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수라는 산악회에서 정기산행 중이었다. 점심을 먹는데, 어떤 이가 수라에게 물었다.
“혹시 남자 친구가 오늘 산행에 왔어?”
“아니요, 남자 친구는 집에 있어요.”
“벌써, 동거해?”
승훈 오빠가 놀라며 물었다.
“네? 하하하! 아니요. 남자 친구 본인 집에 있겠죠!”
등산도 힘들지만, 하산은 더 힘들었다. 언제나 그랬듯, 수라는 전신이 으스러질 듯이 아팠다. 한숨 돌린 후, 그녀는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산은 온종일 수라 생각만 잔뜩 했나 보다. 여자 친구가 등산하느라 연락을 못 하자, 산은 매우 답답한 눈치였다. 그가 수라에게 물었다.
“누나는, 나 안 보고 싶어?”
귀여운 남자 친구가 이렇게 묻는데, 보고 싶지 않다고 대답할 이가 대체 어디 있겠는가?
“보고 싶어! 부르면, 달려올 거야?”
“최대한 가야지, 나도 보고 싶어!”
“그럼, 자고 갈 거야?”
“당연히! 껴안고 잘 거야. 아, 엄마한테 허락 먼저 맡고.”
이리하여, 수라는 피로를 무릅쓰고 남자 친구를 집으로 불렀다. 씻고, 방 정리도 해야 하니 일부러 시간을 많이 벌어 놨다.
“그럼, 23시까지 와줘.”
그러나, 산은 무려 30분이나 일찍 와서 문을 두드렸다. 산은 헐렁한 흰 후드 티에 남색 운동복 바지 차림이었다.
“왜 이리 일찍 왔어?!”
그들은 별 대화도 없이,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바로 곯아떨어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피곤한 상태였다. 하지만, 산은 도무지 수라를 그냥 재울 생각이 없었다. 수라는 언제,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아득했다.
수라가 다시 깼을 때, 자신은 침대의 안쪽, 산은 바깥쪽에서 자고 있음을 발견했다. 월요일 아침이었다. 그가 깰까 봐, 수라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제자리에 도로 누웠다. 곤히 자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수라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죽은 듯이 자는 중이었다.
수라가 산의 몸을 안자, 그는 곧 잠에서 깨어 수라를 바라봤다.
"일정이 있어서, 이제 나갈 준비 해야 돼."
"무슨 일정?"
"월요일마다 안마원 가거든. 어제 등산해서 뭉친 근육통 풀려고."
"누나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래."
"그건 곤란한데! 주인 없는 집에서 혼자 뭐 해? 어서 집에 가."
아침상은 수라가 차리고, 산이 설거지했다. 함께 옥상에 올라가 세탁물을 건조대에 널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우리, 꼭 같이 사는 것 같다."
"남들이 보면, 대학생 부부인 줄 알까?”
버스 정류장에서 그들은 작별 인사했다.
“사랑해!”
산이 수라에게 말했다.
“나도 사랑해!”
사랑한다는 말을 인사처럼 자연스럽게, 또 자주 하는 것은 참 좋았다. 하지만, 이날이 그들의 마지막일 줄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목요일에 함께 등산을 가기로 약속했었는데,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수라는 안마원에 가서 남자 친구에 대해 자랑했다.
"키 크고, 귀엽고, 어리고, 잘 생겼는데, 또 착하기까지 해요!"
수라가 그에 대해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이혼 사유는 바로 아버지의 의처증 때문이라고 산을 통해 들었다. 그 사연을 듣고, 수라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자녀가 셋이나 있는데, 부인을 의심할 일이 대체 뭐가 있단 말이지? 아이를 셋 낳을 정도면, 부부 금실이 좋은 게 아닌가?’
안마원장 경환은 의처증, 의부증은 심각한 질병이라고 했다.
"시각장애인이 되기 전에 교직원으로 근무했어요. 실제로 그런 사례를 자주 목격했답니다."
"상상하니, 끔찍하네요......"
그날 오후, 산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미성년자 데리고, 너 대체 뭐 하는 짓이니? 당장 헤어져!”
“혹시, 산이 어머님이세요?”
“네!”
“어머님, 그건 산과 저의 일이에요. 알아서 할게요.”
“알아서 하기는, 이 아줌마가 진짜! 미성년자가 뭘 알아서 하는데? 본인이 연장자면, 애가 연락해도 알아듣게 타일러야지! 아니에요? 산이가 본인 아들이라고 생각해 봐요.”
“뭐, 어차피 입대하면 볼 수도 없을 텐데요, 뭐.”
“그럼, 군대 가기 전까지 애랑 만난다는 거야, 지금?”
“그냥, 산이를 군대에 빨리 보내시는 건 어떠세요?”
“야, 너 지금 장난하니? 내가 며칠 동안 참다, 참다가……. 집까지 불러들여서 뭐 하는데?”
“글쎄요, 그럼 산이더러 오지 말라고 하세요.”
“네가 연락하지 마! 내가 너희 집 가서 뒤집어엎어 놔?”
“흠, 좋을 대로 하세요.”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
“그렇게 반말하지 마세요.”
“반말하지 마세요?”
“네.”
“집에 들여서 뭐 하는데?”
“같이 장도 보고, 밥도 먹었어요.”
“어이가 없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장을 보고, 밥을 먹어?”
“금, 토, 일, 월. 나흘 됐네요.”
“말씀 참 잘하시네요.”
“네, 제가 언변이 좀 유창해요.”
“언변이 유창해요? 네 부모는 알아?”
“부모님이랑 절연해서요.”
“아, 그러니까 네가 애랑 놀지. 아, 진짜 장난 아니네. 끝까지 본인은 잘못이 없다는 거네?”
“뭐, 제가 원조교제를 한 건 아니잖아요?”
“이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네? 네가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데리고 살라고요?”
“미쳤니?”
“파 쳤나요?”
“쌍놈의 지지배야, 오늘 너 집에 있지?”
“음,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없을 것 같기도 하네요.”
“너, 뭐 하는 애니?”
“글쎄요. 산이한테 물어보세요.”
“참 대단하시네. 4일 만나서 장 보고, 밥 해 먹고. 대단하십니다! 그래, 언젠간 내 얼굴 한 번 볼 거다.”
“아, 예.”
산은 연락 두절이었다. 수라는 혹시 그가 휴대전화를 어머니에게 압수당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화요일 아침, 수라는 그가 취업한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의 첫 출근 예정일이었다. 그에게 일정을 직접 들어서, 수라는 알고 있었다.
“산이 어머님께서 많이 화나셨더라.”
“누나, 죄송해요. 이제 못 만날 것 같아요.”
그가 이렇게 관계를 쉽게 정리해 버릴 줄은 수라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냉정해져야만 했다.
“그래, 알았어. 잘 지내, 산아(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