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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요괴 Feb 05. 2024

퇴사하면 감기도 안 걸릴 줄 알았는데

09.  걱정 인형이 감기를 데려왔나

지난주부터 몸 상태가 영 좋지 않다. 연말부터 지독히도 유행하던 독감과 주변에 재감염자들이 심심치 않게 생기던 코로나19에도 끄떡없이 견디던 강인한 신체였는데! 회사를 다니는 동안 온갖 종류의 염증과 면역 질환, 위장병을 달고 살다가 퇴사 후 사라진 스트레스와 함께 한껏 건강해진 느낌에 방심했었나 보다. 난 또, 퇴사하고 요가까지 더 열심히 하니까 금강불괴의 몸이 된 줄 알았지...


목요일 아침, 눈을 뜨는데 평소에 비해 몸이 지나치게 무거웠다. 그 며칠 전부터 자꾸 코가 찡하고 목이 간지럽고 재채기가 나온다 싶더니 '아 이거 무리하면 바로 감기 몸살행이다' 싶은 생각에 자체적으로 세워둔 스케줄을 몽땅 취소하고 침대와 한 몸이 되기로 했다. 컨디션이 별로인 날에도 웬만하면 출석하던 요가원까지 오랜만에 결석했다. 그렇게 하루를 푹 쉬고 나니 다행히 금요일엔 컨디션이 돌아왔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하루를 보충하기라도 하듯 바삐 보내며 다가올 주말을 자축했다. (백수가 주말이 무슨 의미냐 싶겠지만 그래도 주말은 주말이더라)


토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만 해도 분명 나쁘지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우리 과 신∙편입생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OT에 참여하기 위해 줌을 켰다. 오랜만의 학교 생활이어서 그런지 모든 게 다 낯설고 새로웠다. 어느 정도냐면 수강신청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진행한 덕분에 2월 말에 있을 정정 기간에 수강과목의 약 50% 이상을 갈아엎을 예정이다. 당근으로 미리 구매한 중고 교재들이 펼쳐지지도 못한 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 외에도 문과 출신 편입생들을 잔뜩 겁먹게 하는 교수님 선배님들의 애정 어린 조언까지 듣고 나니 슬슬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왠 OT 같은 소리 하냐 싶은 분을 위해 바로 전편을 소개해드립니다: '공부라면 치를 떨던 30대, 다시 학생이 되다')


두통이 계속 됐지만 단순히 주말 오전부터 너무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심한 30대의 허를 찌르듯, 내 몸은 금세 무게추를 1톤쯤 달아놓은 지경이 되었고 바람만 스쳐도 살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몸살감기의 전형이었다.


3시간 가까이 이어진 OT가 마무리된 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몸뚱이에 바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최근 감기와 독감에 시달렸던 지인들의 고통썰이 물밀듯이 떠오르며 덜컥 겁이 났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오랫동안 앓아누워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급한 대로 타이레놀을 털어 넣고 냅다 잠을 정했다. 토요일엔 정말 20시간 가까이 자지 않았을까 싶다. 몸이 안 좋긴 안 좋았는지 그렇게 자도 자도 눈 감으면 또 잠이 왔다. 누워있던 시간이 오죽 길었으면 일요일엔 어깨와 등이 결려 눈이 떠졌다.


아픈 걸 어떻게 알았는지 내내 침대 위 내 몸에 착 달라붙어서 온기를 잔뜩 나눠주던 정말 사랑스러운 내 새꾸...(하트 백만 개)


목요일에 이어 토요일까지 이틀을 대부분 침대 위에서 보내고 나니 시간이 미친 듯이 아까웠다. 얼른 회복하고 싶은 맘에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도 열심히 했지만 당연히 몸은 맘처럼 쉽게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엔 재차 드러누워 요양 생활을 해야 했다. 사실 백수에겐 월화수목금토일이 다 같은 날이지만 곧 퇴사 3개월이 되어가는 요즘 K-직장인 출신이라면 누구나 겪는 초조함과 조급증이 내게도 여지없이 당도했기에 말을 듣지 않는 몸이 더욱 속상하고 답답했던 것 같다.


그래도 밥도 약도 잘 챙겨 먹은 덕분인지 일요일 오후부터는 조금씩 활기가 돌아와서 이제는 현기증이 조금 나는 것만 제외하면 비교적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밖에는 원체 잘 나가지도 않고 날도 계속 따뜻했었는데 대체 어쩌다 감기에 걸린 걸까 생각하다가 문득 요즘 나의 마음 상태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퇴사 후 66일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생겨난 긍정적인 변화가 꽤 많지만 난 습관적으로 자꾸 그 의미에 대해 따져 묻게 된다. 그간의 노력이 실질적인 성과로 발휘되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아직 사회적 시선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한 난 30대라는 나이가 새삼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시간이 내 뒤를 바짝 붙어 추격하는 느낌에 생전 들지도 않던 걱정거리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회사를 다닐 땐 퇴사하면 괜찮아지겠지, 퇴사 후 먹고살 길을 고민할 땐 어느 정도 방향이 정해지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역시 인생은 고민과 결정과 인내의 연속이라는 걸 또다시 깨닫고 있다. 


글을 쓰는 동안 갑자기 최근 자격증 공부를 하며 배웠던 내용이 생각났는데 공교롭게도 내 상황에 딱 알맞아 앞으로도 정신 차리고 싶을 때 한 번씩 보면 좋을 것 같다.

<기업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가로막는 장애 요소>
1. 고정관념
2. 편향된 생각
3.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 : 동일한 상황임에도 개인의 선택이나 판단이 달라지는 현상

→ 결론: 30대가 재시작하기 늦은 나이라는 고정관념, 편향된 생각, 프레이밍 효과는 나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가로막을 뿐이다. 


이 모습이 비록 지나친 낙관처럼 보일지라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걱정에만 계속 빠져있는 건 오히려 지나친 나이브함이다. 마음이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살아야겠다. 오늘도 최고심 마인드를 다시 한번 뼈에 새기며!


어쩜 이리 주옥같은 멘트들로만 골라 만드는지 (출처: 최고심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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