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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by 슈히

일요일 오전이었다. 박하는 남자 친구 도현과 함께 햄버거를 먹고, 인근 백화점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지하 1층에 위치한 식당가를 누비는데, 그녀는 멈칫했다.

"왜 그래?"

도현이 여자 친구에게 물었다.

"방금, 아는 사람 봤어!"

"그래? 어디? 누군데?"

도현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 오진 말고."

박하가 말했다.

"응."

그녀는 발걸음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목표물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었다. 남녀 한 쌍이 회색 탁자에 마주 보고 앉아 식사 중이었다. 여자는 낯빛이 창백했고, 야위었다. 안색이 누렇기까지 했다. 청바지를 입은 가녀린 여자의 다리에 박하의 시선은 잠시 머물렀다.

'맞네! 여기서 만나다니,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얼굴이 매우 수척하군. 게다가, 여전히 아이는 없는 것 같고...... 쯧쯧. 저 남자는 남편인가? 어디, 얼굴 좀 볼까?'

박하는 여자의 뒤편으로 넌지시 몸을 기울였다. 흰 피부의 남자는 더벅머리였다. 덥수룩한 머리칼과 안경이 얼굴 절반 이상을 가렸고, 전체적으로 마른 인상이었다.

'깔끔하게 이발 좀 하지, 지저분하네. 몇 해 전에 사진으로 봤을 땐, 남편이 덩치 있고 체격 좋아 보이던데. 실물은 말라깽이네. 뭐, 그간 고생해서 빠진 걸 수도 있고.'

박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혹여나 자신의 존재를 눈치챌까 마음 졸였다. 때마침, 박하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상태였다. 누군가 그녀를 봤더라도, 알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했다.

'날 보지도 않았고, 눈이 마주치지도 않았어. 내 존재는 전혀 모르는 것 같았어. 휴, 모자와 마스크를 쓴 게 신의 한 수였군!'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도현에게 다가갔다. 누가 들을세라,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는 사람 맞아. 근데, 아는 척은 안 했어."

"아는 사람인데, 왜 아는 척 안 해?"

"음, 아는 척할 필요 없는 사람이라서. 내가 예전에 불임 부부 얘기한 적 있지?"

"기억 잘 안 나."

"가면서, 얘기하자. 여길 어서 벗어나자."

박하의 이야기는 5년 전, 과거로 한참 거슬러 올라갔다. 어느 여름날, 그들은 함미동에서 처음 만났다. 온라인 동호회에서 채팅하며 서로를 알게 됐고, 이날 실제로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늦어서 죄송해요! 주차할 곳이 없어서, 애먹었네요."

"그, 그래요. 동네가 혼잡해서, 차 댈 곳이 없죠."

박하는 애써 미소를 띠었으나, 언짢은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초면에 제가 실례를 했네요. 제가 점심 살게요!"

"아? 괜찮은데......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요!"

박하는 활짝 웃었다.

'이 언니, 상당히 솔직하네. 표정에 감정이 다 드러나.'

초록은 피식 웃었다. 식사를 마친 후, 카페로 이동해 대화를 나눴다.

"엥! 기혼이라고요?"

박하가 소리쳤다. 초록은 결혼한 지 3년이 지난 4년 차의 유부녀라고 했다.

"모임 나가는 걸, 남편이 싫어하지 않나요?"

"제가 지금 휴직 중인데, 집에만 있었더니 오히려 침체되더라고요. 오히려 남편이 동호회 활동을 장려하더군요. 남편을 만난 것도, 동호회에서였거든요."

"오, 그렇군요! 결혼했다니, 부러워요."

박하는 선망의 눈빛으로 초록을 바라봤다.

"하하, 저희는 연애 6개월 만에 상견례했어요. 언니도, 인연을 만나면 금방이에요!"

초록은 커피를 마시며, 미소 지었다.

'엥? 6개월? 너무 성급하지 않나?'

박하는 의아했다.

"혹시, 속도위반......?"

초면에 실례되는 질문인 건 알지만, 그녀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아, 그건 아니에요."

초록이 바로 부정했다. 그녀의 고운 얼굴에 수심이 스쳤다. 잠시 머뭇거리다 운을 뗐다.

"노력 중인데, 아이가 안 생겨요. 휴직하고, 지금 시험관 시술을 받고 있어요......"

"아, 미안해요! 걱정이 많겠어요. 많이 힘들죠?"

"곧 생기겠죠! 남편은 우리끼리만 행복하면 된다고 했고, 시부모님께서도 괜찮다고 하셔요. 하지만, 친정 부모님께선 상당히 불안해하세요. 아무래도, 딸 가진 부모 입장이니까요. 사돈 뵐 낯이 없다고 하셨어요. 제게 보약이라도 지어먹으라고 말씀하셨고요."

"아이가 꼭 있어야 해요? 요즘엔 딩크족도 많잖아요!"

"언니, 아이가 안 생기는 것과 일부러 안 갖는 건 달라요. 게다가, 저는 장녀거든요. 남편도 역시 장남이고요."

"그럼, 아무래도 대를 이어야 된다는 부담이 크겠어요."

몇 주 후, 그들은 또 만났다. 이번에도 역시 식사 후 카페에 가는 일정이었다.

"언니, 말 편히 해도 돼요."

"아, 그럴까?"

"언니는 뭐 하고 지내요? 만나는 사람 있어요?"

"전혀 없는데...... 아! 나 최근에, 하녀복 받았어!"

박하가 웃으며, 스마트폰을 꺼내 초록에게 사진을 보여줬다.

"이런 걸, 누가요? 언니, 애인도 없다면서요."

초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헤어진 여자 친구가 집에 두고 간 물건이래. 별 의미는 없어. 어느 동호인이 그냥, 나한테 그냥 버린 거야. 내 입장에선 희귀품 수집이지, 뭐."

"여자가 이런 거 입으면, 남자들은 좋아해요?"

초록이 물었다. 박하는 대답하기 민망했으나, 시원스레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섹시하잖아! 물론, 누가 입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뇨. 내 남편은 이런 거 봐도, 무미건조할 걸요?"

"그게 무슨 뜻이야? 이걸 보고 무반응이라고?"

"연애할 땐, 저도 몰랐어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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