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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

by 슈히

소연의 실제 모습은 사진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녀의 피부는 전혀 하얗지 않았다. 오히려 갈색에 가까웠다. 우윳빛 피부의 미녀를 기대한 박하는 당황스러웠다. 동시에 실망하고 말았다.

'피부색부터 사진과 딴판이네. 완전 셀기꾼이잖아! 역시, 사진은 믿을 게 못 돼. 휴, 기대하고 나온 내 꼴이 우습네.'

그들은 박하의 차를 타고 유유히 갈래길로 이동했다. 오전이라서, 기온은 다소 쌀쌀했으나 평일인 덕분에 인적이 드물었다. 박하의 속내를 짐작할리 없는 소연은 명랑하게 말을 건넸다.

"언니한테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놀랐죠?"

"아, 네...... 급작스럽긴 했어요."

박하는 소연의 몸매를 훑어보며 생각했다.

'통통하네. 가슴도 큰 편이로군. 사진 속 가녀린 모습과 너무 다른데, 굳이 그렇게 위장할 필요가 있나? 사기잖아.'

여자들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어머, 정말요?"

"네, 진짜예요!"

"라니는 애인이 없다고 했지만, 그건 거짓말 같아요. 단체 대화방에 공유하는 사진을 보면, 남자 친구와 데이트하는 느낌이 들던데요."

"동성 친구들이랑 맛집, 카페 가서 찍은 사진일 수도 있잖아요."

"에이, 척하면 딱이죠!"

소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심리교육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라고 소개했다.

"심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사람의 성격 파악도 역시 빨라져요. 라니는 가벼운 성격이에요."

"음, 애인이 있으면서 왜 없는 척해요? 또, 왜 이런 모임에서 활동해요? 애인이 싫어할 텐데요."

박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소연은 단순하고도 명료하게 답했다.

"애인과 오래 사귀다 보면, 아무래도 연애 감정이 식을 수도 있죠. 또, 이런 온라인 모임에서 더 멋진 상대를 찾는 중일 수도 있고요.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으니까요."

"헐, 그게 뭐야. 애인한테 충실하거나, 아예 헤어져야지! 바른 태도는 아닌데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올바른 마음인 건 아니니까요."

박하는 소연의 예리한 분석력에 놀라움과 섬뜩함을 느꼈다. 소연은 박하보다 2살이 어렸다.

박하는 뒤를 돌아봤다. 은마는 늘 그랬듯, 조용히 걷고 있었다.

"원래 두 분이 만나기로 했는데, 제가 방해했네요."

"괜찮아요. 사연은 대강 전해 들었어요."

소연이 은마에게 양해를 구했다. 박하는 소연의 예의 바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또, 인간의 심리에 대해 연구하는 그녀의 전공도 흥미로웠다.

"장사했는데, 지금은 접었어요. 쉬고 있어요."

"쉴 때 푹 쉬는 것도 좋죠."

"아, 실은 주식 투자하느라 편의점에서 파트 타이머로 근무하고 있어요."

"오, 투자해서 수익 좀 얻었어요?"

"아뇨, 요새 통 재미를 못 보네요."

"그냥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저축하거나 적금을 드는 건 어때?"

박하는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파며, 참견했다. 그녀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그가 다소 한심해 보였다.

'소연은 말을 예쁘게 하는 편이군. 내 생각은 좀 다른데. 주식은 뭐 아무나 하나? 전직 은행원이신 분도 맨날 손해를 보시던데. 33살 젊은이가 일할 생각은 안 하고, 주식 투자라니. 요행을 바라니, 앞날이 훤하군.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길 바라고, 누워서 입 벌리는 꼴이야.'

박하의 지적에 은마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누나는 주식 투자에 상당히 부정적이구나.'

그들의 대화를 곁에서 듣던 소연이 불쑥 호기심을 드러냈다.

"저기, 서로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우린 운동 모임에서 최근에 만났고, 갈래길을 함께 걷는 중이에요."

"대림에는 1~4구간까지 있고, 시외까지 이어져 있어요. 시외는 정비가 잘 안 돼있어서, 대림 구간만 다니려고요."

"아, 그래요? 혹시 둘이 연인 사이인가 싶었어요."

소연의 엉뚱한 발언에 박하는 혀를 내둘렀다.

"네? 전혀 아니에요! 모임 활동하시는 분들이 별로 없어서, 둘이 다니게 된 것뿐이에요."

한편, 은마는 설레는 감정을 억누르며 생각했다.

'헛, 그렇게 되면 참 좋으련만.'

연애 이야기가 나오자, 박하도 소연에게 애인 유무를 물었다.

"네, 있어요."

"우와, 부러워요!"

"부럽긴요. 장거리 연애예요."

소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자주 만나진 못하겠네요?"

"아뇨, 남자 친구가 항상 저 보러 와줘요. 주말마다 만나요. 사귄 지 몇 년 지났는데도, 여전히 한결같이 잘해줘요."

"오, 그럼 언젠간 결혼하겠네요?"

"아, 저 결혼 생각은 없어요."

"엥, 어째서요?"

박하의 계속되는 질문에 소연은 집안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의 가족 중엔 완벽한 숙부가 한 명 있었다. 그는 키 크고, 잘생기고, 심지어 돈도 잘 벌었다. 숙부의 가정은 초반엔 행복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도 역시 변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 박하는 묻지 않았다. 실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다 행복하기 위해 결혼하겠죠."

"그렇지만 그건 숙부의 불행한 결혼 생활이지, 소연 씨의 인생은 아니잖아요."

"아무튼, 저 지금은 결혼 생각이 아예 없어요. 이제 갓 대학원에 입학해서, 학점 이수하기 바빠요. 논문 쓰고, 졸업한 후엔 임용고시 준비해야죠. 꼭 합격할 거예요."

"갈 길이 멀군요. 그래요. 어차피 결혼은 제도이지, 사랑의 종착점은 아니니까요. 어느 연예인도 죽음과 결혼은 최대한 미루라고 말했죠."

산책을 마치고, 그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소연의 숙부의 사연을 곱씹던 박하의 뇌리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소연이 말한 문제의 숙부는 혹시 친부가 아닐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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