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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사가 나리 Aug 07. 2022

출생의 비밀

나리족 족장 탄생비화

                    

   보통 출생의 비밀이라고 하면, 막장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상투적이고 뻔한 레퍼토리, 진부한 클리셰를 떠올릴 것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꿋꿋이 살아온 여주인공이 알고 보니 재벌가의 숨겨둔 혼외자라는 설정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못해 어떨 때는 지겹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 같은 이야기에 대해 쓰게 된 이 글의 제목을 ‘출생의 비밀’이라는 상투적인 문구로 시작해보고자 한다.  

   

  ‘위로 오빠 둘이 있는 막내딸’이었던 나는 이미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온 집안의 환영을 받으며 태어났다. 게다가 우리 집은 가족, 친척들 모두 남자들이 흔해 빠진 집안이었고, 딸이 무척이나 귀했다. 예상대로 나는 부모님과 오빠들의 전폭적인 사랑 속에서 무척 밝고 명랑하고 해맑은 아이로 성장하게 되었다. 여기까지 보면 뭐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데 무슨 큰 비밀이 있다는 것인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경우 아기들은 엄마 뱃속에서 평균 40주를 자라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엄마들이 ‘열 달’ 동안 아기를 태중에서 키워서 세상으로 내보낸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엄마가 ‘열 달’ 동안 사랑으로 키워주신 덕에  엄청나게 쑥쑥 잘 자라고 있었음에도, 출산예정일을 한참 넘긴 시점에도 전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 뱃속을 탈출해서 맞서 나갈 세상이 두려웠던 것인지, 따뜻하고 편안한 엄마 뱃속과 같은 곳이 더 이상 없을 것이란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인지 아무튼 나는 예정일이 훨씬 지났음에도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되었다는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사실 주변에 예정일보다 훨씬 일찍 태어난 미숙아들은 그래도 발견하기 쉽지만, 나 같은 과숙아는 많이 보지 못했다.  아기가 너무 커지고 있는데 나올 생각을 안 하는 상황에서 의사는 유도분만을 하려 시도했지만, 산모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 돼서 결국 엄마는 제왕절개로 나를 낳으셨다.  춥디 추운 1월 초, 신촌의 세브란스병원에서 나는 태어났고, 그날 세브란스 병원에는 두 가지 큰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아들 세 쌍둥이가 태어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4.4 킬로그램의 거대한 우량아 여자아기가 태어난 것이었다. 사람들은 “아기는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는 것”이라고 말들 하는데, 난 거꾸로 엄청 크게 태어나서 지금처럼 자그맣고 아담한 어른으로 자랐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직후에도 울음을 터트리지 않아서 엄마를 걱정시켰는데, 의사가 내 엉덩이를 찰싹하고 때리자 곧 으앙 하고 크게 울어서 그제야 엄마는 안심을 하셨다고 했다.

    

   4.4 킬로그램으로 태어났으면 최소 장래에 씨름선수나 옛날 같으면 장군감인데, 나를 보면 정말 ‘작고 소중한’ 크기의 여자 어른이 되었다. 너무 많이 다 커서 세상에 나왔기에 이미 미모를 탑재하고 태어났고, 병원의 신생아실 복도에는 하얗고 토실토실한 나의 미모를 칭찬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가 내 인생 최고의 리즈시절이 아니길 바란다. 그 시절에는 우량아 선발대회 같은 것도 있었지만, 엄마 아빠가 보시기에 난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기였으니 나중에 미스코리아 대회에 내보내야 하나를 고민하셨을 것이다.

    

   엄마의 소중한 생명을 담보로 태어났고, 가족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세상에 첫발을 디딘 나의 엄청난 탄생신화, ‘출생의 비밀’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엄마의 사랑에 맞먹는 크기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앞으로 나의 출생 몸무게만큼이나 온 세상이 놀랄만한, 묵직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내 인생의 마무리를 지을 때, 그때에는 놀랍고 아름다운 ‘임종의 비밀’을 남기는 멋진 사람으로 세상에 흔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태어났을 때의 아름다움보다 이 세상을 마칠 때의 아름다움이 두 배, 세 배였으면 한다. 이 세상에 올 때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기쁨을 주었던 것처럼, 이 세상을 떠날 때 에도 사람들에게 소망과 감사를 전해주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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