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10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문 제출이 이제 3주 앞으로 다가왔다. 제출일이 다가오자 그간 거북이처럼 느렸던 진도에 속력이 붙었다. 지도 교수님과의 화상 미팅에서도 논문의 목차, 도입부와 결론을 확인하길 원하셨기에 성숙한 학생의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더더욱 속력을 냈다. 그러던 어느 날 등원 후 오전에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님, 어린이집 교사 중 한 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어요. 어린이집은 2주간 폐쇄이고 아이도 코로나 검사를 받아 주세요.”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던 시기였다. 바로 달려가 아이를 하원 시킨 후 같이 검사를 받으러 갔고 다음날 둘 다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아이만 자가 격리 통보를 받았다. 나는 제외였지만 주 양육자 이기에 함께 격리 생활을 하며 2주간 집에서만 지내야 했다. 하필 이시기에….눈앞이 정말 깜깜 했다. 그런데 이제 나는 몇 달 사이에 세 번 째 자가 격리라 그런지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스트레스 받는다고 달라질 것이 있는가? 혹시 코로나 확진을 받아 치료 시설에 들어가는 것 보다는 백 번 나았다. 다행이라고 생각 하기로 했다.
그렇게 갑자기 또 공부의 흐름이 끊기고 하루 종일 아이와 지내고 육아에 전념 했다. 집에만 있으니 한순간도 쉬지 않고 아이가 나를 찾는 통에 육퇴 후 논문 쓸 힘이 없었다. 하루는 쓰고 다음날은 아이를 재우다가 같이 뻗고..하루 걸러 하루 씩 야밤에 논문을 쓰며 느림보처럼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힘들었던 2주간의 시간이 지나고 온 가족과 베이비시터 이모 님까지 코로나 검사를 받은 후 다시 일상으로 복귀 할 수 있었다. 이제 논문 제출 기한은 딱 9일 남았다. 그러나 복귀 이틀 만에 베이비시터 이모님이 건강 상의 이유로 그만 둔다고 통보를 해왔다. 하 정말 되는 일이 없게 느껴졌다. 딱 일주일만 더 근무해달라고 사정한 뒤 다시 자유의 몸이 된 나는 폭발적으로 달렸다. 다행히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지도 교수님께서 마지막 화상 미팅을 제출 전 한차례 따로 잡아 주셨다. 마지막 화상 미팅 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한번도 얼굴은 못 봤지만 나중에 런던에 오면 꼭 만나기로 약속 후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여 헤어짐의 인사를 했다.
이후 나 홀로 일주일 간 밤을 새며 하얗게 불태운 후 자정이 가까운 시간 제출 마감 시간 3분 전에 제출을 완료 했다. 마지막으로 근무하신 베이비시터 이모 님과는 전화로 마지막 인사를 주고 받았다. 이후 동기 친구들과 SNS에서 제출 인사를 주고받고, 제출 게시물을 릴레이로 공유 하는 등 온라인 세레모니를 마쳤다. 날아 갈듯한 기분이었다. 다음날은 그간 수고한 나 자신을 위해 예약해둔 프라이빗 스파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 했다. 그 후에는 바로 추석 연휴여서 그간 함께하지 못했던 가족과의 시간을 최대한 많이 보냈다. 시댁에도 방문하고 연이어 친정 부모님과도 시간을 보내며 영국 석사 졸업을 미리 축하 받았다. 이제 남편과의 사이에서 그간 외면해둔 마음의 소리를 들어 볼 차례였다. 처음에는 서로 잘잘못을 따지며 질책하는 다툼으로 시작했지만 이내 서로 서운했고 외로웠고 힘들었다고 눈물을 보였다. 나도 신랑도 얼싸안고 울었고 미안하다고 했다. 마음의 앙금이 좀 가셨고 다시 잘 해보기로 했다. 연휴 동안 미뤄둔 가족들을 챙기며 시간이 어찌 갔는지 모를 만큼 바빴다.
퇴사와 논문을 연달아 마친 나는 연휴가 지난 후 아이를 등원 시키고 까페에 앉아 지난 일년 간의 일들을 돌아 보았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배움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작년, 코시국으로 인해 한치 앞이 안보이던 때 석사 공부를 결심하고 런던에 있는 대학원 과정을 선택하여 이후 자기 주도적인 학습으로 완주해낸 나 자신이 용감하고 뿌듯하고 칭찬해 주고 싶었다. 런던 석사 공부를 마치며 내 자신이 가장 변화를 느끼는 점은 ‘그래, 다른 선택을 해도 괜찮아’ 라며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는 것 이다. 코시국에 해외유학을 감행하고, 커리어의 확장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으나 끝날 무렵 퇴사를 감행하고..인생에 나름 과감한 선택을 몇 번 해보니 내가 하고 싶은 길을 선택해서 그것에 걸맞게 살아내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 나에게 지워 주는 엄마, 슈퍼우먼, 경단녀 등의 타이틀은 무시하고 내가 무얼 원하는지 깊이 생각해보고 실천하는 것을 통해 나 자신을 찾는 법을 배웠다.
이 경험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처음 엄마가 되고 깊은 터널 안에서 헤메이고 있거나 혹은 관련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대학원 유학을 생각하고 있을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 하는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고 싶었고 나는 당분간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환경에 맞는 워라밸을 생각해보고 재정비 하기로 했다. 집 근처 유아 동반 공유 사무실에 자리를 얻었다. 아이 등원 후 출근을 하여 10-4시까지 근무 하기로 정했다. 어느덧 10월에 접어들어 첫 출근을 했고 그 어느 때보다도 설레였다. 이제는 내 안의 경험에 귀를 기울여 나만의 컨텐츠를 생산하는 일에 매달려 볼 셈이다. 물론, 그간의 경력과 새로 공부하며 보고 배운 전공도 살려서 말이다. 그것이 진정 커리어의 확장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