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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요괴 Dec 11. 2023

내가 더 이상 직장인이 아니라니

01. 탈직장인이 실감 나는 순간들

이전에도 퇴사 경험은 많았지만 그때와 지금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이직이나 구직에 대한 압박 없이 나날을 온전히 즐기고 있다. 음, 그러니 좋게 이야기하자면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희망적인 상태고, 살짝 나쁘게 말하자면 대책 없이 행복한 상태랄까.


직장인으로 지낸 8년보다 아니었던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인지, 그저 회사물이 덜 들었던 것인지 퇴사 생활에는 딱히 적응이랄 게 없다. 태생과 천성이 백수인 마냥 오히려 회사를 다닐 때 보다 훨씬 알차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퇴사 후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웃기게도 '그럼 지금 누워있겠네?'다. 직장인들의 아주 작고 소박한 소망과 부러움이 가득 담긴 물음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회사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도 '이 시간에 딱 햇볕 쬐고 누워서 한숨 낮잠이나 자면 좋겠다!'였으니까 그 맘이 백번도 이해 간다.


그런데 의외로 최근 난 9-6 근무 뺨치는 부지런한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고 초등학생 방학 시간표처럼 촘촘히 짜인 일정 속에 살진 않지만, 매일 목표한 일들의 시간 비중만큼은 철저하게 지킨다. 당장의 먹고사는 걱정을 잠시 내려놓으니 자율적인 책임으로 충만한 인생이 더없이 행복하다.


아무튼 회사라곤 원래 다니지 않았던 사람처럼 익숙하게 지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이상 직장인이 아니구나를 유독 실감하는 순간들이 있다. 


출근에 맞춰져 있던 알람 시간을 느슨하게 조절할 때

아침에 일어나 느긋하게 이부자리를 정돈할 때

가고 싶은 요가 수업에 언제든 갈 수 있을 때

하루 중 가만 큰 고민이 다음 식사 메뉴일 때

회사 메신저 알림에 예민할 필요가 없을 때

보고 싶은 책을 잔뜩 쌓아놓고 읽을 때


평소라면 분명 일을 하고 있어야 할 근무시간에, 사무실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내가 정한 시간표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아직까진 불안함보다는 훨씬 큰 해방감과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때를 대비하여 그동안 열독했던 퇴사 관련 여러 글에서 경고하는 바는 비슷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소속감이 없다는 사실, 따라야 하는 권위가 없다는 사실 등이 본능적인 불안정함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엔 좋다가도 나중엔 쉽게 무기력해질 수 있다.


무작정 쉬고 싶어 이번 퇴사를 선택한 게 아니다. 마음먹었던 대로 인생의 다음 챕터를 열어가기 위해서 난 무엇보다 무기력을 경계하고 대비해야 한다. 


수많은 약속들로 구성된 이 사회에서 속한 조직이 없는 개인을 증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서류상 잠시 프리랜서 신분이었던 시절에 뼈 저리게 깨달았다. 그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스스로를 소개할 때조차 우리는 대부분 하고 있는 일 혹은 회사로 이야기한다. 아마도 그런 난감하고 불편한 순간들이 쌓여 무기력함을 더 쉽게 느끼게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엔 회사에 다니지 않는 사람도 많다. 회사를 빼고도 나라는 존재는 분명히 실재하고, 이를 제대로 증명해내야 하는 의무 역시 내게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실존하는 객체인 '나'를 사회에 실체화하기 위한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 어려운 말을 써서 뭔가 대단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 적어보는 것으로! :)



※ 퇴사 후 4대 보험 처리 Tip

물론 현실적으로 퇴사가 가장 실감 나는 때는 아무래도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이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전환되었다는 통보서를 받는 순간이다. 직장을 다니며 회사와 내가 반반씩 부담했던 두 보험은 퇴사 후엔 오롯이 나의 부담이 되기 때문에 금액이 상당해지는 경우가 많다.

다회의 퇴사 경험으로 간단한 팁을 공유하자면, 건강보험 공단에는 '임의계속가입 제도'가 있다. 말 그대로 퇴사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직장가입자 시절의 건강보험료 금액으로 지불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인데, 퇴사 전 18개월 동안 1년 이상 직장가입자 자격을 유지했다면 신청 가능하다. 단, 지역보험료가 임의계속가입 보험료보다 높은 상황에서 제도를 이용하면 좋다. (난 늘 유선 채널을 통해 신청하는데 지역보험료가 더 높은지 임의계속가입 보험료가 더 높은지 확인 후 알려준다.)

국민연금의 경우 퇴사 후 발생하는 소득이 없다면 '납부예외'를 신청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연금 납부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기간 동안은 국민연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연금 가입 기간에도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추후 정산되는 연금액이 줄어들 수 있다. 때문에 이 부분은 정말 개인의 취사선택이다.

상세한 내용은 각 제도명에 걸어둔 링크를 통해 반드시 직접 꼼꼼히 확인해 보기를 권장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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