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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요괴 Jan 22. 2024

'가능성 있는 상태'에 중독되지 않으려면

07. 결말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

내겐 고치기 어려운 오래된 병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결말을 보지 못하는 병'이다. 그것도 참 이상하게 좋아하는 콘텐츠일수록 더 그렇다.


소설책도 나눠 읽을 땐 마지막 장을 앞두고 멈추는 경우가 많고, 드라마나 서바이벌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은 마지막 화를 본 적이 거의 없다. 한 번에 끝까지 몰아봐야 하는 영화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그렇게 흥미진진 과몰입러가 되어 다음 내용을 궁금해하던 모습이 무색하게 끝은 늘 흐지부지 되어버린다. 


전개를 보아하니 결말이 뻔해 흥미가 떨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 재밌어 끝내기 아쉬운 마음에 아껴보는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나조차도 알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언젠가 우연히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은 한 댓글을 보게 되었다. 읽자마자 '뼈 맞았다'는 게 이런 거구나를 아주 제대로 깨달았던 글이다.


출처: https://youtu.be/gYErpoXUOQE?si=9p8VKdi4WM24lval



여러분, 배드 엔딩이든 새드 엔딩이든 영화는 끝이 나야 합니다.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끝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특히 이 문장을 보고 '결말을 보지 못하는 병'의 원인에 대한 결정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작품을 보다 보면 그것이 작가(혹은 기획자)의 의도이든 아니든 어떤 캐릭터에게 좀 더 감정을 이입하게 되기도 하고, 원하는 전개 방향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기에 두려움이 생긴다. '내가 바라는 것과 다르게 끝나면 어떡하지?' 만약 기대와 다른 마무리가 등장한다면 그동안 만족스러웠던 감상에도 와장창 금이 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혹시나 마주할 실망스러움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적당한 즐거움만 취한 채 결말을 회피해 버린다.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던 사고방식을 남의 글을 통해서야 비로소 납득할 수 있었고, 동시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처럼 이렇게 무작정 퇴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용기는 무엇보다 '나의 가능성을 믿는 나'로부터 비롯되었다. 물론 가끔은 그 믿음에 의심이 들 때도 있지만 수많은 미래 시나리오가 존재한다는 자체는 변치 않을 사실이다. 하지만 인생은 내가 살아가야 하는 실제인만큼 소설이나 드라마와는 완전히 다르다. 만약 이런 상황조차 결말을 받아들이길 두려워 피하기만 한다면 결국 '가능성 있는 상태'에만 중독된 채 흐지부지한 삶을 살게 될 것이 분명하다.


내게는 원하던 결말이 아니더라도, 고통스러운 결말이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넘어가는 태도와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세상에 오래 고민만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거의 없다. 도저히 결정할 수 없다면 당장 손에 잡히는 일의 결말부터 확인하면 된다. 무엇이든 끝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도 있을 테니까. 


우선 퇴사 직후 의욕 넘치는 시기에 부지런히 벌려놓은 일들이 있다. 중도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완주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디에라도 떠벌려 놓으면 미래의 내가 창피해서라도 좀 더 열심히 하겠지 싶은 마음도 살짝 있다.) 


오늘의 한 줄, 결말을 두려워하지 말자 요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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