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연애는 조각난 사탕 같았다. 달콤했으나, 너무 쉽게 깨지고 말았다.
"우리 이미 끝난 사이네. 다음 사람에게는 잘해줘. 이런 실수 되풀이 하지 마."
박하의 어조는 의외로 담담했다.
"아니, 나 이제 연애 안 할 거야."
댕댕이 단호히 대답했다.
"...... 뭐?"
"다음 사람이란 건 없어. 다시는 연애 안 할 거야."
"그런 말이 어딨어. 앞으로 연애를 왜 안 한다는 거야?"
"또 상처받기 싫어서."
그 말은 그녀의 가슴을 후벼 팠다. 자신의 충동적인 언행으로 인해 어린 연인은 상처를 입고, 180도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날 밤, 박하는 뜬눈으로 지새웠다. 댕댕과 나란히 누웠던 침대에 그녀 홀로였다.
'고작 하루 사귀었는데, 왜 이리 마음이 헛헛하지...... 신기록 경신이네. 하루 사귄 것도 과연 연애인가?'
꼬박 불면의 밤을 보낸 그녀는 외출 채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며 댕댕에게 연락했다.
"등산은 나 혼자 갈게. 지금 만나면, 우리 서로 어색하기만 할 것 같아. 미안해."
그녀는 내심 댕댕이 자신을 붙잡아 주기를 바랐으나, 그의 마음은 이미 차갑게 돌아선 후였다.
'잠 안 자고 깨어있네? 휴, 읽씹이군. 아! 심란해......'
댕댕이 한 번 쓰고 화장실에 두고 간 칫솔이 그녀의 시선을 붙잡았다. 양치용 컵에 나란히 꽂힌 칫솔 두 개는 다정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는 그를 회상했다.
"이거 새 칫솔이야. 너 써."
"양치 깨끗이 하면, 뽀뽀해주나요오? 헤헤."
댕댕의 빈자리는 그녀에게 그리움, 외로움, 슬픔으로 사무쳤다. 댕댕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막연한 기대를 뿌리치지 못했다. 박하는 승용차를 몰고 남향했다. 봄을 알리는 꽃들의 잔치에도 불구하고, 관광지는 한산했다.
'무서운 코로나......'
코로나로 인해 매화 축제를 취소합니다.
역병으로 인해 축제장은 이례적으로 한산했다. 연인 한 쌍이 지나가는 모습을 본 박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도 애인이랑 오고 싶었는데, 어휴!'
따스한 봄 햇살에 꽃들은 눈부신데, 박하의 마음은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였다.
"저기, 아가씨! 나 사진 좀 찍어줄래요?"
안경을 쓴 중년 여성이었다.
"아, 물론이죠. 그럴게요. 찍을게요. 하나, 둘, 셋!"
"고마워요! 내가 아가씨도 한 장 찍어줄게요."
"아, 저는 괜찮아요."
박하는 그럴 기분이 아니어서 사양했으나, 그녀의 심정을 알 턱이 없는 행인은 얄밉게도 적극적이었다.
"그러지 말고, 찍어요! 여기까지 왔는데, 사진도 없으면 아깝잖아요."
"아, 네...... 그럼, 예쁘게 찍어주세요."
행인의 선심에 마지못해 응하며, 박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분은 왜 혼자 오셨을까......?'
박하는 애써 미소를 지었으나, 기분은 여전히 울적했다. 초봄, 산수유꽃에서 시작된 싱그러운 남녀의 만남은 동백이 낙화하는 속도보다 더 빨리 시들고 말았다. 댕댕에게 꽃으로 불렸던 그녀였다.
"어머, 예뻐라! 이 꽃, 이름이 뭔지 알아요?"
"박하 꽃!"
그로부터 수년의 시간이 흐르고, 박하는 매화 축제장을 다시 찾는다. 그녀는 연인, 도현과 함께였다.
"이렇게 애인이랑 여길 올 줄 미리 알았으면, 그때 그렇게 슬퍼하지 말걸 그랬네. 당시엔 절망의 늪에 빠져서 한참 허우적댔거든."
"그 정도로 댕댕이 매력적이었어?"
호기심으로 가장한 질투심을 도현이 슬며시 드러냈다.
"음, 아니! 댕댕은 그냥, 어리고 귀여웠어. 그게 다야. 딱히 날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더라고. 우린 만나고, 사귀는 과정이 너무 쉽고 짧았거든. 그러니까 빨리 끝났지. 심지어, 내가 댕댕한테 매달렸는데도 말이야."
"허,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천하의 박하가?"
고독한 꽃놀이로 돌아와, 박하는 산을 올랐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걸었다. 어느덧 정상에 닿았다. 정상석에 기대 잠시 쉬며,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카페에서 모임이 있는 모양이었다. 참석자는 무려 7명이었다. 평일 오후 2시였다.
'뭐야, 다들 일 안 하나? 참석률 참 높네.'
대체 누가 이렇게 한가로운가 싶어 참석자 명단을 확인했다. 박하는 거기서 댕댕의 이름을 발견했다. 순간,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댕댕도 가는구나. 어휴, 카페에 댕댕 보러 가고 싶네, 정말......'
그녀는 터덜터덜 하산했다.
'댕댕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하지? 아니, 다시 만날 순 있는 걸까?'
같은 시각, 동호인들은 카페에서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댕댕, 오늘 박하 누나랑 등산 간다며?"
31살 남자가 질문했다.
"누나 혼자 간대요."
"왜?"
"아, 그럴 일이 좀 있었어요......"
"박하 언니가 네 이상형 아니야?"
32살 여자가 끼어들었다.
"놀리지 마욧!"
어린 친구가 발끈하자, 좌중은 하하 호호 웃음소리로 왁자지껄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람...... 혹시, 둘이 사귀나? 에이, 설마! 궁금해하지 말자. 어차피, 남의 일.'
오가는 대화를 들으며 눈치를 살피던 소연은 빨대로 음료를 호로록 들이켰다.
한편, 박하는 계획한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장시간 주행해 귀가했다. 그녀는 내심 댕댕의 연락을 기다렸으나, 그에게선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이대로 쫑난 걸까?'
단체 대화방에선 대화가 활발했다. 댕댕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동호인들과 즐겁게 어울리고 있었다.
"아, 피곤해."
"오늘 즐거웠어요!"
"형, 누나들 다음에 또 만나요."
박하는 댕댕이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란 듯이 단체 대화방에 사진을 공유했다.
"와, 꽃놀이 제대로 했군요!"
24세 여자가 감탄했다.
"혼자 가다니, 대단! 나도 꽃 보러 가고파."
31세 남자는 부러움을 표현했다. 그러나, 정작 댕댕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댕댕의 무반응은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렸으나, 어떻게 해서든 박하는 그를 붙잡고 싶었다. 박하는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용기를 냈다. 크게, 그리고 깊은숨을 들이켰다.
"너 보러 가도 돼?"(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