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를 면접 보듯, 나도 그를 면접 보았다
Unfadable... (#14)
시간이 가도 잊을 수 없는
순간, 장소, 사람에 대한 기억
새로운 직장을 구하러 나섰다. 직장을 구하면서 의아한 점은, 구직하는 입장에서 직장을 선별할 정보가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을이라지만, 나도 회사를 선별할 권리가 있는 게 아닌가? 부산 중심가 소규모 호텔 사장실 비서 면접을 보러 간 날이다. 회사 입장에서 그다지 필요 없을 것 같은 개인 정보를 잔뜩 요구하는 이력서를 제출하고, 비서 후보 5명이 함께 사장실에 들어갔다.
사장님은 연세가 많으셨고 배려심이 없어 보였다. 우리 앞에서도 부하직원을 막 대하는 태도가 싫었다. 호텔 실소유주라는 게 믿기지 않는 볼품없는 이미지였다. 그가 나를 면접 보듯, 나도 그를 면접 보았다. 사장은 그 역시도 평가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까?
지금 일하고 있는 비서 자리에 내가 있는 모습을 그려보니, 앞길이 막막했다. 설사 합격하더라도 골치 아플 것 같았다. 존경할 만한 상사를 만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 데.. 이런 곳에 취직하려고 첫 직장을 그만둔 게 아니었는데..
면접이 끝나고 인사과에 가서 이력서를 돌려달라고 했다. 원칙상 안 된다는 그에게, 나는 이곳에 구직하지 않겠다고, 내 서류를 돌려달라고 했다. 안된다는 그 앞에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구직자 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었다.
결국 돌려받은 이력서를 가슴에 안고 돌아왔다. 이력서 위에는 나를 평가한 점수가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점수는 꽤 높은 편이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작고 초라한 개인이지만 나도 내 상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