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법 vs 시를 즐기는 법
시는 ‘읽는‘ 행위 일까, ‘즐기는’ 행위일까?
급한 성격인 탓에 무얼 하든 빨리빨리 해야 하는 성향이라 글을 읽기도 전에 책을 손에 드는 순간부터 마음이 급해진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계속 뒤가 궁금해지다 보니 후다닥 읽어내서 그다음 내용을 얼른 다 읽고 싶어 진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점점 조급해지는 습관이 계속 불쑥대며 튀어나와서 책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산만하기 이를 데가 없다. 지속적으로 산만한 생각들과 성급한 마음들을 꾹꾹 눌러두려 일부러 애를 써야 한다.
책을 좀 더 깊이 읽고 음미하기 위해. 읽고 싶은 책을 손에 들고 마음을 잡고 앉아서 한 글자 한 글자 한 줄 한 줄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긴 호흡이 필요한 여느 책과 달리 시는 한 편 한 편 쉬어가며 시인의 노래를 눈으로 읽고 시가 나타내는 상황들을 떠올리며 가슴속 깊은 곳까지 혼자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좋다. 소설이나 에세이에서 주는 깊이와 감동과는 또 다른 감정들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유명한 시집이니까 읽어봐야지!”, “오랜만에 시집 한 번 구입해 볼까?”, “분위기 잡고 시를 하나 낭독해 보자” 가끔 이런 생각들이 스치는 찰나가 있다. 단순하게 시를 읽고 느끼던 시절에는 몰랐지만 시를 좀 더 잘 알고 싶고 마음속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시로 표현하고 싶어 지자 역시나 습관처럼 도서관을 뒤지며 책을 찾기 시작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시가 전해주는 잔잔한 감동과 깊이 있는 표현과 단어들들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막상 시집을 읽다 보면 감동이 오는 시, 즐겁게 만들어 주는 시, 슬프고 아픈 시 등 다양한 느낌을 느끼곤 한다. 가끔은 일상을 보듯, 누군가를 관찰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예고 없이 훅 마음속 깊이 들어오는 시를 만나기도 한다. 몇 번씩 곱씹어 보고 손으로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 적어보며 되뇌며 다시 읽어보는 그런 시 말이다. 그냥 시가 좋아서 혹은 시를 읽어 보면 어떨까 궁금해서 시를 읽다 시의 매력에 퐁당 빠지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나만의 시 즐기는 포인트가 생긴다. 나는 주로 답답하고 힘이 들 때, 괴로운 고민 해결이 나지 않거나 홀로 감내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시가 그리워져 찾게 된다. 노래하듯 읊조리는 시 한 편이 마음의 큰 위로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시와 함께하다 보면 불쑥 드는 생각이 있다. ‘시 자체에 대한 해설’ 을 읽고 싶지 않지만 ’있는 그대로의 시‘ 를 바라보고 소개하고 느끼게 해주는 책이 없을까 궁금했다. 시를 잘 알지 못해도 처음 시를 접하는 초보자도 시의 매력을 조금이라도 알고 느껴볼 수 있고 어떤 시집이라도 당장 열어보고 싶은 욕구가 일렁이게 만들어 주는 책 말이다. 도서관에서 시집을 읽어보고 찾아보다 발견한 두 권이 책이 있다. 시를 읽고 즐기는 이야기에 대한 책을 읽어보며 시집을 읽는 데 있어 또 다른 방법으로 시에 접근하는 이야기들을 제시해 주고 느낄 수 있게 해 주어 누군가 ’시‘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하거나 시에 대한 입문이 목적이라면 이 두 책을 읽어보는 게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시 읽는 법 (김이경 지음, 유유 출판사) & 시를 즐기는 법 (박일환 씀, 단비출판사)
[시 읽는 법 소개 글 ] & [ 시를 즐기는 법 소개 글 ] (글자를 클릭하면 책을 간단히 소개한 글을 보실 수 있어요!)
시 읽는 법 첫 장을 넘기면 ‘시와 처음 벗하려는 당신에게’ 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있다. 마치 ‘어서 와 시는 처음이지? 이곳에서 즐겨봐!’ 환영의 손길을 받은 기분이 든다. 이 책 안에는 다양한 시인의 일화를 엿볼 수 있다. 시를 쓴 배경과 시인의 스토리가 더 깊이 시를 음미하게 만들어 주는 느낌이다.
여러 시인의 일화와 시가 소개되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허난설헌’의 ‘곡자’라는 시를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아이를 잃고 너무 서글프게 쓴 시인데 아이들 키우는 엄마다 보니 마음속 깊이 느껴지는 난설헌의 아픔을 느끼며 한 줄 한 줄 읽게 되고 슬픔을 가득 담은 표현력에 감동한 시이다. 곡자(哭子)는 죽은 자식 앞에서 곡을 한다는 시라고 한다. 어린 자식을 보내고 그 무덤 앞에 앉아 얼마나 슬프고 힘든 엄마의 마음이었을지 시에 절절히 표현이 되어 있다.
곡자
지난해에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마저 잃었네.
슬프고 슬픈 광릉 땅에
두 무덤 나란히 마주 보고 있구나.
백양나무 숲 쓸쓸한 바람
도깨비불은 숲속에서 반짝이는데
지전을 살라서 너희 넋을 부르고
무덤에 술 부어 제사를 지낸다.
너희 남매 가여운 혼은
밤마다 서로 어울려 놀겠지.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으나
하염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며
피눈물 슬픈 울음을 속으로 삼키네.
시를 즐기는 법은 공감, 질문, 은유 등 다양한 시로의 접근 법과 시를 읽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즐긴다는 말 그대로 시를 단순히 읽는 걸 벗어나서 시를 내 안에 들여와 즐기고 내면 풍성하게 채워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시를 꼭 읽어야 한다는 강요가 아닌 잠시 걸음을 멈추어 쉬어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슬픈 시로 젖어든 마음을 설레는 시로 바꾸어 보기 위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인 ‘김소월’ 님의 합장(合掌)을 소개할까 한다. ‘합장’이라는 단어는 불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불가(佛家)에서 인사(人事)할 때나 절할 때 두 팔을 가슴께로 들어 올려 두 손바닥을 합(合)함 라고 사전에서 명시하고 있습니다. 다정한 두 사람이 밤 길을 거닐다 고요함과 마주하는 찰나를 목도하는 기분을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합장
나들이. 단 두 몸이라. 밤빛은 배여와라.
아, 이거 봐, 우거진 나무 아래로 달 들어라.
우리는 말하며 걸었어라, 바람은 부는 대로.
등 불빛에 거리는 해적여라, 희미한 하느편에
고이 밝은 그림자 아득이고
퍽도 가까힌, 풀밭에서 이슬이 번쩍여라.
밤은 막 싶어, 사방은 고요한데,
이마즉, 말도 안 하고, 더 안 가고,
길가에 우뚝하니, 눈감고 마주서서.
먼먼 산, 산 절의 절 종소리. 달빛은 지세여라.
시를 소개하는 글도 시를 소개하는 책도 취향에 따라 한 번씩은 읽어보면 좋은 것 같다. 시 자체만을 만나며 청자 혼자가 느꼈던 감정들을 잠시 보관해 두고 시에 대한 또 다른 시선들과 생각, 시인들의 상황과 시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보니 모르던 사실에 눈이 떠지고 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도 생겨났다. 혼자 읽어보고 느껴보고 즐겨보는 시도 좋지만 시에 담긴 이야기들도 알게 되니 시를 더 깊이 읽는 기분이 들었다.
시는 압축적인 리듬 있는 글이기에 어렵게도 느껴질 수 있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꼭 시에 대해 자세한 배경지식이나 학습 없이도 읽고 즐기는데 행복하다면 진정한 시의 매력에 빠진 게 아닐까? 조금 더 시가 감추어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알고 있던 또는 알지 못했던 여러 시인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데 도움을 받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고 선선한 가을 날씨에 시에 더 흠뻑 취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