉽지 않았다. 책을 고르고 읽는 데 있어 개인적인 성향과 호불호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같이 나고 자란 쌍둥이라도 같은 시집이나 동일한 시인을 매번 동시에 좋아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도 한 번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가까운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쉽게 만날 수 있고 처음 접하는 사람 누구나 한 번 읽어 볼 만한 시집을 용기 내어 소개해 볼까 한다. 바로 동시집이다.
‘학교’라는 사회에 들어가서 적응을 하면서 아이들은 선생님과 교과서를 통해 다양한 노래나 이야기를 듣고 배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와 노래인 ‘동화’와 ‘동요’ 다. 어린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져서 쉽고 어여쁜 말들이 가득 들어있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읽기 쉽고 이해도 잘 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아이와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다.
나에게는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두 아들이 있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엄마 품에 항상 붙어 있어야 되는 시절부터 클래식을 들려주며 수많은 책을 읽어주고 또 읽어주었다. 엄마의 목소리로 읽고 CD에서 나오는 소리로 들으며 자란 아이들은 스스로 한글을 깨고서는 스스로 책을 손에 들고 읽어갔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읽어가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시집을 추천해 주었다. 아직 어린아이에게 영어나 다른 학습을 많이 시키며 같이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한국어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표현들을 책에서 찾아내어 읽어보길 바라는 엄마 나름의 교육철학이랄까? 그렇게 동화 이야기, 음악가들의 이야기, 건강과 인체, 우주 등 과학에 관한 이야기, 철학 동화까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책을 읽게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에게 시를 알려주지 못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이들이 한창 어릴 때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다 소장하고 싶은 책을 사느라 중고서점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 자주 가던 중고 서점에서 다른 책을 읽고 있던 아이에게 시집을 권했을 때 아이는 깜짝 놀랐다. 글씨가 빽빽하게 적혀있는 책만 보다 공간도 넓고 글자도 적은 시집을 보고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받아 들었다. 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고 나자 아이는 시집을 순식간에 읽어 내려가며 눈을 반짝였다. “엄마 이거 너무 재밌고 금방 봐서 좋은데요!‘
그렇게 시를 만난 아이는 스스로 좋아하는 시집이 생겨서 학교에 갈 때 챙겨가기도 하고 간단한 시를 읽고 외워 동생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가끔은 동생과 같이 동시집을 보며 깔깔대기도 했고 다른 시집을 찾아 읽는 계기가 되었다. 시집 자체도 재미있고 시의 내용도 재미있어서 초등학생들에게도 인기 만점이었던 그 시집은 바로 ‘권오삼 시인’님의 ’라면 맛있게 먹는 법‘이다. 시집 제목과 같은 시를 한번 같이 읽어보자.
라면 맛있게 먹는 법
노란 양은 냄비에다가 파르르 라면 끓인 뒤 냄비 뚜껑 안쪽에다 건더기를 올려놓고 젓가락으로 집어 후후 입김 불며 후루룩후루룩 먹으면 된다. 소리 내어 먹을수록 더 맛있 다.
시를 읽는 내내 장면에 눈에 그려지고 금방 읽히며 라면이 먹고 싶어지지 않는가? 심지어 시의 길이도 점차점차 줄어들어 보는 즐거움도 있고 시가 끝나면 라면을 끓여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게 한다. 이 시를 무한반복해서 읽던 아이들은 양은 냄비가 뭐냐고 한 번 사서 끓여 먹어보자며 한동안 안된다는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참 좋아했던 시집이라 같이 여러 번 읽으면서 친구들에게도 소개했고 학교에서 시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냉큼 들고 가기도 했었던 애정 어린 시집이다.
동시가 재미있고 편하게 읽히지 않는가? 동시를 읽다 보면 어린아이가 된 듯도 하고 옛 추억도 떠오르고 다양한 생각과 마음이 교차할 때가 많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 시간을 따라다니느라 종종거리게 되고 피곤함에 하루가 어찌 가는지 모를 때 동시 한 두 편을 읽다 보면 웃음이 나곤 한다. 아이들과 같이 읽어도 어른이 혼자 읽어도 좋은 동시지만, 동시 하면 ‘권정생 동시집’과 ‘이오덕 동시집’ 도 소개하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권정생 동시집 에서 ‘논두렁 콩 심으기' 이오덕 동시집 에서 ‘우리말 노래’>
유명한 동시집도 많고 동시를 쓰시는 많은 시인님들이 계시지만 유독 아이들에게 이분들의 시를 아이들에게 권했던 건 시 속에 들어있는 시인들 만의 독특한 단어들과 말투가 엄마인 나를 사로잡았고 내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현대 문학이 빛나는 발전을 이루던 시절에 나타났던 독특한 문체나 지금 부모세대를 상상이 가능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나 문화들도 담겨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익숙한 시의 풍경과 이야기들도 있지만 가끔은 동화나 이야기 책과는 다르게 시에서 주는 다양한 소리가 있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며 시인이 살던 그 시절, 내 부모가 어릴 때의 풍경을 그려보곤 했다.
동시를 읽고 느끼며 자란 아이들에게 가끔씩 주어지는 미션이 있다. 바로 나만의 시 만들어보기!!
아이들이 커 갈수록 책보다는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는 모습이 보여 너무 안타까웠다. 하지 말라고 하다간 아이들과 싸우기 일쑤였고 게임 시간을 가지고 언쟁이 반복되었다. 특히 여행이라도 가면 긴 시간을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주구장창 핸드폰만 들고 있으려는 아이들을 보다가 화가 난 엄마는 잔꾀를 부렸다.
“자 지금부터 핸드폰 휴식시간! 지금부터 미션을 주겠어!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만의 시상이나 주제가 떠오르면 그걸 시로 만들어 적어봐. 각자 시를 만들어보고 서로 어떤지 이야기해 주자!”
처음에는 멋쩍어하고 내가 무슨 시를 짓냐고 구시렁대던 아이들이 제법 근사한 시를 짓기 시작했다. 중학생이 된 큰 아이는 게임에 몰두하던 일반적인 남학생 그 차제인데 자신이 좋아하는 우주를 주제로 만든 시를 읽어주는 데 사용한 표현이나 단어들이 제법 멋들어졌다. 자기가 쓴 시를 낭독해 줄 때, 가족 모두 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엄마는 이 이아이에게 이런 감성이 있나 은근히 감동까지 받았었다. 둘째 꼬마도 어린아이답게 귀여운 의성어를 이용한 귀여운 동시를 만들어 읽어줘서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었다.
한창 학교 수행평가를 하던 얼마 전, 큰 아이가 학교에 다녀와서 엄마에게 해 줄 말이 있다고 불렀다.
“학교 동아리 독서클럽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를 필사하고 각자 자신만의 시를 지어보기를 했는데 윤동주 시인님 시에 감명을 받아서 내 나름대로 시를 지어서 제출했거든? 그런데 선생님께서 ‘너를 수업에서 가르치지 않아서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시를 짓는데 실력이 있구나! 정말 잘했다!’ 고 칭찬해 주셨어!”
자랑을 하는 아이는 어린아이처럼 싱글벙글 입이 찢어져있었다. 아직도 칭찬이 좋은 중학생에게도 아직은 시를 읽고 느끼는 시간이 중요함을 다시금 알 수 계기가 되었다.
찬 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했고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에 시집 한 권 읽어 보는 경험을 해보자. 처음이라 시집이 선뜻 다가가기 어렵다면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시집과 함께 하시라 추천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