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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

by 슈히

"깔깔깔, 단체 대화방에만 사진 안 올리면 되잖아!"

"못된 누나!"

장난에 이어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박하는 댕댕에게 편히 반말했고, 댕댕은 여전히 경어를 사용했다.

"집에 잘 들아감? 뭐 해?"

"자려고 누웠어요."

밤 9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박하는 의문이 들었다.

"왜 벌써 자?"

"저 내일 번지 점프하러 가요."

'위험하니까 가지 말래도...... 은근히 고집이 세네. 혼자 가면 외로울 텐데.'

댕댕은 동호회 내에서 번지 점프 모임을 계획했으나, 안타깝게도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서른두 살의 남자 회원이 댕댕의 게시글에 댓글을 달았는데, 박하는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자살 벙이냐, 댕댕?"

박하도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 다음으로 댓글을 달았다.

"비추천! 위험해요. 번지 점프 유경험자 백(白)."

댕댕은 혼자라도 갈 기세였다. 박하는 개인적으로 연락해 댕댕을 설득하려 애썼다.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고......"

그러자, 그로부터 칼답이 왔다.

"누나는 첫 경험이 언제예요?"

박하는 어리둥절했다.

"무슨 뜻이야?"

"누나, 고수잖아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번지 점프?"

"누나, 왜 모르는 척해요?"

"너 자꾸 이상한 질문 할래?"

"댕댕 연애하고 싶어요ㅠㅠ"

'헐! 내가 생각하는 그거, 인가? 설마! 이거 혹시 나한테 하는 말이야? 나랑 연애하자고? 에이, 그럴 리가! 우리 나이 차이가 몇 살인데...... 그러고 보니, 내일이 화이트 데이네.'

다음날 오전 10시, 박하는 집 앞에서 은마를 만났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그들은 갈래길을 산책할 예정이었다.

"안녕하세요."

"네, 타세요."

"오늘은 우리 둘이네요."

"네, 댕댕은 오늘 번지 점프하러 갔어요."

"번지 점프요? 위험한 놀이네요."

"말려도 막무가내예요! 그 애 혼자서 괜찮으려나 모르겠어요."

조수석에 앉은 은마가 곁에 앉은 박하를 슬며시 바라봤다. 운전대를 잡은 박하의 머릿속은 온통 댕댕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사고라도 당하면, 도와줄 사람도 없을 텐데......'

그들은 어제 걸었던 갈래길 4구간 중 가지 않은 길을 이어서 걸었다. 강변을 거니는데, 은마가 대뜸 막대 사탕을 박하에게 내밀었다. 코딱지 만한 크기였다.

"사탕 드세요."

"......뭐예요?"

"오늘이 화이트 데이잖아요. 여동생 거 사면서, 하나 더 샀어요. 별 뜻은 없어요......"

은마가 시선을 슬쩍 피했다.

"에계, 고작 츄파츕스예요? 아무튼, 잘 먹을게요!"

박하는 사탕의 포장지를 뜯어 입에 쏙 넣었다. 한편으로, 은마를 경계했다.

'설마, 날 마음에 둔 건 아니겠지?'

은마는 갈래길의 아름다운 풍경을 열심히 촬영했다. 그 모습을 보며, 박하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사진 찍는 거 좋아하나 봐요."

"네, 취미예요."

"저는 육안으로 보는 게 더 좋더라고요."

"그렇긴 하죠."

대화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은마는 말이 없고, 조용했다. 박하는 그런 그가 다소 불만스러웠고, 답답했다.

'무미건조한 사람이네. 노잼......'

"나, 밥 사줘요."

박하가 은마에게 요청했다.

"네?"

"은마 님은 자가용이 없으니, 제가 매번 운전하잖아요."

"아, 저 운전면허도 없어요."

"네? 30대가 왜 면허도 없어요?"

박하는 망연자실했다.

"제가 운전하면, 사람 칠까 봐요......"

은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니,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해보지도 않고......"

"예전에 태국에서 오토바이 운전한 적이 있었는데, 사고가 있었거든요. 제 실수로 사람을 다치게 했어요. 가족 중에서도 어머니와 여동생만 운전하고, 아버지와 저는 운전 안 해요."

그는 트라우마가 있는 모양이었다. 애처로운 상황이었으나, 박하는 은마가 한심할 뿐이었다.

"아무튼, 밥 사요!"

"그래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사드릴게요."

"생각만 하면 뭐해요? 말을 해야지......"

그들은 차를 타고 이동했다.

"말 편히 하셔도 돼요."

은마가 먼저 제안했다. 박하가 은마보다 1살 누나였다.

"아, 그래? 넌 계속 존댓말 해."

"때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반말이 쉽군요?"

"네가 반말하라며!"

두 남녀는 하리동의 어느 식당에서, 막국수 두 그릇을 주문했다. 후루룩, 냠냠 소리를 내며 말없이 식사하던 도중, 은마가 옆 좌석을 흘낏 봤다. 고소한 반죽이 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식욕을 자극했다.

"녹두전을 즉석에서 요리해 먹는군요! 저것도 추가할까요?"

"어, 아냐!"

박하는 부담스러워서,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은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녹두전을 주문했다. 은마가 베푼 의외의 친절에 대해 박하는 내심 그를 경계했다. 어느덧, 녹두전이 노릇노릇 맛깔스럽게 익었다.

'흠, 나한테 호감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이렇게 돈을 안 쓸 텐데......? 단순히 식탐 때문에 주문한 건가?'

그들은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섰다. 박하는 은마에게 인사했다.

"잘 먹었어!"

"과식해 버렸네요."

한편, 박하는 온통 댕댕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번지 점프하러 혼자 멀리 떠나 있을 그에게 박하는 연락해 당당히 요구했다.

"나, 사탕 줘!"

"사탕이요? 알겠어요."

그는 의외로 쉽게 사탕을 준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헤벌쭉 웃었다.

"우와! 언제 와?^^

"저녁 7시쯤?"

박하는 집에서 요리하며, 댕댕을 기다렸다. 이윽고, 댕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누나, 저 도착했어요. 집 앞으로 나오세요!"

"응, 지금 갈게!"

박하는 전화를 끊으려 했으나, 댕댕이 질문했다.

"저기, 누나! 근데, 사탕은 갑자기 왜요?"

"너, 정말 몰라?"

"어어, 몰라서 물었......"

"나도, 너한테 줄 거 있어."

"그게 뭔데요?"

"만나서 얘기하자. 일단, 끊어!"

"네."

'요리 완성을 못 했는데, 어쩌지? 다녀와서 마무리해야겠네. 별 수 없지!'

박하는 흐르는 물에 황급히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고, 겉옷을 걸쳤다. 저녁 7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으, 추워! 예상보다 빨리 왔네?"

팔짱을 낀 채로 박하가 등장했다. 댕댕은 차에서 내려서있었다. 그도 역시 마스크를 쓴 상태였다. 댕댕은 쭈뼛거리며, 어색하게 사탕을 건넸다. 알록달록한 막대 사탕은 박하가 낮에 은마로부터 받은 밤톨 만한 사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컸다.

"여기요."

"고마워! 추우니까, 일단 차에 타서 얘기하자."

박하는 기뻐서, 활짝 웃었다. 그가 건네는 사탕을 소중히 받았다. 조수석에 앉은 박하는 댕댕에게 다정히 물었다.

"잘 다녀왔어?"

"왕복 여섯 시간 운전하고, 약 이십 분 놀았네요......"

"밥은 먹었어?"

"휴게소에서 가락국수 먹었어요."

"뭐, 고작 가락국수? 그 멀리까지 가서 맛집도 안 가고?"

"괜찮아요. 맛있었어요!"

"너, 안색이 초췌해!"

박하는 파리한 댕댕이 안타까웠으나, 댕댕은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화제를 전환하려는 듯 그가 제안했다.

"마시멜로우 있는데, 먹을래요?"

박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 화이트 데이야."

"아, 그래요?"

"화이트 데이가 어떤 날인지는 알지?"

"잘 몰라요. 영어로 하얀 날이라는 뜻인가? 무슨 날인데요?"

"헐......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한테 사탕 주고, 사랑 고백하는 날이야."

박하는 댕댕의 무식함에 놀랐으나, 친절히 설명했다. 그리고, 장난스레 말했다.

"어휴, 모솔은 어쩔 수 없군!"

댕댕이 발끈했다.

"모를 수도 있죠! 모솔 놀리지 마요!"

박하는 망설이지 않고, 댕댕의 왼손을 덥석 잡았다.

"손을 씻었더니, 차가워. 네 체온 좀 나눠줄래?(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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