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제도 보고 엊그제에도 봤잖아!"
박하는 주행 중에 댕댕과 통화하며, 목적지로 향했다. 고작 뽀뽀 좀 했다고, 댕댕이 박하를 여자로 본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몰라요. 보고 싶은 걸요. 보고 싶게 만들어 놓고선!"
"그럼, 난 더 애타게 만들어야지!"
"입술을 맞닿은 순간, 저도 모르는 감정들이 생긴 걸요! 설레고, 누나가 자꾸 생각나고."
"쉬운 남자!"
"그럼, 다른 여자가 너한테 뽀뽀하면 그 여자한테 또 설레겠네?"
"누나, 손 잡아도 돼요? 난 여자 손이라곤 엄마 손 잡아본 게 다예요."
"풉! 아, 웃겨! 그래, 얼마든지 잡으렴. 모임은 재밌었어?"
"네, 아까 사람들 만나고 지금은 집에 들어왔어요."
박하는 산악회 집결 장소에 주차했다.
"이제, 전화 끊어야 해. 산악회 버스 타거든."
"아, 벌써요? 더 통화하고 싶은데......"
"또 연락할게. 푹 자!"
"알았어요."
그녀는 당시 예상하지 몰랐다. 그의 이런 생활 습관이 문제가 될 것이란 것을.
3월의 강원도에는 눈이 펄펄 내렸다. 박하는 등산 중, 무려 세 번이나 넘어졌다. 위험한 순간들을 자주 마주했다. 눈이 쌓인 흙바닥은 빙판길이었고, 그녀는 연달아 미끄러질 뻔했다.
'현관에 아이젠을 놓고선, 안 챙겼네...... 어휴, 머리가 나쁘니 몸이 고생이로군!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 해!'
박하는 계속 댕댕을 떠올렸다. 댕댕의 '보고 싶다'라는 말이 박하에게 큰 응원이 됐다. 그녀는 가까스로 정상에 도착했다. 그녀는 댕댕에게 받은 사탕을 배낭에서 꺼내서 정상석이 함께 나오도록 기념 촬영했다.
'이번 화이트 데이엔 귀여운 남자에게 사탕을 받았군!'
의자 위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앉아서 잠깐 숨을 골랐다. 연세 지긋한 남자 노인들이 박하에게 말을 걸었다.
"남편은 안 왔어?"
"아니, 미혼이래."
그들은 동행인 모양이었다.
"네, 저 혼자 왔어요."
"결혼할 생각은 있어?"
"애인조차 없는걸요......"
"그럼, 좋아하는 사람은 있고?"
"요즘 연락하는 사람은 있는데, 너무 어려요."
"상대는 몇 살인데?"
"25살이요."
"아가씨 나이는?"
"33살이요."
"아따, 나이 차 많이 나네! 가만, 우리 막내랑 동갑이네."
"남자 나이 25세면, 아직 애기네! 아가씨가 잘 키워."
"아니요. 저 혼자 자라기도 힘들어요."
박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요즘은 성 평등 시대이니, 연상 연하가 대세지!"
"여덟 살 차이면, 별 거 아니구먼. 연예인 H는 남편이 18살 연하라던데......"
"허허, 여고생일 때 남편이 태어났군?"
고된 등산을 홀로 마치고, 박하는 무사히 하산했다.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길, 박하는 댕댕으로부터 온 연락을 뒤늦게 확인했다.
"누나, 뭐해요?"
"하산 후, 귀가 중. 넌 뭐 해?"
그러나, 그로부터 답장은 오지 않았다.
'뭐야. 바쁜가......? 이번엔 내가 전화해 볼까?'
뚜르르르, 신호음이 들렸다.
"여보세요......"
자다 깬 듯한 잠긴 목소리였다.
"댕댕! 여태 자는 거야?"
"응, 자고 있었어......"
"피곤했구나! 그래, 더 자. 끊을게."
"응......"
그로부터 한두 시간 후, 댕댕에게 문자가 왔다.
"이제 일어났어요."
"너, 아까 반말하던데?"
"앗, 죄송해요."
"이제, 나 편해졌어?"
"존댓말 쓸게요......"
"오늘 계속 네 생각나더라!"
"또 설레게 말하시네......"
박하는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댕댕에게 전송했다. 사탕을 마치 댕댕의 관심이라고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박하는 꾹 참았다. 댕댕과 아직 아무런 사이도 아니기에 오해 받을 수도 있다고 그녀는 판단했다. 또, 서로에게 느끼는 미묘한 감정을 둘만의 비밀로 간직하는 게 더 신비로웠다.
일요일 밤, 볼링 모임이 열렸다. 댕댕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모임에 참석했다.
"지금 볼링 치러 왔어요!"
"볼링 잘 쳐?"
"아니요. 오늘 처음 쳐봐요."
"재밌어?"
"잘 쳐야 재밌죠......"
누군가 생각할 대상이 있다는 건, 박하에게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자정을 앞둔 야심한 시각, 박하는 지친 몸을 이끌고 마침내 귀가했다. 눈과 땀에 젖은 꼬질꼬질한 모습이었다.
'휴, 정말 긴 하루였어! 어서 씻고, 자야지......'
목욕 후 젖은 머리칼을 말리던 중이었다. 박하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오밤중에 누구지......?'
댕댕이었다.
"여보세요? 안 자고 뭐 해?"
"누나랑 통화하려고요!"
'아, 댕댕은 아까 나 보고 싶다고 그랬지......'
박하는 당장이라도 누워 잠을 청하고 싶었으나, 댕댕의 보고 싶다는 말을 떠올렸다.
"너, 나 보고 싶다고 했지? 지금, 집에 올래?"
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 지금 갈게요, 누나!"
댕댕은 먼 거리를 한걸음에 달려왔고, 현관 앞에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저예요, 댕댕."
댕댕이 어떤 마음으로 박하에게 왔을지, 박하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상당히 조심스러웠고, 어쩌면 살짝 떨고 있었다. 댕댕은 현관에 들어서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댕댕은 검은색의 롱 패딩을 입고 있었는데, 새 옷 느낌을 자아냈다.
"옷, 안 벗어?"
"네? 아, 벗어야죠."
박하는 그로부터 겉옷을 받아 옷걸이에 걸어 정돈했다.
"어, 우리 같은 회색 옷 입었네."
비좁은 원룸이라서, 앉을 만한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댕댕은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박하는 댕댕의 옆에 앉아 그를 가볍게 안았다.
"헤헤, 기분 좋아!"
댕댕은 긴장한 나머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소리가 박하에게까지 들렸다.
"댕댕! 너, 내 남자 친구 할래?"
"조, 좋아요!"
"모솔 탈출 축하해!"
박하의 충동적인 제안을 그는 굉장히 쉽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그렇게 댕댕의 첫 여자 친구가 됐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