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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사가 나리 Apr 10. 2023

나에게 1년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일 년의 갭 이어(gap year) 계획서

    예전에는 항상 공부하는 학생이던 내가 시간이 좀 흘러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이제는 세 아이, 아니 강아지 롤리와 남편까지 합하면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라는 직업은 365일 24시간, 연중무휴를 철저히 지키는 험난한 직종의 일이다. 보통의 경우, 아빠가 집에 없을 때에는 머 그다지 큰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엄마가 하루라도 집에 없는 날이면 그 집은 하루종일 비상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엄마의 손길을 수시로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들이 있는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간혹 혼자 있으면 심심하고 우울하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난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게 되거나, 혼자서 미술관 나들이를 가는 날이 오면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심지어 나는 영화관에도 혼자 간 적이 꽤 있다. 결혼 후부터 시어른을 모시고 살았고, 일찍 아이를 갖게 되어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어려웠던 터라 지금의 나에게는 이게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반나절, 하루, 일주일도 아니고, 1년이라는 장기 휴가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어머,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하하.


    일단 경제적 자유를 얻은 상태라 가정하고, 나는 트렁크에 짐을 싸서, 유럽으로 갈 것이다. 프랑스, 영국, 스위스, 벨기에, 이태리, 그리고 꼭 가고 싶었는데 못 가 본 나라, 스페인에 가 볼 것이다. 한  6개월 정도는 유럽 곳곳을 누비며 가고 싶었던 미술관, 누리고 싶었던 자연환경에 몸을 뉘어보고, 만나고 싶었던 친구들 (8 색조 유럽 식구들 포함)을 만나 그동안 못 나눈 밀린 이야기들을 다 쏟아놓고 싶다. 6개월 동안 여러 나라를 누비면서 보게 될 많은 미술 작품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서 그리 두껍지 않은 아담하고 예쁜 책으로 만들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미술 작품 앞에 서서, 가지고 간 종이 위에 연필로 스케치를 남기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나머지 휴가의 반, 6개월은 일단 한국에 근거지를 두고,  일본과 동남아시아 여행을 다닐 것이다. 일본 온천여행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는데, 딸들을 불러서 같이 온천욕도 하고 맛난 일본음식도 먹으며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싶다. 라오스에 가서 선교사로 있는 교회언니도 만나고, 일도 돕고, 싱가포르, 홍콩, 베트남에 사는 친구도 만나러 가고, 캄보디아 봉사도 가족들 걱정 없이 맘 편히 해보고 싶다.


    또 1년의 휴가기간 동안은 누구 밥 해주고 치우고 할 일도 없으니, 그동안 식사준비와 설거지로 보낸 시간들을 그림 그리는 시간으로 쓰고 싶다. 물론 핑계일 수도 있지만 요즘에도 맨날 그려야지 그려야지 하면서도, 크리에이터 방송 준비에, 미술관 수업에,  그동안 그림 그릴 심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집에 누워서 좋아하는 만화책도 쌓아놓고 보고,  그동안 못 본 영화, 드라마도 실컷 보고 싶다.  어떡하지? 겨우 1년에 이 많은 일들을 다 할 수 있을까?


    요즘은 정말 휘리릭 흘러가고 있는 하루하루를 보면서, 한 시라도 허투루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보통의 날들도 빠르게 지나가는 걸 보면, 휴가로 주어지는 일 년이라면 얼마나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릴지………

     빨리 지나가 버려서 아쉬울 망정,  1년의 휴가가 정말로 주어진다면 또 얼마나 행복할까.


   일 년의 휴가를 꿈꾸며 글을 쓰는 잠시나마 마음속으로 매우 행복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물론 이 글의 제목처럼 일 년을 통째로 내 맘대로 쓸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럴 수 없더라도 짬짬이 틈을 내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휴식을 즐기는 것 또한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소유하는 비결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먹고 쓰기에 따라 일 년이 하루 같을 수도 있고, 하루가 일 년 같을 수도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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