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자동차를 사는 일과 퇴사의 공통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사직서 하나쯤은 품은 채로 회사를 다닐 것이다.(아닌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건 이상한 게 아니라 부러울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처럼 당차게 사직서를 내던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직장이라는 게 먹고사는 일과 너무 깊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쌓은 것도 잃을 것도 없던 저연차 땐 오히려 관두기 쉬웠다. 그러나 해마다 채워져 가는 경력, 점차 커지는 씀씀이, 다양한 고정 지출 등 현실적인 고려 사항들이 많아질수록 사직에 대한 심적, 물적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참 성실히(?) 퇴사해 온 나, 어쩜 대단한 사람일지도?
이번에는 그야말로 '뒤 없는' 퇴사였기에 그 부담이 더욱 컸다. 정석대로라면 1)쉬는 동안 쓸 목돈도 마련해둬야 하고, 2)사이드잡으로 부수입도 꾸준히 창출했어야 하고, 3)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을 만한 능력도 갖춰둬야 했다. 물론 난 그렇지 못했다.
※ 현재 상태(백수 절망 편)
1) 씀씀이를 폭삭 줄여서 아끼고 아낀다면 6개월 정도는 버틸 수 있으려나!
2) 돈 안 되는 일은 무진장했다.
3) 짬뽕된 경력을 정리하는 것조차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세 가지 대비책 중 어느 하나 해당하지 않는 내가 무슨 용기와 자신감으로 퇴사를 지를 수 있었을까. 결심을 내리기 전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의외로 간단했다.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돈을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질문의 전제는 욕심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별 건 아니지만 직장인으로서 가질 수 있었던 모든 것(소속, 고정적 수입, 커리어, 퇴직금 등) 중 어느 하나라도 포기하지 못한다면 질문을 할 필요도 없다. 포기한다고 다 사라지는 것도 아닌 그저 일시정지의 상태일 뿐이다.
다만 일시정지 시점에서 먹고, 자고, 쉬는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을 영위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할 자신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 그게 얼마가 되었든 직장을 떠난 뒤에도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면 퇴사 자체는 내게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노후까지는 걱정하지도 않았다. 왜냐면 다시 벌 거니까! 이 시간은 버리는 시간이 아닌 재도약을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니까. 일종의 투자인 셈이다.
마지막 출근일이 결정된 뒤에는 팀원들과 다른 팀의 동료들에게도 슬슬 소식을 알렸다. 다들 놀람 반 부러움 반으로 가장 먼저 이직 여부를 궁금해했고, 이직은 하지 않았다고 말하니 그럼 당분간 좀 쉴 계획인지를 재차 물었다. 이에 대한 내 대답은 이랬다.
"실은 쉴 생각도 딱히 없어요. 요가나 책 읽기, 글쓰기처럼 회사 다니면서 소홀했던 것들 좀 다시 열심히 해보고, 또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알바도 하면서 지내지 않을까 싶어요."
누군가는 이 생각을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천진난만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다가 마음처럼 계획처럼 안되면 어떻게 하려고? 지금이야 젊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조금만 더 나이 들면 후회할걸?
하지만 그런 고민은 사실 당사자인 내가 훨씬, 훠얼씬 많이 했다. 머릿속을 끊임없이 혼란케 하는 궁리 끝 도달한 결론은 '해보지 않고서는 결코 모르는 일'이라는 것. 결국엔 원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다.
요즘의 난 퇴사 전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요가와 책 읽기, 글쓰기를 열심히 하고 있고, 나가는 돈을 메우기 위해 일일 알바도 한다. 거기에 더해 앞으로의 먹고사는 일을 좀 더 수월하게 만들어 줄 다양한 공부도 병행하고 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회사 다닐 때보다 정말 더 바쁘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는 말, 어렸을 때부터 줄곧 믿어온 말 중 하나이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는 것처럼 현재 우리가 보내는 지금 이 시간들이 모여 내일을 만들기 때문에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흔히들 자동차는 돈이 아닌 용기로 산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엔 퇴사도 마찬가지다. 돈, 물론 너무나 중요하지만 돈 있다고 다 퇴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퇴사의 본질은 바로 나 자신을 믿는 근거 있는 용기다.
※ 깨알 추가 Tip
그래도 예상치 못하게 큰돈 나갈 일이 생기면 심장이 아주 쿵 떨어진다. 보통 이런 갑작스러운 돈은 병원에서 나가기 때문에 평상시 보험을 잘 들어두는 것을 강력 추천드린다.
그리고 본인 외 가족(반려동물 포함)으로 인한 병원비를 대비하여 미리 적금을 준비해 두는 것도 중요하다. 아참, 경조사 비용 정도는 사전에 대비해 두시길.
* 사진: Unsplash의Towfiqu barbhui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