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가 다시 눈을 뜬 건, 댕댕의 휴대전화가 울려서였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조심스럽게 그의 몸을 넘어 책상으로 다가가 휴대전화를 들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너, 전화 왔어!"
박하는 전화기를 댕댕에게 전달했고, 그는 마지못해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네, 알겠어요. 네......"
댕댕이 통화를 종료하자, 그녀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곧장 질문했다.
"누구야?"
"...... 도시가스요."
"도시가스가 왜?"
"별 거 아니에요. 후아암~!"
댕댕은 대답을 회피하며 늘어지게 하품했다.
"더 자고 싶어?"
박하가 도끼눈으로 댕댕을 노려보자, 그는 순간 멈칫했다.
"아, 아뇨......"
"많이 졸려?"
"원래 잠이 많아요."
"야, 너 12시간도 넘게 잤어. 그만 자!"
늦은 오후였다. 박하는 그를 밖으로 이끌었다. 댕댕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그들은 인근 시장을 찾았다. 나란히 길을 걸을 때, 박하는 댕댕을 바라봤다. 그는 검정 롱패딩을 입은 채였다. 그녀는 말없이 댕댕의 왼손을 슥 잡았다.
"너, 내 손 잡고 싶다며?"
"또 훅 들어와요?"
댕댕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크큭, 너야말로 내 손 안 잡고 뭐 해? 우리 첫 데이트잖아. 나 맛있는 거 사줘!"
"뭐가 맛있는 건데요?"
"떡볶이, 콜?"
"콜!"
그들은 분식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월요일 오후의 시장은 한산했다. 가게의 손님은 오직 그들뿐이었다. 주문한 음식이 곧 나왔다.
"와아, 맛있겠다! 아, 해봐."
박하는 방긋 웃으며 젓가락으로 떡을 하나 들고 그에게 말했다.
"아~"
댕댕은 아기새처럼 입을 크게 벌려 음식을 받아먹었다. 그가 음식을 우물우물 씹는 모습을 보며, 박하는 마냥 신이 났다.
"맛있어?"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음식은 형편없었다. 떡볶이의 떡도 눅눅했고, 순대도 퍼석해서 영 맛이 없었다. 그래도, 박하는 어린 애인이 사준 음식이니 기쁜 마음으로 먹었다. 댕댕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기로 가더니,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그녀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
"너, 이게 매워?"
댕댕은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강한 긍정을 표현했다.
"잉? 너, 맵찔이구나!"
박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도 매운 걸 엄청 못 먹지만, 이건 1도 안 매운데?"
"...... 그만 먹을래요."
그는 연거푸 물을 마셔댔다.
'어머! 매운 음식 못 먹는 점도 왜 깜찍하게 보인담?'
댕댕의 마력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분명 그녀의 눈에 씐 콩깍지였다. 콩깍지는 언젠가 반드시 벗겨지기 마련이었다.
조촐한 식사를 마치고, 그들은 다시 길을 걸었다.
"우리, 등산은 언제 갈까?"
"8월까지 쭉 쉴 거니까, 아무 때나 다 시간 돼요."
"너 등산복, 등산화는 있어?"
"안전화 신으면 돼요. 등산복은 없는데......"
"마침 저기 운동복 판다. 저기 가보자!"
그들은 매장에 들어갔다. 좁은 공간에 상품이 빽빽이 진열된 공간이었다. 가게 주인이 나와 손님을 맞이했다.
"이건 어때? 만 원이래!"
박하가 운동복 하의를 가리키자, 그는 치수를 확인했다.
"28인치 있어요?"
"30인치부터 있어요."
남자 사장이 대답했다. 박하는 눈이 왕방울 만해져서, 감탄했다.
"우와, 너 허리 28인치야? 개미허리!"
댕댕은 대꾸 없이 물건을 집어 들더니, 저벅저벅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이거 입어 볼게요."
박하는 탈의실 앞에서 댕댕을 기다렸다. 시간이 꽤 흘렀으나, 그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왜 이리 안 나와......'
그녀는 운동복을 입은 댕댕의 모습을 기대했으나, 그는 탈의실로 들어가기 전과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왔다.
"어, 입은 걸 보여 줘야지?"
"그냥, 이거 살게요."
'쳇, 운동복 입은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상품을 구매한 후, 그들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박하는 그를 바라보며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이제 뭐 할까?"
"글쎄요. 뭐, 특별히 하고 싶은 거 있어요?"
박하는 생긋 웃으며, 장난스럽게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너랑 뽀뽀♡ 둘이 하는 운동 어때?"
순간, 남자의 이성은 네 발 달린 강아지의 형상을 한 채 날갯짓하며, 그의 머리 뚜껑을 열고 달아났다. 폭발음 같은 굉음이 펑하고 들리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 무슨 여자가 이렇게 적극적이야? 도무지 깜빡이를 안 키잖아. 그게 매력이라면, 나 미친 건가?'
한편, 댕댕의 소화기관은 급격히 요동쳤다. 뱃속에서 꾸르륵 신호를 보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온 신경을 모았다. 운전대를 양손으로 꽉 쥐었다. 박하의 자취방으로 주행하던 터였다.
'윽, 배 아파! 지금은 안 돼, 참아야만 해...... 쪽팔린데, 이걸 어떻게 말하지......?'
목적지에 도착하자, 박하는 조수석에서 내렸다. 운전석에서 내린 댕댕이 그녀에게 말했다.
"먼저 들어가 있어요."
"왜, 담배 피우게?"
"누나, 비흡연자 좋아하잖아요. 저, 담배 끊었어요."
상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의 모습은 여자에게 참으로 달콤하게 느껴졌다. 어린 연인의 금연 선언은 듣기 좋을 뿐만 아니라,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음...... 큰일 좀 보고 가려고요."
"응? 내 방에도 화장실 있는데, 왜?"
'벌써부터 냄새나는 생리 현상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댕댕은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음, 그게......"
"아, 이해했어! 난 집에서 기다릴게."
댕댕이 서둘러 자리를 뜨자, 박하는 킥킥 웃었다.
'똥쟁이!'
댕댕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박하는 낄낄대며 놀렸다.
"히히, 쾌변 했어?"
"놀리지 마요!"
댕댕은 겸연쩍어 그녀의 시선을 외면했다. 박하는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거라 자부하며, 제안했다.
"댕댕, 내가 천국 보내줄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