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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by 슈히 Mar 21. 2025

  박하는 골몰했다. 참석자는 둘 뿐이었다. 박하는 댕댕과 단 둘이 만나는 건 어색할 것 같아서, 다른 모임에서 회원을 한 명 더 모집했다. 산책 모임 당일, 세 명이 집결지에서 만났다.

  "안녕하세요!"

  댕댕이 인사했다.

  "잘 지냈어요?"

박하가 그에게 안부를 물었다. 댕댕은 연한 색 청바지를 받쳐 입고, 얇은 연두색 니트와 가벼운 검정 점퍼를 걸쳤다. 박하가 보기엔 그의 옷차림이 다소 추워 보였지만, 봄 나들이에 어울리는 모양새를 갖춘 셈이었다.

  '마치 싱싱한 새싹 같군!'

  박하가 운전했다. 셋 중에 가장 연장자이기도 했고, 만나자고 제안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의 차에 두 남자가 탔다. 조수석에는 은마가, 뒷좌석에는 댕댕이 자리했다.

  "지인 한 명 데려왔는데, 괜찮죠?"

박하가 댕댕에게 동의를 구했다.

  "네, 그럼요. 전 괜찮아요!"

댕댕은 흔쾌히 대답했다.

  그들이 탄 차는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이동 도중 별 대화는 없었다. 주차장에 주차한 후, 내려서 비탈길을 걸었다. 가파를 경사를 만나자, 박하는 다소 숨이 찼다.

  "와, 누나 콧대가 예술이네요!"

  댕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의문이 든 나머지, 박하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응? 우리 지난번에도 봤잖아요."

  "지난번엔 이렇게 가까이에서 누나를 보진 못한 걸요."

  "그렇군요. 댕댕 님은 콧대가 낮네요."

  "......"

댕댕은 대답이 없었다. 순간, 박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가만! 이거 혹시, 외모 칭찬한 건가?'

  댕댕은 줄곧 박하의 곁에서 걸었다. 그는 은마와 일절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그건 은마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초면이라서 어색하고, 사내들끼리는 특별히 궁금한 점이 없어 보였다.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와, 경치가 끝내주네요!"

  댕댕이 함성을 질렀다. 과연, 20대 다운 명랑한 반응이었다. 갈래길 4구간, 호수를 감싸는 산세가 빼어난 명승지였다. 청명한 하늘 아래, 3월의 쌀쌀한 기운이 살짝 감돌았다.

  "훗, 그렇죠? 오길 잘했죠?"

  댕댕은 처음 봤을 때보다 붙임성이 더 좋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잘재잘 곧잘 했다. 올해 1월에 모임에 들어온 그는 작년 8월부터 활동한 박하보다 오히려 정보가 훨씬 많았다. 한편, 댕댕이 진지하게 질문했다.

  "누나, 웅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웅이......?"

  박하는 머릿속으로 웅이를 떠올렸다. 동호인 웅이는 고깃집을 운영하는 사장이었다. 박하도 예전에 웅이의 매장에서 동호인들과 식사한 적이 한 번 있었다. 그러나, 그와 친해지고 싶진 않았다. 웅이는 키도 작고, 뚱뚱한 데다 눈치마저 없었다. 심지어 박하에게도 일전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사람 별로라서 그냥 차단했어요. 영영 만날 일 없을 것 같아서요. 작년에 내가 교통사고 당해서,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거든요. 치료받느라, 병원 줄기차게 다녔어요. 그런데, 웅이가 나를 나일론 환자 취급하더라고요! 남의 아픔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타인에 대해 험담이 좀 심했나 싶어서, 박하는 짐짓 댕댕의 눈치를 살폈다.

   "근데, 웅이는 왜요?"

  "어, 음...... 제가 사실 모솔인데, 웅이가 저를 여미새라고 모함했어요."

  "엥, 모솔이라뇨?"

박하가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앞에서 혼자 걷던 은마가 몸을 돌려 작게 중얼거렸다.

  "뻥 같은데......"

  "혹시, 신체에 무슨 결함이라도......?"

박하가 두 손으로 입을 감싸며, 댕댕에게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저, 정상이에요! 우측 눈 시력이 2.0이라고요!"

  "아, 그래요? 완전 몽골인 시력이네. 그럼, 군대는 다녀온 거예요?"

  "좌측 시력은 현저히 낮아요. 시력이 짝짝이라서, 군 면제받았어요."

  "아, 눈 때문에 군대 안 갔어요? 그런 게 있구나. 웅이한테 여미새라는 모함을 받고, 가만히 있었어요? 무슨 근거로 그러는 건데요?"

  "제가 술을 안 마시거든요. 술자리에 가도, 탄산음료만 조금 마실 뿐이에요."

  "그럼, 무슨 재미로 가요?"

  "그냥,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싶으니까 가는 거죠. 술 안 마시니까, 맨 정신으로 여자들 집에 바래다준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웅이가 저를 여미새라고 했어요."

  "그건 좀 억지 아닌가......? 나잇값도 못 하네. 웅이가 한참 형 아니에요?"

  "맞아요."

  댕댕은 호기심이 많고, 입이 가벼운 편이었다. 박하는 모임 내의 시시콜콜한 사건의 내막을 그의 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무미건조한 삶이 계속되는 가운데 누군가의 설레는 연애사를 듣는 건 흥미로웠다.

  "어머, 둘이 사귄다고요? 세상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다들 수완이 좋아. OO는 키가 작지만, 상당히 미인이던데."

  "어, 누나 XX 형 얼굴 몰라요?"

  "몰라요. 술자리를 안 나가니, 만날 일이 없죠. 왜요?"

  "그 형도 잘 생겼어요."

  "오, 그래요? 선남선녀가 사귀네. 좋겠다!"

  "게다가 연상연하예요."

  "오호라, 능력 좋네." 

  데크를 지나 흙길을 따라 걷는 도중, 그들은 홀연히 핀 꽃나무들을 발견했다. 봄이 움트는 중이었다. 박하는 발길을 멈춰 한참 바라봤다. 마침 그녀가 아는 꽃이었다.

  "어머, 예뻐라! 이 꽃, 이름이 뭔지 알아요?"

댕댕은 아마 모를 거라고 예상하며, 박하가 질문했다. 다음으로 이어진 댕댕의 대답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박하 꽃!"

  순간, 박하는 빵 터졌다. 그가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댕댕이 그녀보다 한참 어렸지만, 다음에 또 만나도 괜찮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풉! 그런 말도 할 줄 알아요? 연락처 알려줘요. 다음에 시간 맞춰서 같이 등산 가게."

  "어, 아무한테나 번호 안 알려주는데......"

댕댕이 거절하자, 박하는 그를 다그쳤다.

  "뭐예요, 나랑 등산 가기 싫어요? 지난번에 보니까 산 잘 타던데. 튕기지 말고, 빨랑 번호 찍어요!"

  박하가 짜증 내자, 댕댕은 마지못한 척 따랐다. 이렇게 유들유들 장난을 잘 치는 그가 어째서 여태 애인이 없는지, 박하는 의아했다. 그녀는 무안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은마는 저만치 떨어져서 혼자 걷고 있었다.

  "박하 누나!"

  앞서 가는 박하를 댕댕이 부르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댕댕이 박하에게 질문했다. 그건 그의 터무니없는 호기심이었다. 박하로서는 나이 어린 이성에게 들을 거라고 예상한 적도 없고, 평생 결코 들은 적조차 없어서 황당했다.

  "가슴 몇 컵이에요?"

  순간, 박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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