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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요괴 Jan 29. 2024

공부라면 치를 떨던 30대, 다시 학생이 되다

08. 호랑이 굴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다니

지난 어느 연말, 노트북을 만지작 거리던 중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방송통신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24년도 편입학 원서를 제출했다. 회사를 다닐 때 지나가는 말로 이왕 공부할 거면 학위라도 남겨볼까 했던 게 무의식 속에 강하게 남아있던 것일까? 어쩜 시기마저도 마침 신∙편입생 모집 일정과 맞아떨어졌고, 어떻게 신청하는지 살펴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간 페이지가 너무나 간단했던 바람에(?) 그 자리에서 마지막 단계까지 마치고야 말았다.


그리고 한 달 쯤의 시간이 지나 드디어 발표가 났다. 모집인원이 많다 보니 애초에 1: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쟁률이지만 막상 합격 문자를 받으니 왠지 들뜬 기분이었다. 입시와 취준 때 합격 연락만을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다리던 버릇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024년 가장 심쿵한 문자 1위


게다가 무려 자연과학대학의 통계∙데이터학과로 편입하게 됐다. 30년 이상을 뼛속까지 모태 문과인으로 살아온 내가 이과인으로서의 삶을 앞두고 있다니! 다른 사람들에겐 별 거 아닌 일일지 몰라도 우리 집에서는 좀 이슈 됐었다. 때아닌 공부, 그것도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이 두근거리기도,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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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가 되어 내 손으로 선택한 학생으로서의 삶이 제법 새삼스럽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학창 시절의 추억이라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을 만큼 학교와 학원만을 반복하는 10대를 보내며 그 반작용으로 재수를 하던 시점에는 공부라면 아주 학을 떼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려니 몸까지 아파 각종 병원 투어가 일상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두 번의 수능 끝에 들어간 대학교에서는 도저히 공부의 의미를 찾지 못해 1학년을 마치자마자 휴학을 했다. 한 학기 휴학이라는 짧은 방황을 겪으면서 대단한 의미보다는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나름의 결심이 생겼고, 학교로 돌아온 뒤엔 공부에도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대학에서의 공부는 중고등학교 때와 달리 꽤나 자유의지가 있었다. (필수 과목만 제외하면) 강의 시간표부터 듣고 싶은 과목 선정까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게 어색하면서도 반가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만의 학습 패턴을 찾아가면서 성적도 눈에 띄게 올랐다. 수능 점수에 맞춰 선택한 전공이었지만 의외로 적성에 잘 맞았다. 몇 번의 장학금까지 받고 나니 욕심이 생겨 더욱 즐겁게 공부했던 것 같다. 그렇게 20대 초중반의 나에게 공부란 노력한 만큼 성과를 보여주는 효자 같은 존재였다.


학부 졸업 후엔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기도 했으나, 당시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결국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취준을 위한 공부는 대학 때와 또 달랐다. 각종 자격증을 따고 입사 시험과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온갖 정보를 직접 찾아다니며 해야 하는 공부가 산더미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노력과 성과가 비례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고통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이건 살짝 번외의 이야기지만 취준 시절 광탈하는 자소서들을 보며 글쓰기에 자신감을 한껏 잃기도 했다. 어찌어찌 초년생 직장인이 된 이후 무엇보다 행복했던 것은 답이 없는 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20대 후반, 취준을 거치며 다시 공부에 질려버렸다.


그렇게 공부로부터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생각할 무렵, 직장인으로서 연차가 쌓여가는 30대에 이르고 나니 역량의 한계에 부딪치는 일이 조금씩 발생했다.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스킬은 부지런히 습득해 왔지만 반복되는 넓고 얕은 경험들에 사소한 암묵지만 잔뜩 늘어 스스로도 대체 내가 뭘 잘하는 사람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구체적인 실무도 실무지만 점차 관리자의 역할로 넘어가면서, 상황을 정확히 읽어내고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적인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특히 데이터 분야에 대한 결핍이 생겼다. (물론 직관만으로도 좋은 결정을 내리는 사례가 있다. 그러나 조직이란 대부분 결정의 근거가 되는 자료를 가지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번 인식된 결핍은 바늘이 되어 퇴사를 한 지금도 여전히 나를 쿡쿡 찌르고 있다. 아무리 푹신한 주머니에 넣어도 뾰족한 바늘이 금세 뚫고 나올 것을 알기에 아예 원인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할 수 없고, 이 공부가 어떤 도움이 될지도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선 해보자는 마음가짐은 이번에도 예외 없이 적용됐다. 


공부의 ‘ㄱ’ 자만 나와도 지겨웠던 10대에서, 공부를 통해 성취감과 좌절감을 모두 느꼈던 20대를 거쳐, 이제는 어느새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제 발로 공부를 찾는 30대가 되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내가 다시 학생이 된 건 어쩌면 필연적인 운명인 것 같다. 


최근 예습 겸 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 미리 공부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더 어려워서 약간 좌절하던 차다. 집중력도 안타까울 만큼 많이 떨어져 여러 번을 다시 봐야 겨우 이해가 될락 말랑이다. 졸업까지 남은 2년, 지치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을지 염려되기도 하지만 이왕이면 우수한 성적의 (장학금을 받는) 학생으로 끝마치고 싶은 마음이다! 


잘…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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