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것이 달라졌다
9화 나를 지키기 위한 싸움
이틀 간 생각해 보기로 한 시간을 갖은 뒤 내가 내놓은 답은 만약 복직을 한다면, 근무시간을 완전히 유연하게 조정하고 출근은 반드시 필요한 날만 하는 것 이었다. 복직 후 내가 맡을 프로젝트가 런던 혹은 뉴욕의 디자이너와 협업 해야 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나는 매일 출근 후 9-6를 근무한 뒤 종종 전세계의 디자이너와 컨퍼런스콜 때문에 그들의 시계에 맞추어 일하다 보니 저녁 6시부터 시작해서 밤 9시를 훌쩍 넘겨 일하기 일쑤였다. 그런 날은 어차피 야근할 것을 알기에 업무의 집중도 도 떨어졌다. 물론 야근 수당이나 대휴는 없었다. 이런 일들이 계속될 것을 알기에 나는 이전과 같은 조건으로는 참여 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녁 6-9시는 육아에 있어 가장 노동이 집중되는 순간이고 가장 퀄리티 있는 가족 시간 보낼 수 있기도 하다. 또 한가지의 생각은 어차피 완전 유연제로 근무하길 원한다면 내가 꼭 그들 만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것일까? 였다.
지난 2년간 회사는 내가 없이도 잘 돌아갔다. 나 또한 그들 없이 잘 지냈다. 완전한 유연제 근무를 위해 가장 최적화된 조건은 프리랜서 형식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되는 일 이었다. 회사가 보증 해주었던 나의 사회적 지위와 정규직의 타이틀, 퇴직 등 현실적인 문제가 걸림돌 이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코시국에 호텔 업 이었던 나의 회사는 큰 타격을 입었고 회사가 보증해 주었던 것들은 희미해졌다. 완전 유연근무제를 조건으로 복직하길 희망한다고 부서 장님께 알렸고 내부적으로 팀 회의를 진행 후 알려 주기로 했다. 며칠 후 연락을 주셨는데 그런 방식으로는 함께 일하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매일같이 출퇴근 하는 다른 직원과의 형평성도 생각해야 하고 또 사무실에 늘 앉아 있지 않으니 업무를 지시하고, 수시로 보고 받고, 회의를 진행하기에도 불편한 듯 했다. 토달지 말고 얼른 복직해서 재밌게 다시 같이 해보자 하셨다. 어떤 상황일지 훤히 눈에 그려졌다.
예상했던 일 이었기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매력적이고 해봤기에 한번 더 하면 날개를 단 듯 완성도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완수 하고 나면 나의 커리어에 훈장 하나가 더해지겠지만 그것을 위해 또 몇 년 간을 온몸을 던져 나를 갈아 넣어야 했다.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면 서로에게 아쉬움만 남기 때문에 프로젝트는 힘들어도 도망치지 않고 완주하고 나야 그 훈장도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것임을 배웠다. 이 과정을 너무 잘 알기에 일과 가정과 양육자로서의 삶의 워라밸을 지킬 수 있을까? 내가 지킨다고 노력하는 행위들이 회사에서 가정에서 계속 미안하기만 한 슈퍼우먼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나는 그렇게 살기에는 내 자신이 아까웠다. 내가 그리는 내 삶은 행복하고 편안하고 자기 주도적인 모습으로 좋아하는 일을 지속해나가는 삶을 살고 싶었기에 퇴사를 선택 했다.
조용하고 빠르게 퇴사를 밀어 부쳐 확정 한 뒤 여러 가지 감정에 한동안 마음이 복잡했다. 첫 번째는 기다려준 회사와 부서장 님께 좀 미안했고 두 번째는 이 과정이 바로 내 얘기는 아닐 줄로만 알았던 경단녀가 되어 가는 것인가? 싶어 불안했고 세 번째는 그래도 코시국에 공부하며 보고 배운 새로운 세계와 규칙이 있는데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는 곳과는 이별하길 잘 선택했어 라는 마음 이었다. 주변에서는 지인을 비롯하여 일로서 알고 지냈던 분들이 돌아가며 전화가 와서 회유를 했다. 이만한 옷이 어디 있는 줄 아냐고 지금 그 옷이 딱 어울리는 네 옷 이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니 그런가 싶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씨익 웃음이 나왔다. 남들이 말리는 것을 보니 잘 한 선택 같았다. 큰 비가 지나간 후처럼 마음이 깨끗이 씻겨 내려간 것 같았고 이제 걱정과 불안은 내게서 멀리 하고 내 삶과 미래에 다가올 기회 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시스템 안에서 회사원으로의 삶을 살아 왔다. 이제 지난 12년간의 회사원의 삶을 마치고 나는 퇴사를 하고 자유인이 되었다. 앞으로는 회사원이 되지는 않기로 했다.
이런 진통을 겪으면서도 논문 제출 일정이 코앞이기에 하루 종일 논문에 매달렸다. 다행히 새로이 구축한 육아 분담 시스템이 잘 돌아가 주었기에 아기도 잘 적응하고 있고 덕분에 내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남편과의 관계는 결혼 이후 최악이었지만 데드라인이 있음을 알았기에 서로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그러나 인생에 큰 결정에 있어 과정을 나누지 못하고 서로 응원해주지 못하는 사이는 너무나 외로웠다. 배우자와의 관계 라는 것이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틀어지는데 단 몇 개월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남이 만나 함께 사는 것이기에 화목한 가정을 꾸린다는 것에는 서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제작년 봄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 사라져 가는 내 자신을 다시 찾는 방법이 그간 묵혀두었던 내 꿈을 다시 꺼내면 되는 일 인줄 만 알았다. 그러나 면밀히 들여다 보니 공부도, 회사도, 워라밸도, 가족과의 관계도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모든 방면에서 관점이 참으로 달라져 있었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이렇게 내 삶의 모든 방면에서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