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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사가 나리 Dec 01. 2022

완벽한 하루

퍼펙트 데이를 꿈꾸며


                                                                                                           

     “자, 얼른 서둘러. 가방 잘 챙기고.  아침 8시 타임머신         놓치면 안 돼.  오전에는 오르세이 미술관 갔다가,

        샹젤리제에서 쇼핑 좀 하고,  오후에는 와이키키에서          태닝 하고, 스파 가서 마사지받자. “


   나와 두 딸들은 휴일에 시간 맞춰서 이번에는 파리와 하와이를 다녀오기로 했다. 최근에 나온 신형 타임머신 T-35는 놀라운 비행속도와 비행시간 단축으로 여행패턴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50년 전에는 그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었던 장면들이 이제는 흔한 현실이 되었다.

    지난주에 루브르를 보고 왔으니, 이번에는 오르세이 미술관을 가기로 했다. 옛날에는 기차역이었던 건물이 미술관으로 바뀐 것처럼 시간의 흐름과 기술의 발전은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파리 역에 내리자마자,  즐겨 찾는 빵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10년 전쯤 우연히 발견한 파리의 자그마한 빵집은 아침마다 갓 구워내는 바게트의 향긋한 냄새와 그에 어울리는 훌륭한 맛 때문에  파리에 갈 때마다 꼭 들리는 방앗간 같은 장소이다. 또한, 그 집의 크로와상은 ‘인생 크로와상’으로 불릴 만큼 맛있다. 우리는 바게트, 크로와상, 까페오레와 핫초코로, 간단하지만 파리의 멋이 담긴 프랑스식 아침식사를 마쳤다.



    오르세이 미술관 오픈 시간에 맞춰 미술관에 도착했고, 우리는 마네의 <올랭피아>도 보고,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도 즐겁게 감상하였다. 딸들과 산책하듯 미술관 안을 거닐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깔깔거리는 시간은 무척이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다.


    이렇게 여행을 하게 되기 전, 아주 오래전부터 아이들은 “엄마랑 파리 여행 가서 같이 미술관  다니고,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면 너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그것이 마법과도 같은 주문이 된 것일까.


    미술관에서 나와 샹젤리제 거리의 명품샵에 가서 미리 주문해 두었던 가방들을 찾았다. 2080년 신상인 가방들을 수입되기 전에 미리 파리 현지에서 살 수 있는 것 또한 이번 파리 여행의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다. 쇼핑을 마치고, 신상 아가들을 손에 고이 들고, 우리는 다시 T-35를 타고 다음 여행지 하와이로 향했다.


    미술관 관람과 쇼핑으로 인해 허기가 진 우리는 하와이에 내리자마자 식당에 들어가 포케와 무스비로 점심을 먹었다. 마무리 디저트로 아사이 보울을 먹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와이키키 해변 모래사장에 잠시 몸을 뉘었다가, 스파로 자리를 옮겨 그동안 바삐 지내느라 쌓인 피로와 뭉친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마사지를 받았다.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면서 날아갈 듯 가벼워진 몸으로 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저녁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하늘이 눈앞에 들어온다. 집에 돌아가기 전에 가벼운 저녁식사를 위해 잠깐 하노이에 들러 쌀국수와 반미 샌드위치를 먹기로 하고, 여정을 잠시 바꿔 베트남을 들리기로 했다.

마사지를 받아 나른해진 몸에 뜨끈한 쌀국수 국물이 들어가니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탄성이 우리들 입에서 터져 나왔다. 다시 T-35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모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오늘 하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에는 일본 온천 여행을 가자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맞춰 떠들어댔다.


   자!  여기까지가 나의 상상 속,  완벽한 하루의 시나리오이다.  매우 화려하고, 조금은 바쁘고 분주해 보이기까지 하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내가 하고 싶은 일들, 먹고 싶었던 음식 등등, 나의 최애 템들이 이것저것 복잡하게 버무려져 있는 하루의 모습이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완벽(perfect)’이라는 단어를 구현해내고 정의할 수 있을까?  ‘완벽’을 생각할 때마다 그것을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이 느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완벽한 사람도 없고, 완벽한 대상도 없으며, 더욱이 완벽한 시간을 만드는 일은 실현 불가능에 가깝다. 완벽한 하루에 대한 상상 속에 만들어진 나의 시나리오에도 많은 허점들이 존재할 것이다.


    완벽한 하루를 만들고자 하는 꼼꼼하고 야무진 노력으로 인해  엄청난 성공을 이루어낸 것 같이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사실  나의 마음에 달려있다. 결국 어디서 무엇을 했건 간에 그 시간에 대한 평가는 내 마음이, 내 가슴이 결정하는 것이다. 외적으로는 남들이 보기에 엄청나게 멋진 하루였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반대로 무척 평범해 보이는 소소한 하루였어도 나에게는 어느 때보다 완벽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는가’ 보다는 ‘누구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가’ 하는 것이 나의 ‘완벽한 하루’의 결말의 잣대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하루를 마칠 때 완벽한 행복으로 다가온 하루하루가 쌓여 나의 인생이 되어가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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