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는 댕댕의 손을 가볍게 쥐었으나, 그의 손은 미적지근했다.
"별로 안 따뜻해."
그녀의 손은 거침없이 댕댕의 목덜미로 미끄러졌다.
"여긴 따뜻하네!"
댕댕이 움찔했다. 당황한 나머지, 몸이 움츠러들었다.
'으악, 이게 지금 대체 무슨 상황인가!'
박하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입장에선 단순히 장난이었으나, 댕댕은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당사자는 마치, 영혼이라도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박하는 한걸음 더 내디뎠다.
'흐흥, 바싹 긴장했네. 그럼 어디,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볼까?'
댕댕을 쓰다듬던 박하의 손이 스르륵 멀어졌다.
"사탕을 받았으니, 나도 답례로 뭔가 줄게."
"뭔데요? 좋은 거예요?"
댕댕이 짐짓 명랑하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박하는 싱긋 웃으며, 자신이 쓰고 있던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눈을 감고, 댕댕의 우측 뺨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 그녀의 입술이 그의 살갗에 닿자, 쪽 하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런데, 댕댕은 무반응이었다.
'어라, 왜 아무 반응이 없지?'
댕댕의 시간만 잠시 멈춘 듯했다. 봄날 꽃가루가 날리고, 나비가 춤을 추며 날아오르는 듯한 환상이 펼쳐졌다. 조수석에 앉은 박하는 그가 어떤 반응이라도 보이길 기다렸으나, 묵묵부답이었다.
'에잉, 재미없어! 사실, 뽀뽀는 서양에선 인사니까...... 대수롭지 않은 건가?'
"마스크 내려 봐!"
그는 잠시 망설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서, 댕댕의 동공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서, 설마......!'
댕댕은 마스크를 쓱 내리며, 생각했다.
'나는 왜 이 누나가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있는 거지?'
댕댕에게 서서히 다가가며, 박하는 자신에게 질문했다.
'댕댕도 내가 싫었으면, 아마 마스크를 벗지 않았겠지......? 댕댕이 순순히 마스크를 벗은 건, 내게 입술을 '허락'하는 의미인 거지? 그럼, 얘도 내가 싫진 않다는 뜻이지?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거겠지?'
그녀는 눈을 감고, 그의 붉고 도톰한 입술에 부드럽게 입을 포갰다. 놀란 댕댕이 입을 살짝 열었다. 박하는 팔을 뻗어 그의 가녀린 허리를 끌어안았다. 댕댕은 순간, 옴짝달싹했다. 그의 몸은 따뜻했다. 아니, 박하가 다가가자 비로소 따뜻해진 것 같았다. 박하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발견했다. 차창 밖 노을보다 더 붉은 그의 얼굴을. 창 밖은 평화로웠다. 주변엔 인적이 없었고, 고요했다. 박하는 웃음을 터트렸다.
"풉! 너, 얼굴 엄청 새빨개!"
그녀는 속으로 혼자 생각했다.
'크큭, 귀여워 미치겠네!'
반면, 댕댕은 혼란스러웠다. 현재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이럴 수가! 내게 어떻게 이런 일이......!!'
짓궂게 장난치며 웃던 그가 이렇게 수줍어할 줄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어제만 해도 그들의 관계는 희극이었다. 박하는 약이 잔뜩 올랐고, 댕댕의 태도는 뻔뻔했다.
"바지 벗어 봐!"
"누나, 놀랄 텐데!"
"너, 어디 하자 있지? 그렇지?"
"진짜 벗어요?"
어느덧, 시간이 흘렀다. 안절부절못하던 댕댕이 차분해질 때 즈음, 박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만 집에 들어가 봐야 해."
그녀는 속으로 되뇌었다.
'더 같이 있고 싶지만......'
"왜 벌써 가요?"
댕댕이 아쉬워하며, 물었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나한테 기습 뽀뽀를 해놓고, 이렇게 그냥 가버린다고?'
"요리 마저 끝내고, 일찍 자야 해. 내일 등산 가거든!"
박하는 모자를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흥, 붙잡진 않는군......'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조수석 문을 열었다.
'가지 말라고 말해볼까?'
댕댕도 운전석에서 내려 박하를 허둥지둥 따라나섰다.
"저기...... 누나!"
"응?"
"화장한 거예요?"
"아니, 안 했는데. 왜?"
"아, 아니에요."
댕댕은 머뭇거렸다.
'민낯은 싫다는 뜻인가? 하긴, 30대 여성의 민낯은 경범죄라고들 하지.'
박하는 댕댕과의 나이 차이를 생각하자, 멋쩍었다.
'예뻐서요!라고 말 할 용기가 없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댕댕은 박하가 예뻐 보였다. 박하는 댕댕으로부터 받은 막대 사탕을 한 손에 쥔 채, 두 팔로 그의 몸통을 확 휘감았다.
'윽, 내 심장! 이 누나는 탱크야! 깜빡이 없이 막 들어와!'
댕댕은 가슴이 벌렁거렸다. 아까부터 급작스러운 심장 공격을 받은 탓이었다.
"안녕!"
박하는 한마디 외치고, 몸을 홱 돌려 도망치듯 냅다 달렸다.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집까지 힘껏 달리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박하는 생각했다. 힘껏 달렸기 때문에 심장이 빨리 뛰는 걸까, 아니면 아까 댕댕을 안아서 그런 걸까?
댕댕은 그녀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박하는 다세대 주택 안으로 사라졌다.
'저기가 박하 누나네구나!'
몇 분 후, 박하로부터 장난스러운 연락이 왔다.
"내가 댕댕 겁탈함."
댕댕은 심각해졌다. 만감이 교차했다.
'답장을 뭐라고 보낸담...... 나, 겁탈당한 거야? 이 누나, 순 날라리 아냐? 역시, 내 예상 대로 고수가 틀림없어!'
"누나, 이러시면 큰일 날 것 같아요. 남자의 본성을 자극하시면, 설레잖아요. 제가 숙맥이라서 어쩔 줄 몰라요."
어린 남동생의 솔직하고 순수한 답장을 받은 박하의 입은 두 귀에 걸려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
"귀여워!"
박하는 편안한 잠자리에 들었고, 몇 시간 뒤에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박하의 주말 일정은 고정적이었는데, 그건 바로 등산이었다.
'아, 더 자고 싶다......'
짐을 잔뜩 실은 승용차의 운전석에 앉은 순간, 그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어, 이 시간에 누구지?"
발신자는 바로 댕댕이었다.
"너,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누나, 지금 어디예요?"
"집에서 방금 나왔어. 이제, 산악회 집결지로 가려고. 너, 혹시 무슨 일 있어? 이른 새벽에 전화를 다 하고."
"누나, 보고 싶어요!"
그 순간, 박하는 귀를 의심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