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퇴사 후 한 달, 간략한 소회
퇴사 후 어느새 꽉 찬 한 달이 지났다.
출퇴근하던 날들이 마치 먼 옛날처럼 아득히 느껴지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한 달이 총알같이 지나간 것 같기도 하다. 대단한 계획을 세워둔 게 아니었음에도 다행히 아직까지 회사 없는 하루가 공허하지 않다. 아닌 게 아니라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쁘게 지내고 있다.
우선 집에 붙어있다 보니 기본적으로 할 일이 많아졌다. 그동안 방치해 뒀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지저분함들이 자꾸 보여 주중 오전은 대부분 청소와 집안 정리로 가득 채워진다. 신기한 건 매일 그렇게 한 군데씩 더러운 곳이 눈에 띈다는 것. 게다가 우리 사랑스러운 고양이 주인님께서도 청소와 빨래를 더욱 자주 하도록 만들어주신다. 집안일은 끝이 없다는 말을 정말 제대로 실감하는 중이다.
바쁘고 정신없어 보기 어려웠던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조차도 연말이라 송년회가 많아 개인적인 만남은 많이 가지지 못했다. 출근에 대한 압박 없이 보내는 주중 저녁, 주말 약속이 이렇게나 달콤할 줄이야. 평일 오전 카페에서 누리는 여유와 함께 오랜만에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다.
독서는 초반보다 빈도나 횟수가 살짝 줄긴 했지만, 꼭 책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글을 읽는 일은 놓지 않고 하고 있다.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면서 나와 너무나 비슷한 사고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좋은 글쓰기 습관을 발견하면 어설프게나마 따라 하려고도 한다. 그 어떠한 방해 없이 활자 읽기에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삼스럽게 느끼곤 한다.
몸도 더 좋아졌다. 분명 식사는 전보다 훨씬 잘 챙겨 먹는데도 가만히 앉아 지내는 시간이 줄어서인지 체지방은 줄고 근육은 늘었다. 유연성과 근력이 늘면서 요가도 수련의 깊이가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 눈으로 봐도 몸이 달라졌다는 게 보인다. 인체의 신비란!
아예 새롭게 시작한 일도 많다.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오래 지닌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우선 빠르게 실행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내 성격과 성향에 말미암아 직장인의 신분이 유독 버겁고 어려웠던 큰 이유는 '전문성의 부재'가 아닐까 싶었다. 물론 어떤 업무든지 오랜 기간 노하우를 축적하면 전문성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기존의 커리어패스로는 전문적 역량을 대단히 점프업 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어려웠다. 회사를 벗어나 프리랜싱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지금 이 타이밍엔 반드시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우선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부터 도전해 보기로 했다. 덕분에 올해 상반기부터는 다시 학생으로 돌아갈 기회도 생겼다. 그리고 정기적인 수입이 생기기 전까지 용돈벌이라도 할 수 있도록 관련 공부와 자격증 시험 준비도 시작했다.
딱히 새해라고 결심한 건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퇴사 날짜가 연말로 결정되면서 지난 한 달은 지난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알차게 대비하는 시간이 되었다. 하는 일이 많고 바빠서 그런지 잡념도 없고 우울에 빠질 겨를도 없다. 바쁜 벌꿀, 꿀벌... 아니 백수는 슬퍼할 겨를이 없다!
하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너그럽다. 다소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여유 덕분인지 최근 인간적으로도 한층 성숙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번 24년도는 무엇보다 나를 아껴주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살필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 솜씨가 한참 부족해 소회보다는 초등학생 일기에 가까운 것 같지만 치열하게 살고 있는 이 순간을 주절주절문이라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훗날, 이 글을 다시 읽으며 진정한 소회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
* 사진: Unsplash의Thomas Borm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