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무덤
꽤 많이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정리할 옷이 많아 보인다.
종류도 정말 다양하다.
러닝복, 골프웨어, 캐주얼(티셔츠, 후드티, 청바지, 카디건 등등), 정장(재킷, 슬랙스, 블라우스, 셔츠, 치마, 원피스…) 하여간 말하는 입이 아플 정도로 많은 종류의 옷들이 있다.
이번에 옷들을 정리하면서 원피스와 치마, 겉옷은 옷걸이에 걸고 그 외 청바지, 티셔츠, 운동복, 잠옷 등은 칸으로 구분되어 있는 옷장에 넣어두었다.
옷을 정리하기 전에는 공간이 부족해 옷걸이에 비슷한 종류의 옷을 여러 겹 겹쳐놓아서 가장 안쪽에 있는 옷은 잘 꺼내 입지 않았다.
칸칸이 구분되어 있는 옷장도 역시 이중으로 옷을 넣어놔서 앞에 있는 옷들만 꺼내 입었다.
그런데 정리를 하고 나니 옷들이 한눈에 보여서 좋다.
또 두꺼운 옷과 휴양지에서 입을 만한 얇은 원피스들은 정리함 두 개에 나누어 보관해 두었고 부직포 가방 두 개에도 옷이 들어있다.
그중 한 가방에는 청바지만을 모아놨는데 청바지 같은 경우는 리폼이 가능한 데다 유행을 타지 않으니 언젠가 또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딸아이가 제법 커서 내 옷을, 특히 청바지를 많이 입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빨래를 정리한다고 딸아이 옷장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정리했다고 생각한 옷들이 고스란히 딸 옷장에 걸려있어서 내가 정말 정리를 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딸에게 나의 묵은 옷들을 버린 것인가?
이만큼이 지금까지 옷을 정리하고 남은 상태다.
남편에게 지금 있는 옷들을 싹 다 버리고 오래 입을 만한 것들로 새로 사야겠다고 했을 때 그는 참으로 어이없어했다.
그는 미니멀 라이프를 하는 이유가 혹시 새로운 것을 사기 위한 큰 그림이냐고 물었다.
남편은 굳이 있는 옷을 정리할 필요는 없지 않냐고, 그냥 앞으로 옷을 사지 않고 있는 것을 입으면 되는 것 아니겠냐며 내 말문을 막았다.
정말 매우 일리 있는 말이지만 내 마음이 이 말을 싫어했다.
지금 있는 옷들이 낡고 볼품없어 보였기에 맘에 들지 않는 옷을 입는다는 건 나에게 디톡스가 아니었다.
오히려 불만과 불편이 쌓일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이사한 지인도 그랬다.
그녀는 이사하기 전 이미 옷 3박스를 정리했고 이사하면서는 검은색 큰 봉지 두 개에 봉투가 찢어질 정도의 양을 정리했지만 여전히 입을 건 없고 버릴 건 많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말이 너무나 이해돼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내 계획은 몇 개의 옷으로 폼나게, 그러니까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한 어울리게 입어보자’인데 그러려면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잘못된 디톡스의 부작용인지도 모른다.
아니, 이전 글처럼 묵은 것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싶은 어떤 심리적 요인이 작용했는지도.
자, 그럼 적어도 지금 이 사실을 인지했으니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자.
나는 왜 옷을 이처럼 많이 갖게 되었는가?
나에게 옷은 어떤 의미인가?
지금 남은 옷들이 정말 낡았다고 생각하는가?
새로운 옷을 사면 정말 디톡스가 될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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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그러나 핑계 없는 무덤 없듯 다 이유는 있다.
이 많은 질문에 답이 되는 절대적 이유를 내가 알고 있다.
그건 바로 외모 스트레스와 낮은 자존감이다.
그동안 옷으로 나의 단점을 보완 내지는 극복하고 싶었다.
그러나 예쁜 옷을 입는다고 얼굴이 예뻐진다거나 자존감이 올라가지는 않았다.
원판불변의 법칙은 고수되었다.
한참 전에 이런 고민을 하면서 스스로 얼평한 글을 썼는데 다음 챕터에는 이 글을 올려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