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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HAS Sep 20. 2022

새벽 여섯 시 꼬마 김밥을 만들었다.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내리사랑이라고...


새벽 5시 30분 알람 소리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욕실에서 양치와 세수만 간단히 하고는 여섯 시가 되자 오늘도 주방으로 향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면 알아서 챙겨 먹고 다니겠거니 하고는 신경 끄기로 마음속으로 몇 번씩 다짐했지만 마음속 다짐이 무색하게도 변함없이 새벽같이 일어나 꼬마 김밥을 만들고 있다. 


어릴 때는 잔병치레도 없이 순탄하게 잘 자라서는 대학에 입학 한 해에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이 개월 후에 다시 재 수술까지 받으면서 뒤늦게 병치레를 하면서 몸무게가 많이 빠진 아들이 안쓰러워 등교 준비를 하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주먹밥을 만들 때도 오늘처럼 꼬마 김밥을 만들기도 한다. 


국과 밥, 반찬을 식탁에 차려주고 먹으라고 말을 해도 되지만 먹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아들이라 조금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서 번거롭고 귀찮아도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십이 년 동안 싼 김밥 숫자보다 아침용 김밥을 마는 숫자가 더 많은 것을 보면 자식을 챙기는 엄마 마음이 어지간하기도 한 듯하다. 아이러니하게 아들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의 아침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아들만 챙기고 있는 것이다. 


퇴사 삼 년 차. 직장 생활을 하는 것처럼 무슨 일을 하든 스스로 만족할 만큼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본인의 성격을 집에서도 십 분 발휘하고 있다.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한 번씩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 또한 스스로 잘 일어서기 때문에 지신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매일 다른 아침상을 받는 아들은 엄마가 유난히 자신을 먹이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쓴다고 말은 하지만, 그럼에도 엄마에게 싫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스무 살이 넘어 스물 하나가 된 지금도 자신에게 매일 많은 애정 표현을 하지만 엄마 스스로 정해 놓은 일정 선 이상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이학년까지 직장생활을 했기에 자유와 자율이 몸에 배었기에 누군가 자신의 일상을 터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터치하지 않아도 무슨 일이든 스스로 알아서 했던 자녀였기 때문에 엄마 또한 자녀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다. 


물론, 가끔씩 아들이 신경 거슬리는 행동을 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면은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 대신 아들의 뒤통수를 한대 후려치는 것으로 현재의 마음 상태를 표현했고,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그런 일을 겪었던 아들은 엄마의 신경에 거슬리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녀를 키우면서 아이가 일정 나이가 되면 자녀와 둘이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계획들을 세우게 된다. 

내가 세웠던 많은 계획들 중 일부를 말한다면, 아들과 단둘이 졸업여행 가기, 수영 가르쳐 주기, 스키 또는 보드 같이 타기 ,  수능 본 날 아들과 축하 주 마시기, 스무 살이 되면 아들 독립시키기, 첫 직장 생활 시작하면 독립시키기,  직계 가족에 대한 기념일 챙기기, 결혼하라고 말하지 않기 등등등   


지금까지 졸업여행 가기, 수영 가르쳐 주기, 보드 같이 타기, 수능 본 날 아들과 축하 주 마시기는 성공한 계획들이었다.  


아들과 단둘이 처음 여행을 간 것은 중학교 졸업여행이었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이후 모든 학교에서는 수학여행도 졸업 여행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중학교를 졸업 앞둔 아들을 위해 제주도 2박 3일 졸업 여행을 준비해서, 졸업식 다음날 아들과 둘이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향했다. 때 아니게 제주도에 폭설이 내린 다음날이었지만 많이 춥지도 않았고 택시를 운송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아들과의 졸업 여행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여럿을 때 수영장에 빠진 이후로는 물을 무서워해서 수영을 전혀 할 줄을 몰랐다. 

그러나 아들이 어린이집을 다니던 시기에 수영을 배웠고 본인의 성격대로 자유형부터 배영, 평형, 접영까지 모든 영법을 마스터한 후 직접 아들에게 수영을 가르기 치로 했다. 일 년도 외지 않아 십 년 이상 수영을 한 사람들보다도 잘하게 되면서 더 이상 강습을 받지 않았지만 자유수영을 통해 꾸준히 운동은 이어갔다.  


엄마를 닮아서 인지 물을 무서워했던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야 물과 친해져서 느지막이 수영을 배우게 되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지만 본인도 워낙 물을 무서워했기에 아들이 빠르게 배우지 못한다고 다급해하거나 꾸짖는 행동들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준비가 되어 스스로 따라올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기다려 주었다. 그래서 지금은 생존 수영과 잠수까지는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마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자유형 정도는 마스터할 수 있을 것이다.


계절 스포츠의 대표라고 하면 여름은 수영이고 겨울은 보드 일 것이다.  

보드는 엄마도 배우지 못해 고등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스키장에 가서 아들과 함께 보드를 배우면서 같이 타게 되었다. 부모 자식 간에도 같이 하는 스포츠나 취미가 있다는 것은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고 같이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부모와 자식 사이가 멀어지는 것을 예방하는 듯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육 년을 지나면서 '사춘기'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지나는 일은 정말 흔치 않은 경우다. 

그래서 더더욱 자녀와 함께 몸으로 움직이는 취미 활동을 어렸을 때부터 갖는 것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2022년이 된 올해도 아이들의 지긋지긋한 학창 시절의 끝은 고등학교 3년을 마무리하는 수능일 것이다.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아들과 함께 술 한잔 마시기였다. 그래서 아들과 첫 술은 수능을 본 날 저녁으로 정했고 나는 그 계획을 현실에서 그대로 실현했다. 

그 전에도 아들에게 권해 본 적은 있지만 고등학생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상기시키며 스무 살이 되면 마시겠다고 거절하더니 수능이 끝난 당일에는 엄마가 주는 술 한잔을 거절하지 않고 받았다. 


'너의 성공적인 학창 시절의 마무리를 축하한다'라는 말과 함께 몽실몽실한 거품이 있는 맥주를 시원하게 원샷으로 마신 날이다. 

  

많은 계획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스무 살이 되면 아들 독립시키기였는데 코로나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학교에 입학하고는 이 주 만에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면서 아들의 첫 독립은 무산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아들의 첫 독립은 직장 생활 시작하면 독립시키기로 바뀌어져 버렸다.  


같이 사는 것이 불편하거나 자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독립을 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십 대였던 시절에는 자녀가 결혼적에 집에서 독립하는 경우가 드물었기에 나도 독립생활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결혼을 했다. 그래서 나는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자녀의  독립이 곧 엄마의 해방일이 되기도 한다. 


나는 얽혀 있는 사람들과의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해방된 나의 일상을 기대하고 있다. 그 해방일이 현실이 될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내일도 여섯 시에 주방으로 출근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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