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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댕

by 슈히 Mar 14. 2025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이후, 박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었다. 코코넛 사(社)의 메신저에는 열린 대화방이라는 채팅 공간이 생겼고, 이틀 통해 각종 동호회 활동도 가능해졌다. 박하는 어느 날, 동호회 방제를 쭉 훑어보다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 대림시의 동호회들 중, <2030 정상인 없는 방>이라는 글을 보고, 호기심이 일었다. 

  '오, 과연 비정상인들만 모인 곳일까? 재밌겠는걸!'

  그녀는 이렇게 채팅방에 발을 디뎠고, 박하는 낯선 사람들과 만날 기대에 부풀었다.

  2020 년 2월 X일, 토요일 10시였다. 시암산에서 총 여덟 명이 모였다. 신기하게도, 남자 넷 여자 넷 성비가 딱 맞았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할까요?"

  이번 등산 모임의 주최자인 박하가 제안했다. 그러자, 다른 이들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네? 자기소개요?"

  "박하 님만 초면이고, 우리 서로 다 알아요."

  "앗! 그, 그래요? 다들 친하군요!"

  "우리 간밤에 술 마시고, 잠 안 잔 채로 여기 온 거예요."

  친목회는 대부분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박하는 모임의 술자리는 늘 피하고, 동호인들과 카페에 가거나, 운동을 했다.  

  '휴, 오늘도 역시 술판이로군. 어떻게, 매일 술을 마신담? 보약도 아니고, 건강에 해로운 걸 저렇게 진탕 마셔대다니...... 쯧쯧, 한심해!'

사람들이 술을 대체 무슨 맛으로 마시는 건지,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이 들수록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근력을 키워야 하는데, 술을 마시면 근육이 분해되잖아! 운동한 노력이 죄다 헛것이 되고 말아.'

박하는 이렇듯 술에 대한 반감이 컸다.

  "박하 님은 생각보다 이 방에서 오래 있네요."

  언젠가 만났던 동호인이 박하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박하 님은 술을 전혀 안 마시잖아요."

  "그렇죠."

  "여긴 술 모임이 대부분이잖아요."

  "뭐, 술 안 마시는 사람은 어딜 가나 있는걸요!"

박하는 빙긋 웃었다. 이런 모임에서 여덟 명이 등산하는 건, 사실 기적에 가까웠다. 이언이 박하와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그는 33살, 박하와 동갑이었다.

  "20대들은 우리가 좀 불편할걸?"

  "난 안 불편한데, 그게 무슨 뜻이야?"

  "우리는 편할지 몰라도, 저 친구들 입장에선 어렵지."

  "아, 오늘 참석자들 중 최연소는 댕댕이네. 가만, 우리와는 무려 8살 차이네? 큰 차이다! 으으, 우리 너무 늙었다......"

  반 오십 댕댕은 무리들 중 유독 박하의 눈에 확 띄는 이였다. 큰 키에 마른 몸, 날렵한 움직임이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산 잘 타는 보기 드문 인재다!'

앞서가는 댕댕의 뒤를 따르던 박하는 속으로 감탄하며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이제, 길이 없는데요?"

댕댕이 박하를 돌아보며 말했다. 과연, 사실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순 없지. 조금만 더 가보자."

  박하는 가파른 언덕을 올랐고, 이언이 걱정하며 뒤따랐다.

  "괜찮겠어?"

댕댕이 먼발치에서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주차장에서 기다릴게요!"

  박하는 이언과 둘이 계속 걸었다. 이언이 앞장섰고, 박하가 그를 천천히 따랐다.

  "헉, 등산로 정비가 아예 안 돼 있네."

  "조심해!"

  박하가 아슬아슬한 경사에서 조심스럽게 발을 뻗는데, 순간 미끄러질 뻔했다. 그녀는 아찔했다. 할 수 없이, 무릎을 굽히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움직였다. 길이 나빠서, 더 이상의 진전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들은 위험하다고 판단했기에, 끝끝내 하산했다.  

  "휴, 등산 너무 힘들다......"

  이언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고생했어! 다음엔 등산 말고, 산책 가자!"

박하가 그를 격려했다.

  "행군 아니야......?"

  "하하, 드디어 원점 도착!"

  다른 여섯 명의 무리들은 주차장에 모여 있었다.

  "오늘 새벽까지 달렸더니, 피곤하네요. 저희는 식사 안 하고, 해산할게요."

  "그래요! 푹 쉬어요."

박하가 대표로 인사하며, 그들을 배웅했다.

  "저도, 차를 얻어 타야 해서......"

  어떤 이는 박하의 눈치를 보며, 변명하듯 말했다. 그들을 태운 흰 승용차는 사라졌다. 박하는 댕댕이 어엿한 차주라는 점에 대해서도 사뭇 놀랐다.

  '오, 댕댕은 나이도 어린데 벌써 자가용이 있네? 멋지다!'

  남은 인원들은 네 명, 모두 30대였다.

  "우리 넷은 점심 먹으러 가요."

식사를 순조롭게 마친 후, 적당히 대화를 나누다가 해산했다.

  몇 주가 흘렀고, 박하는 한동안 댕댕을 까맣게 잊었다. 얼마 후,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집단 감염 예방을 위한 회사의 강제 조치로 박하는 휴업 상태에 놓였다.

  '아, 지루해!'

  손바닥 만한 원룸 자취생 박하는 책상 앞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독서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외향적인 박하는 야외에 나가고 싶었으나, 결코 혼자이고 싶진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단체 대화방에서 댕댕이 말했다.

  "저 곧 백수 돼요......"

박하에게는 한 줄기 빛과 같은 희소식이었다.

  "백수 대환영! 댕댕 님, 금요일 오전 10시에 같이 산책 갈래요?"

  "네, 가능해요."

  "그럼, 공지 올릴게요!"

  "네......"

  '꺅, 외출한다! 이게 얼마 만이야!'

  박하는 좋아서, 방방 뛰었다. 하지만, 댕댕은 소극적이었다. 박하가 산책 일정을 단체 대화방에 공유했으나, 참석자는 아무도 없었다. 박하는 답답한 마음에 댕댕을 몰아세웠다.

  "댕댕 님, 혹시 산책 가기 싫어요?"

  "아직 날짜가 멀어서요......"

  "아, 어서 참석 8282 눌러요!"

  "네......"

  박하가 다그치자, 댕댕은 마지못해 참석 의사를 밝혔다. 단체 대화방 일정 기능 중 회원의 참석 여부를 표시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잉, 진짜 가기 싫은가......?'

  청춘들의 사탕처럼 달콤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탕은 달달하지만, 금방 녹는다. 또, 깨지기도 쉽다. 사탕 같다는 건, 어쩌면 가볍고도 얄팍함이 아닐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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