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판을 따라갔을 뿐인데
체르마트는 1961년 법으로 내연 기관 차량 운행을 금지해서 전기차만 다닐 수 있는 청정 구역이다. 그래서인지 공기도 맑고 전체적으로 고요한 느낌을 풍겼다. '스위스'하면 떠올리는 목가적인 모습이 딱 체르마트의 모습이었다.
토블론 인증샷도 찍었다. 다른 분들 인증샷에는 작은 걸 사서 꼭대기에 딱 맞춰 멋있게 찍으셨던데 나는 그냥 큰 토블론 초콜릿을 먹을 생각에 들떠서 엄청난 크기의 토블론을 샀다. 그래서 뒤에 마터호른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알 수 없는 초콜릿 사진이 남았지만, 초콜릿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는,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다른 관광객들은 그린지제 호수를 보러 가기로 했는지 반대편으로 향했다. 나는 여러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에서 라이제 호수를 찾아 걸었다.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사이 정도 걸리겠지,라는 생각으로 걷는데 길이 점점 좁아졌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 그런 건지 궁금해하며 계속 걸었다. 그러다가 앞에 쌓인 돌무더기를 보고 멈춰 섰다. 여기가 길이 맞긴 한 건가?
마치 길로 돌들이 쏟아져내린 모양새였다. 작은 돌들이 아닌, 큰 바위도 있었던 데다가 저 앞의 길은 보이지 않아 당황했다. 사진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양옆의 경사가 꽤 가팔랐기 때문에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선택해야 했다. 뒤를 돌아보니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나 자신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또 길 잃은 거 아냐?'
그렇다. 나는 길치였다. 분명 표지판을 보고 따라왔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여태까지의 행적 때문에 스스로를 믿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앞 뒤로 아무도 없는 걸 보자 겁도 났다.
차라리 누군가라도 있었다면 '내가 험한 하이킹 길에 들어왔구나.'라고 생각할 텐데 아무도 없으니 '외국 나와서 산에서 길 잃은 거야?'라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었다.
체르마트 시내에서 기념품을 사고는 저녁도 대충 때우고 잠에 들었다. 스위스 여행 중 제일 긴 하루였다.
<여행 당시 남긴 기록>
기념품 가게에 들렀는데 소 목각인형 50% 세일을 하고 있어서 조그마한 소를 6.4프랑에 샀다. 더 많이 샀어야 했나 후회도 되지만 하나면 충분한 것 같다. 그나저나 여긴 체르마트 기념품밖에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도시마다 조금씩 살 걸 그랬나?
슈텔리제에서 라이제 가는 길 너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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