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생각하는 기준을 바꾸다
막상 읽고 싶어도 시가 어렵게만 느껴지나요?
시집 한 권 사고 싶은데.. 이 좋은 가을 날씨에 시 한 편 읽고 싶은데 망설여지는 중일 수도?
서점에도 도서관에도 어마어마한 양의 시집들이 존재한다. 시집 전문 도서관도 있고 시집 전문 서점도 있다. 일부러 찾아서 다 다녀봤지만 어딜 가든 마음에 쏙 드는 시 혹은 그런 시집을 바로 알아채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시집에 둘러 쌓여 있는 느낌, 시집만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설렘은 가득해서 계속해서 여운을 머금고 있다. 어떤 시가 좋은지 어떤 작가의 표현들이 좋은지 알려면 그 많은 시를 다 읽어봐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건 사실. 짧고 얇은 시집을 쓰윽 보려면 순식간에 읽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고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나거나 벌써 한 권을 다 읽었네 하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너무 어렵지 않게 시에 다가가고 싶을 때, 시를 즐겨보고 싶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럴 때 ’이 시집 한번 읽어 볼래요?‘ 하며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오래된 시집이지만 어렵게 읽을 수 있고 발간한 지 오래되어 도서관에서만 찾아볼 수 있지만 발간 당시에는 발랄한 젊은 청년시인이 쓴 시였고 기존 시와는 다른 느낌이 가득한 시집이어서 화제를 모았다. 시집 안에 담긴 시들을 읽고 즐겨보는 시간 속으로 같이 떠나보자!
92년 혜성처럼 나타난 20대 초반의 시인이 있었다. 한 번쯤 시인의 이름이나 시집의 이름을 들어봤다는 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바로 ‘원태연’ 시인과 그의 시집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시집. 만났던 그 찰나와 시집을 읽던 시간, 시에서 느껴졌던 설렘과 환희의 감정들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추운 겨울 사춘기가 시작되려고 시동이 막 걸리던 시기, 몽실몽실한 마음을 마구 휘저어 버린 시집이 세상과 만났고 그 안에 내가 있었다.
21살 시인 '원태연'의 시집 [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는 제목부터 눈길을 확 사로잡았고 그 당시 여학생들의 인기에 힘입어 너도 나도 원태인 작가의 시집을 같이 읽으며 깔깔대곤 했다.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였다. 인기 있는 소설을 많이들 찾아 읽긴 했지만 시집이 이런 인기를 얻을 줄 몰랐다. 과연 이게 시 인가? 누군가에게 천천히 읊조리듯 던지는 이야기 인가? 처음 시집이 나왔을 때 시집을 접한 이들은 책 장을 넘길 때마다 놀라며 시를 읽었다. 시는 운율이 있고 리듬감을 느끼며 압축되어 있는 메시지가 함축되어 진지했기에 유명한 시인들만 쓸 수 있는 게 시집이라고 생각하던 어린 생각을 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원태연 시인의 시는 노래 가사처럼 편하게 읽혔고 친구들끼리 짧게 툭툭 내뱉는 말들 같이 느껴졌다. 당시 어른들의 느낌과 생각은 알 수 없었지만 나이 어린 학생들이 만난 이 시집은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어 즐겨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시, 언제 어디서나 읽어도 재미있어 자꾸 들쳐보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짜증을 내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고백을 하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을 하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너를 보고 싶어
넌 누구니?
이렇게 편하고 읽기 쉽게 이해하기 쉽게 즐겁게 쓸 수 있다니. 나에게 보고 싶은 ‘너’를 끊임없이 상상하게 했다. 연애를 하지 않고도 연애를 하는 착각이 들고 남자친구가 생긴다면 꼭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들, 내 마음에 머무르는 감정들을 표현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고 생각이 들곤 했다.
(1권 -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생각을 해)
충격이 가시기도 전 다음 해에 두 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 첫 시집보다는 조금 더 진지했고 사랑이야기가 많아 더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사진에 실려있던 시인님의 모습은 호탕하고 자유분방해 보였다. 젊은 시인은 이런 모습인가 생각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다시 들여다본 시집을 보며 깜짝 놀랐던 건 시집의 가격! 첫 시집은 2500원, 두 번째 시집은 3,000원이다. 지금과는 다른 그때 가격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누군가 다시 만나야 한다면
다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여전히 너를
다시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면
당연히 너를
다시 누군가를 그리워해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또 너를
하나
다시 누군가와 이별해야 한다면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한다면
두 번 죽어도 너와는...
지금 다시 읽다 보니 나는 가슴 아픈 사랑 노래, 시, 이야기들이 좋았나 보다. 연애와는 거리가 멀로 이성친구도 없던 그 시절, 여중 여고를 고치며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만 사랑하고 이별하고 그렇게 책으로 배웠나 보다. 사랑해서 슬프고 이별해서 더 슬픈 구구절절한 시구들이 마음에 콕콕 박혔더랬다. 그래도 중간중간 재미있는 시들도 있고 긴 시들도 짤막한 시들도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수시로 열어볼 수 있는 매력을 담고 있었다.
특히 ‘이루어지기 싫은 사랑’을 보며 엄마인가 할머니인가 누가 저러지 하다 마지막 한 줄에서 그야말로 빵 터졌다. 시를 읽으면서 시를 읽는 느낌도 즐거운 이야기 한편을 듣는 기분도 절절한 사랑을 느껴보기도 하는 다채로웠던 시집이었다.
그래도 시집을 가장 매력 있게 했던 건 사랑에 대한 노래가 아니었을까? 간결하면서도 슬픈 짧게 끊어지면서도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시가 있었다. 소설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시를 꼭 꼭 눈에 담에 읽으며 머릿속으로는 다양한 상황을 그려보며 시를 읽어갔다. 이 슬픈 사랑은 아마도 끝이었겠지?
두 권의 시집을 모두 좋아했지만 첫 시집은 놀라움을 두 번째 시집은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주었다. 제목부터 내용까지 조금씩 마음에 담으며 읽었고 두 번째 시집은 제목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왜 굳이 원을 크게 그려보라고 한 걸까? 그 원 안에는 과연 무엇을 담고 싶었던 걸까?
(2권 - 손 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아직 어린 감성, 피어나지 못한 마음에 덜컥 들어와 버린 놀라운 시집과의 조우는 그렇게 한동안 함께했다. 시집을 읽는 내내 어쩜 이런 순간들을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으면서도 진지함 보다 유머러스한 이 글들이 시가 맞는 건지 어린 나이에 혼란스럽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시절 그런 고민은 찰나였을 뿐 다시 시집을 펼쳐 들어 읽고 또 읽었다. 굴러가는 나뭇잎만 봐도 웃음이 나고 온갖 상상력 공장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그 시절에 걸맞은 시집을 만났던 게 행운 아니었을까?
다시 펼쳐 본 시집의 표지 만으로도 혼자만의 옛 기억이 마구마구 떠오르며 ‘그래 이거였지’ 연신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시 소녀 감성으로 돌아가 어릴 적 즐겨 읽던 시를 다시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때의 기분을 똑같이 느낄 수는 없지만 ’이런 구절을 좋아했었지 ‘, ’이런 부분을 많이 읽었었지 ‘, ’아! 이 부분 기억에 있던 바로 그 시, 그 문구였어!‘ 혼자 다양한 추억과 감상이 엮어지는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깊어가는 가을, 이렇게 편하고 즐거운 시 한편씩 같이 즐겨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