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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 Nov 06. 2024

도보를 찬미하다

걸어서 저 하늘까지


매일 만 보를 넘게 걷다 보니 걸음수가 만보가 안 되는 날은 불안하다. 운동량이 너무 적은 게 아닐까? 걱정도 된다. 열심히 걸었다 싶어서 만보기를 열어보면 어느새 2만보를 훌쩍 넘겨버렸다. 어쩐지 다리가 조금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니. 나에게 걷기는 생활이자 운동이다. 따로 운동을 못하는 대신 걷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 유산소 운동으로 걷기를 한다고 나름의 위안과 핑계를 대어 본다.



어릴 때부터 운동이 싫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운동을 위해 내 몸을 억지로 움직여야 하는 모든 활동이 싫었다. 운동을 좋아하셔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도 테니스를 열심히 치신 아빠는 대회에 나가 상을 받을 정도로 열정적이며 운동을 좋아하셨다. 운동에 재능과 흥미가 1도 없는 딸만 둘이 있어 매번 못마땅했던 아빠는 주말 아침 일찍 ‘기상! 을 외친다. 졸린 눈을 비비며 아빠손에 이끌려 집 근처 산을 다녀오거나 집 앞에서 배드민턴을 쳐야 했다.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며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딸들이 답답해 잔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가끔씩 올랐던 관악산은 정상까지 가는 길이 너무 고되었는데 나중에는 뛰어 올라갈 정도가 되었으니 강제 훈련의 효과가 아닐까 싶다






학교 체육시간에 뜀틀을 하다 팔 뼈가 휘어 깁스를 하기도 했고 체력장을 하면 항상 윗몸일으키기에서 최하점을 받았다. 운동을 유독 싫어한 데에는 신체적인 이유도 컸다. 할머니 쪽 유전자 덕분에 유난히 발달한 상체 덕분에 여러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다. 여중 여고가 한 건물에 있는 데다 한창 예민한 시절이었던지라 별의 별일이 다 있는 건 일상이다. 여학생들의 끊임없는 수다에 여러 말들이 오고 갔겠지만 생각 없이 뱉어낸 말들은 상처를 깊이 남겼다.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던 눈빛과 단어들 그러나 소심했던 성격에 대놓고 불만을 표현하지 못하고 숨겨야만 했다. 아직도 앙금으로 남아있는 작고 여렸던 마음에 난 생채기는 여전히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사라지지 않았다. 유독 나와 한 명의 친구의 발달이 눈에 띄었나 보다. 우리가 달리기 순서가 되고 뛰기 사직하면 아이들은 수군수군거렸다 “와 젖소들이다” “야 저것 봐 막 출렁여” 재밌다는 듯 깔깔대는 그 웃음과 대화들은 비수가 되었고 친구들이 아닌 내 몸을 미워하고 원망하게 되었다. 난 그들의 입에 오르는 게 두려웠고 양 팔로 내 몸을 감싼 팔짱을 껴서 팔로 고정한 뒤 달리기를 했으니 제대로 시간 내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양한 핑계들이 늘어갔고 체육시간이 오는 게 두려웠고 운동 자체가 끔찍하게 싫어졌다. 아이들이 놀리기 전부터 스스로 위축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른 운동에는 흥미나 관심이 없었지만 혼자 걷는 시간을 좋아했다. 시간이 나거나 답답하면 혼자 걷고 또 걸었다. 혼자 오랜 시간을 걸으며 머릿속은 상상의 나래로 가득했고 그렇게 혼자 걷는 시간이 청소년 시기 방황에서의 힐링이 되어주었다. 초등학교(그 당시 국민학교 학생) 4학년부터 송파 인근에 살던 집이 목동으로 이사를 했다. 선생님이신 엄마의 발령을 따라 먼 길을 이사한 것이다 서울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자락으로. 지금은 비싼 집값에 빽빽한 건물들로 정신없는 목동이 처음 아파트들이 막 들어서던 시절에는 아파트 외에 건물의 많이 없어 휑한 공터가 많았다. 1단지부터 14단지까지 엄청난 대단지 아파트이다 보니 단지 간의 이동 거리도 상당했고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거리도 있었다. 집에서 교회건물 하나뿐인 큰 공터를 지나 다른 단지를 만나면 그 단지 끝까지 걸어야 학원이 있었다. 버스 이용도 애매한 곳, 일하시느라 바빠서 학원 가는 길을 챙겨줄 수 없는 부모님 상황에 나름 긴 거리를 홀로 걸어 다니곤 했다. 당시 봉고차에 학원아이들을 실어 날라주기도 했지만 짖꿎은 남자아이들이 매일 이름으로 놀려대는 걸 견뎌낼 수 없어 혼자 걸어 다니는 방법을 택했다.



자칫 멀기도 하고 혼자 다니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린 나이에 길도 잘 찾고 대중교통도 혼자 장거리 이용을 잘하는 나를 엄마는 믿어주셨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이동할 거리도 두 시간 이상 걸어서 도서관을 혼자 찾아가기도 했다. 운동을 따로 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걷는 게 어릴 때도 좋았나 보다.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부모님이 퇴근하기 전 일찍 학교에서 돌아와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학원이나 도서관을 가는 순간이 혼자 걷는 시간들이었다. 어린 나이에 왜 그렇게 많은 거리를 굳이 걸어 다녔다 지금 와서 다시 돌아보았다. 아파트 건물 사이사이 많이 있던 공터들을 지나 목적지로 가는 길도 하나가 아니었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갈 수 있었기에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으로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는 기분을 느끼려 그렇게 걷고 또 걷고 또 걸었던 것 같다.



대학교에 가서도 수업이 없는 오후에는 근방을 걷고 또 걸었고 직장에 다닐 때에도 회사가 있던 강남역에부터 삼성역, 잠실역에 이르기까지 퇴근하면서 힘들고 답답한 마음이 들면 걷고 또 걸었다. 아이를 낳고도 유모차에 또는 아기띠를 하고도 틈이 나면 걸었다. 운동 삼아 산책 삼아 스트레스 해소 겸 그렇게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아이들이 걷고 뛰면서부터는 같이 놀이터를 떠돌며 아이들의 발걸음에 맞추어 걸었다. 특별히 시간과 장소를 정하기보다 발길 닿는 곳으로 걷고 또 걷다 보면 머릿속에 잡념은 사라지고 집중해야 할 생각들만 남아있곤 했다.






지금도 매일 걷는다. 만보 걷기는 기본이다. 웬만한 길을 걸어서 다닌다. 아이들이 크면서는 아이들 손을 잡고 이야기하며 걸어 다녔다. 다른 지역으로 역사여행을 많이 다녀봤지만 역시나 다양한 것을 보고 느끼려면 많이 걸어야 했다. 워낙 엄마와 걷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이다 보니 큰 투정 없이 신나게 잘 다니곤 했다.


이제는 아이들이 학교를 가면 그 길로 걷기가 시작된다. 도서관을 가도 버스를 타고 웬만하면 2~3 정거장 앞까지 걸어간다. 나름 혼자만의 아침 산책이라 부르며 걷는 길은 항상 상쾌하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추위와 더위가 와도 아랑콧 하지 않고 매일 걷는다. 날씨에 휘둘리거나 컨디션이 최악을 찍지 않는 이상 365일을 매일 걷고 또 걷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다른 운동도 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만 그럼에도 매일 열심히 걷기를 놓지 못하는 이유가 또 있다. 다른 운동과 달리 걷는 자체는 돈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걸으면 돈을 주는 어플들 덕에 걸어 다니며 푼돈을 벌고 있다. 또 하나의 장점은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향을 향해 내 몸하나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혼자 걷는 시간은 머릿속의 생각이 정리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나 글감, 쓰고 싶던 시가 생각나기도 한다. 핸드폰에 깔려 있는 네이버 메모 어플 하나면 어디서든 걸어 다니다 생각나는 많은 이야기나 단어들을 바로 적어둘 수 있어 좋다. 그렇게 걸으며 얻어진 아이디어나 글감으로 다양한 글로 옮겨지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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