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JH와 ‘밥친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선생님은 논어 다 읽었어요?”
“아니”
“근데 어떻게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해주세요?”
논어를 배울 때 어른의 역할은 무지한 스승이라고 했지요. 아이의 내면의 힘을 믿고 스스로 해석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것이에요. 하지만 아무리 아이 스스로 자기 안의 잠재력을 믿고 의지를 불러일으킨다고 하더라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무엇인가 해야 해요. 아이의 내면에 영향력이 큰 자극과 문제가 될 만한 무엇인가를 제공함으로써 내면을 흔들어야 합니다. 아이가 논어 텍스트를 읽고 다양한 해석을 하고 생각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실제 있었던 일상 사례가 필요합니다. 아이와 함께 논어를 읽을 때 어른의 두 번째 역할은 ‘일상으로의 안내자’입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내 일상에서 이야기를 꺼내오면 됩니다. 논어에 대한 구절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을 책 모퉁이에 빠르게 적습니다. 그 생각들을 아이와 나누면서 함께 논어를 배워나가면 돼요.
2-16
공자가 말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고 공격한다면 손해가 되어 돌아온다”
위정편 16을 공부하는 날이에요.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제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몇 년 전 밤 11시에 아내와 집에서 창문 밖을 보는데 먼 산 전신주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어요. 아내와 결혼하기 전 데이트를 하다가 경포호수에서 이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했지요. 아내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다른 어떤 여자랑 갔냐며 따졌어요. 저는 분명히 봤다고 거듭 제 주장을 펼쳤어요. 거기서 그쳤어야 했습니다. 결국 새벽 1시에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경포호수에 다녀왔어요. 내가 본 사실이 맞냐 틀리냐가 아니에요. 그 사람과의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내 주장만 펼치고 상대를 공격하면 손해로 돌아옵니다.
2-12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쓰임이 정해진 그릇이 아니다.”
공자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아이들에게 물었어요.
"일반적인 그릇은 국이나 밥을 먹는 데 쓰이는데 군자는 쓰임이 정해진 사람이 아니라 플러스 알파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릇이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떠올라요. 군자는 그릇이 큰 사람 같아요”
그릇이 큰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물었어요.
"창의적이고 똑똑하고 재능이 있어요”
"일을 잘하고 기발한 생각,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요”
"생각하는 게 큰 사람이요”
"그릇이 큰 사람은 꿈이 큰 사람인 것 같아요”
"통 큰 사람이요”
"모두의 생각이 다 맞아요. 저는 그릇이 큰 사람은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라고 이야기하면서 법륜 스님의 책 <스님의 주례사>에서 읽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부처님이 부잣집에 탁발하였는데 문전박대를 당해요. 사지 멀쩡한데 빌어먹는다고 주인한테 욕을 들었어요. 근데 부처님은 그저 웃기만 해요. 부자는 욕을 했는데 스님이 웃기만 하니 더 화가 나지요. 부처님이 말했어요. 손님이 와서 선물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선물을 주는데 상대가 받지 않으면 그 선물은 누구의 것입니까? 욕을 받지 않으면 그 욕은 누구의 것입니까?”
위정편 12의 원래 말씀은 쓰임이 정해지지 않은 그릇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큰 그릇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논어를 읽을 때는 공자의 생각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으로 풀어내는 것이 더 중요해요. 아이와 함께 논어를 읽을 때 어른은 곁에서 자신의 일상 이야기를 해주어야 합니다. 자기가 겪었던 이야기, 들었던 이야기, 책에서 봤던 이야기, TV에서 봤던 이야기, 영하에서 봤던 이야기, 유튜브에서 봤던 이야기 모두 좋아요. 아이는 그 이야기들을 통해 논어를 더 풍성하게 이해하고 자기의 일상에서 배운 것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