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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요괴 Jan 08. 2024

출근 없는 세상의 어쩌면 유일한 단점

05.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슬프다면

오늘의 글은 조금 길고, 퇴사 후 생활과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 내용이 초반부에 나올 수도 있어요. 하지만 끝까지 읽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


벌써 6년, 아니 7년쯤 되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데도 차마 그때를 다시 떠올릴 용기가 나지 않아 날짜조차 흐릿한 채로 마음 한편에 담아두었다. 나에게는 15년 동안 함께한 작은 강아지가 있었다. 동물이라면 철없이 그저 좋아할 줄만 알았던 초등학생 때부터 20대 후반 직장인이 된 내 모습까지 모두 함께해 주었던 사랑이 넘치는 존재.


늘 건강할 줄로만 알았던 작은 강아지는 그 조그만 몸집으로 15년을 살아낸 뒤 마지막쯤엔 눈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털도 볼품없이 메말라 있었으며, 치매가 오면서 하고 싶은 행동도 마음껏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는 것이다.) 병원에 가도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어 가능한 건 오로지 강아지 별로 떠나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좋은 기억을 남겨주는 것뿐이었다.


그 당시 나는 격주로 토요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눈에 띄게 부쩍 줄은 식욕에 줄어든 움직임, 가엾게 헐떡이는 숨에서 가족 모두 곧 맞이할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기에 밤마다 돌아가며 강아지의 옆을 지키며 잠드는 나날이었다. 


그리고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던 어느 새벽, 따뜻한 이마를 수없이 쓰다듬던 손을 거두고 출근을 위해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려 방에 들어갔던 그날, 나의 작은 강아지는 누워있던 자리 그대로 잠을 자듯이 떠났다. 


잔인하게도 떠난 모습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 역시 나였다. 이른 출근 준비를 위해 일어나자마자 왜인지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강아지를 살폈으나 새벽까지도 느꼈던 온기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촉감에 눈물이 쏟아졌다. 예상하고 있던 일임에도 감내해야 하는 슬픔이 너무 커서 도저히 걷잡을 수 없었다.


가족들을 깨우고, 강아지의 죽음을 알리고, 그 뒤의 일을 제대로 생각하기도 전에 출근이라는 현실이 발목을 붙잡았다. 누워있는 강아지의 모습을 보며 쉴 새 없이 눈물을 쏟는 와중에도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물건들을 챙겨야만 했다. 당시 내가 했던 일은 스케줄 근무였던 데다가 주말은 일종의 당직 개념이었기에 당일에 갑자기 휴무를 내고 대체자를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출근을 한 뒤엔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속절없이 울었다. 강아지가 평소 다니던 병원을 통해 장례 절차가 순식간에 마련되었고, 나는 그저 병원에 전화해 원장 선생님께 우리 강아지 마지막을 꼭 잘 부탁드린다는 말밖에 반복할 수 없었다. 


회사가, 일이, 아니 내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현실이라는 이유로 인해 올라오는 감정까지 뒤로 한 채 평생 나와 가족만 바라보던 소중한 존재와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내가 그렇게 미울 수 없었다. 출근만 아니었다면, 좀 더 인사를 나누고, 충분히 슬퍼하고, 떠나는 길이 아프지 않고 행복만 하길 바로 옆에서 빌어주며 보낼 방법도 있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서두르지 않았어도 됐는데 첫 이별이라 많은 것이 서툴렀다. 두고두고 아쉽고 마음 아픈 기억)


슬픔은 온몸에 그림자가 되어 따라다니듯 남았으나 그럼에도 나의 일상은 다를 바 없이 흘러갔다. 출근을 하고, 바쁘게 일을 하고, 밥을 먹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뒤 비어있는 강아지의 자리와 집안 곳곳에 놓여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오면 또다시 곱절의 슬픔이 밀려들며 한바탕 눈물을 흘리다가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회사에서의 하루하루가 오히려 회복에 속도를 붙여주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의 무게는 시간만이 줄여줄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시간 역시 예상보다 짧을 수 있었던 이유에 회사와 출근이 있다는 게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기적인 망각의 동물인 나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아픔을 다시 느낄 용기가 나지 않아 어떻게든 꾸역꾸역 더 정신없는 매일을 보내려 노력했던 것 같다.




퇴사 후 홀로서기 중인 지금, 정말 감사하게도 그만큼 슬퍼할 일은 생기지 않았다. 바로 전편에서 말했던 것처럼 빼곡한 자체 시간표에 가라앉는 감정에 매여있을 시간도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이유로 마음이 슬플 때는 분명 있다. 강제된 출퇴근도, 별 것도 아닌 일로 시시덕 거릴 동료도, 도저히 딴생각 못하게 만드는 업무 일정도 없는 난 자칫하면 자체 시간표를 모두 백지로 만든 뒤 그 시간을 온통 마이너스 감정을 곱씹는 데에만 쓸 수도 있다. 섬세한 생각을 많이 하는 성격상 원래라면 그럴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그러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의식을 곤두세우려 노력하고 있다. 난 죽을 때까지 미숙한 사람일 것이기에 당연히 완벽하진 못하다. 때로는 감정을 회피하기도, 불필요한 감정에까지 매몰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상태를 알아차리고 적극적으로 벗어나려고 한다는 게 이전의 나와 확실히 달라진 점이다. 


되려 좋은 점도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기에 순간의 감정을 묵히지 않고 충분히 사색할 수 있다. 많은 생각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담보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순간의 판단으로 내리는 후회스러운 결정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퇴사 이후의 난 전보다 훨씬 행복하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행복하기만 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거짓말이다. 퇴사 후의 삶에도 희로애락은 똑같이 있다. 다만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과정과 방식에서 생각보다 큰 차이를 느끼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한 '출근 없는 세상'의 유일한 단점이라면(정기적인 수입이 사라졌다는 것 빼고), 내 마음을 돌보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렵지만 현명하게 극복해 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 자신!


* 사진: UnsplashJon Ty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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