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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J Oct 16. 2023

여행을 오래 기억하는 방법

여행은 삶에 변화를 가져올까?


혼자 여행 이야기를 쓰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다. 여행 전 읽은 책이나 주변인의 말로는 여행에서 뭔가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뭔가를 배우지 못한다면 실패한 여행이라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 말들은 부담감으로 얹혔다.


10박 11일 스위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고 나서는 개강 준비로 바빠 여행의 기억을 되새김질할 시간이 없었다. 여행은 한 사람의 시야를 넓히고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당장 내 삶을 바꾸지는 않는다. 물론 당장의 통장은 텅 비겠지만.


여행을 다녀왔다고 갑자기 힘이 솟아나거나 현명해지는 건 아니다. 당시에도 다시 일상으로 녹아들며 '돈을 들여 여행을 다녀온 게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분명 내가 읽은 여행기들에서는 다들 뭔가를 깨달아서 돌아왔다던데 나의 일상에는 딱히 변화가 없었다. 잠깐의 모험으로 숨이 틔였다고는 해도 본질적인 변화는 아니지 않은가. 내가 여행을 통해 얻은 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서도 스위스에서의 일이 생각나면서 내가 거기까지 다녀왔었지, 어떤 문제가 생겼었는데 이젠 다 지나간 일이지 하며 떠올리고는 했다. 첫 해외여행을 혼자 여행으로 다녀오고 나니 뭔가를 혼자 한다던가 어딘가로 떠난다는 게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여행을 다녀왔는데 배운 게 없다는 생각이나 돈만 낭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중에 가면 그 여행을 양분으로 삼아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지쳐서 침대에 축 늘어질 때 떠올리는 위로의 기억이 되기도 하고, 낯선 상황에 떨어졌을 때 반추해 보는 기억이 되기도 한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확실한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다. 약간의 각도 변화가 나중에는 엄청 난 차이를 일으킨다는 말처럼 말이다. 그러니 여행을 다녀오는 데 있어서 나처럼 부담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오래 기억하는 방법


몇 년이나 지난 스위스 여행기를 쓸 수 있었던 데에는 여행이 그만큼 오래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아무리 인상적이고 멋진 풍경이라고 하더라도 바쁜 일상에 시달리다보면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나중에라도 여행 때 가본 곳이나 감정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뭔가가 필요하다. 내가 스위스 여행을 기억하는데 도움이 된 방법을 크게 세 가지로 추렸다.


1. 기록 남기기

손바닥만 한 노트를 가져가 기록을 남겼다. 여행 중에 길게, 일기처럼 쓰는 건 부담스러워서 기차를 타고 가는 시간이라든지 잠들기 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짧게 짧게 감상을 남겨뒀다. 노트에 함께 끼워둔 영수증은 잉크가 날아가 희미해졌지만 함께 적어둔 기록을 보고 어떤 것이었겠구나 추측할 수 있었다.


휴대폰 메모에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아날로그적인 방법을 조금 더 추천한다. 바빠서 휘갈겨쓰듯 남은 글씨체라든가 틀린 글자에 찍 그은 선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보면 여행 때의 기억이 더 잘 살아나기 때문이다.



2. 사진 정리하기

사진을 찍어두는 것도 좋지만 그걸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면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 카메라나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따로 파일 저장해두는 방법도 있으나 나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포토북(사진첩)을 만들고 싶었다. 언제든 꺼내서 펼쳐볼 수 있도록 말이다.



스위스 여행을 다녀와서 만든 포토북이다. 사진을 골라서 여행 일정 순서대로 정리하고 날짜와 장소만 간단히 기록했다. 사진 배치나 표지 모양 등은 사이트에서 여러 디자인을 제공하기 때문에 고르기만 하면 돼서 쉬웠다.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하드커버로 제작하고 책장에 꽂아두니 나만의 여행책 같은 느낌도 났다. 여행을 다녀와서 잠깐의 시간을 투자한 덕분에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는 추억이 되었다.


물론 꼭 포토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가지고 있는 사진 앨범 파일이 있다면 사진을 인화해서 넣어두는 것도 좋다. 모양보다는 사진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3. 오래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기념품 구매하기

두고두고 볼 수 있는 기념품을 사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열쇠고리나 자석, 엽서 등등 종류는 다양하다. 당시 기억이 남을 만한 것이면 충분하다.


내 책장에는 체르마트에서 샀던 목각소가 자리잡고 있다. 가끔 흔들어 방울 소리를 듣고는 하는데 그럴 때면 하이킹 중 만났던 소의 방울 소리가 떠오른다. 목각 소는 사려고 계획했던 것도 아니라 그냥 상점에서 예쁘길래 사온 건데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다. 여행 기념품을 살 때 만큼은 실용성보다 마음이 가는 대로 고르기를 추천한다.



정말 간단한 방법들이지만 꼭 시도해보기를 바란다. 나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이후의 여행들은 위 세가지를 실천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간 여행인데도 기억 나는 것이 별로 없어서 아쉬울 정도다.


모두들 여행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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