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by 우아한 우화


이번에 판매한 물품 중에 계란찜기가 있다.

한두 번 사용했다.

30대에 이것을 구매했던 것 같다.


나는 나의 30대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힘들었다는 느낌만이 아련하게 남아있다.

애가 셋인 친구는 “XX야, 30대에 난 그냥 미친년이었어.”라고 말해서 나도 미친년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30대는 무척 젊은 나이인데도 40대인 지금보다 에너지가 없었다.


그때, 계란 삶는 게 힘들었다.

까는 것은 더 힘들었다.

껍질이 제대로 벗겨지지가 않아 거의 노른자만 남을 때도 있었다.

기계의 힘을 빌리면 다를 줄 알았다.

아니었다.

이때는 아이들이 어려서 그랬는지 자그마한 일도 힘들게 느껴졌고 그래서 사람이든 기계든 무엇에라도 도움받기를 원했던 것 같다.


고데기는 언니가 준 것인데, 미용실도 자주 못 가니 케냐에 가져오면 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챙겨 왔다.

무슨….

이번 세일에 학부모 회장인 베티가 진행이 잘 돼 가고 있는지 차량마다 확인차 돌아다녔다.

그때 베티는 우리 자리에 고데기 세 개가 나란히 있는 것을 보고 꼭 내 맘 같은 얘기를 해서 맞장구치며 웃었다.

베티도 고데기 광고를 보고 혹해서 하나 장만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하려니 귀찮아서 하지 않게 되고 또 생각처럼 예쁘게 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내 말이…

최근에 겨우 유혹을 물리친 물건도 다이슨 에어랩이었다.

교회 권사님이 에어랩을 산 이후로 미용실에 가지 않게 되었다면서 미용실에 몇 번 가는 비용이면 에어랩을 살 수 있고 에어랩을 사면 미용실에 안 가도 된다고 해서 정말 혹했다.

그러나 고데기를 보는 순간 나는 에어랩이건 뭐건 있어도 안 할 사람이었다.

나를 모르고 물건을 사면 사치가 된다.



또 하나는 식당에서 호박면을 먹어본 후 밀가루면 대신 건강식으로 먹겠다는 한순간의 호기로 주문한 ‘스파이럴 채소 슬라이서‘다.

생각보다 활용도가 떨어지는 데다 단단한 몇 개의 채소만 가능했고 무엇보다 가족들이 먹지를 않았다.

역시 이것도 한두 번 사용 후 구석에 방치되었다.


zucchni zoodles with chicken


그동안 내가 산 모든 물건들이 이런 식이 었다.

특히 기계식으로 간편하게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주방기계들이 그랬는데, 광고를 보면 간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고 예시대로 다 해 먹을 것 같아서 설레는 마음으로 사지만 나는 나를 정말 몰랐던 거다.

보통 그런 것들은 귀찮아서 편하고 간단하게 하려고 사는데 그런 것들을 샀다고 안 귀찮아지나?

막상 사면 설거지가 복잡해 사용하지 않게 된다.

게다가 전선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씻어야 하는 것들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이번에 산 두유제조기도 그런 번거로움 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샌드위치 기계도 마찬가지다.

광고를 보면 빵이 먹기 좋게 구워지는 데다 테두리를 오므려주니까 내용물이 안 샐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조금만 재료를 많이 넣으면 안에 있는 내용물이 흘러나와 기계에 눌어붙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면 뒤처리가 골치 아파진다.

물론 내용물을 적게 넣으면 맛이 떨어진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인데 그동안 나를 제일 몰랐다.

만성 귀차니즘에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위생과 청결에 나름 신경 쓰는 사람이라 사용 전에 번거롭고 사용 후 설거지가 힘들면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광고만 보면 제품과 물아일체가 되어 그것이 나의 삶을 좀 더 편하고 윤택하게 해 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나마 제일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은 에어프라이어와 믹서기 정도이고 대부분의 것들은 그냥 일반 조리기구를 사용하는 게 훨씬 설거지가 덜 나오고 편하다.

제일 기본적인 조리도구 몇 가지만 있으면 부엌(일)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게 된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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