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민 장편소설 브릿지
'내가 음악을 좋아해서 선택했는데, 난 왜이렇게 힘이 드는 것일까? 계속 첼로를 하는 게 맞는건가. '
문경민 작가의 신작 <브릿지>를 읽었습니다. 음악러버에게 첼로를 전공하는 예고생 이야기라니! 이건 참을 수 없지요. 그동안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통해 음대생들의 이야기를 엿본적은 있었지만 이 소설처럼 음악 전공 예고생들의 이야기는 또 처음이어서 몹시 흥미로웠습니다.
주인공 인혜, 그리고 국수 가게 사장님인 인혜의 할머니, 인혜의 남동생 동우, 인혜의 부모님, 인혜의 예고 친구 연수와 대호, 그리고 첼로 레슨 선생님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주인공 인혜는 예고 첼로 전공생 5명 중에 실기 평가 꼴등을 합니다. 그 후 오케스트라 제일 끝 자리에 앉게 되는 수모를 겪어요. 인혜를 아껴주셨던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시구요. 할머니의 대를 이어 국수 가게를 하는 부모님께는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음악 레슨이 한 두 푼 드는 분야가 아니니까요.
p.50 더는 첼로가 만만하지 않았다. 첼로를 품어도 따듯하지 않았다. 첼로는 푸근한 곰 아저씨가 아니라 길들이기 벅찬 야생 곰 그 자체였다.
인혜는 방황합니다. 설상 가상으로 '마왕'이라고 별명을 가진 인혜의 첫 레슨 선생님이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나타나면서 갈등은 더욱 심화되지요. 쌀쌀맞은 얼음 여왕같은 그녀는 인혜를 본체 만체하며 인혜의 마음을 더욱 얼어붙게 하지요.
p.25 브릿지는 첼로의 한복판에 서서 현의 울림을 몸통에 전달하는 납작한 나뭇조각이다. 현의 장력을 버티고 버티다가 휘어져버린 브릿지가 안쓰러웠다.
브릿지는 현악기에서 현의 떨림을 울림통으로 전달하는 부품이라네요. 이 조그만 브릿지가 시원치 않으면 소리가 제대로 날 수 없다고 합니다. 묵묵히 버티며 자신의 삶을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마치 이 브릿지 같지 않나요? 현의 무거운 장력을 받아 버티다가 휘어진 모습도 안타깝고요.
작가는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메세지를 넌지시 전달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힘겨움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것이 꼴찌라는 성적이 될 수 있고, 사랑하는 할머니의 죽음이 될 수도, 친구간의 시기와 질투도 될 수 있지요. 마음이 주저앉은 곳에서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사랑을 잃지 않고 산다면요.
p.191 할머니는 자신을 사랑하세요? 사랑하는 게 어렵지만 그래도 해 보려고 한다고. 사랑스러워야만 사랑하는 건 아니라고. 사랑은 의지이고 결심이기도 하다고.
여기서 저는 밑줄을 쳤습니다. 사랑은 결심이지요. 맞아요. 이건 선택이고 내 의지입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기도 쉽지가 안잖아요.
'소설을 읽는 건 결국 작가를 만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경민 작가의 장편소설 <브릿지>를 다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 작품을 쓴 작가가 궁금하다!'였어요.
작가님은 과거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했던 학생이 커서 첼로를 전공하는 음대생이 되어 다시 만난 것을 계기로 이 소설을 구상하셨다고 합니다. 브릿지라는 다리를 건너가듯 작가님도 슬픔을 건너가는 소설을 쓰고 싶으셨다네요.
p.195 네 줄의 현을 떠받치고 굳건히 서 있는 브릿지가 어쩐지 자신의 모습 같다. 곧 시작될 연주를 기다리다 인혜는 깨닫는다. 슬픔은 건너가는 것이라는 걸.
브릿지. 건너간다. 그리고 첼로의 떨림을 몸통으로 전해주는 가교. 건너가려면 사랑이 필요합니다. 음악도, 우리도.
저도 오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잊지 않고 알뜰히 챙겨 먹을께요.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우리 모두는 불안하고 두려운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인혜와 친구들처럼 저도 잘 건너가 보겠습니다. 할머니의 말씀처럼 삶은 흐르는 것이니까요. 브릿지처럼 꿈의 무게를 버티며 자신만의 울림을 만드는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