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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J Oct 30. 2023

누구에게나 탈출구가 필요한 법이다

취미의 의미

지난 몇 년간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다.


아침 일찍 학원에 나가서 수업을 듣고, 학원에 붙어있는 독서실에서 밤까지 공부하다 집으로 돌아가서 잠드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래서인지 같은 나날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다는 마음이 항상 있었다. 하지만 일단 시험을 끝내고 모든 걸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미뤘다.


어릴 적 읽던 동화책처럼 '오랜 시간을 들인 끝에 합격했답니다'라는 해피엔딩만 있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꿈만 같지는 않았다. 그간의 공부로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과 앞으로 또다시 들이부어야하는 시간들이 버거워질 무렵 시험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오래 공부하던 시험을 포기하고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성과를 내지 못하고 다시 뭔가를 준비하기 위한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금방 지쳤다. 환기할 거리가 필요했다. 자연스레 예전의 취미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전시 관람이 취미였던만큼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아다녔다.


출처: unsplash.com


유명한 화가와 화려한 그림, 새로운 시도 등등. 작품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으나 뭔가 부족했다. 아무리 열심히 관람을 해도 그 전시의 타자가 되는 느낌이었다.


관람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허한 마음을 붙들고 고민했다. 전시 관람은 좋은 취미였지만 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던 시기라 맞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전시를 찾아간다고 해도 내게 탈출구가 되어주지 못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참여해 집중력을 쏟아부어야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그림을 그려볼까?


그런 생각이 떠오른 건 순간적이었다. 어쩌면 오래도록 무의식 속에서 배회하다 튀어나온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미술학원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신기한 일이었다. 미술학원에 가게 되면 연필을 쥐고 선을 긋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상당히 지루했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내 눈에는 도통 보이지 않는 명암을 넣고 형태를 잡는 건 입시 미술을 준비하거나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이겠지만……. 다시 학원에 다니기가 꺼려지는 건 그 때문이었다. 나는 위대한 화가가 되기보다는 취미로 색을 칠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unsplash.com


요즘 성인 미술 학원도 많다던데 나중에 직장을 구하면 미술 학원을 다녀볼까 고민한 것도 잠시, 더 이상은 미루지 않기로 했다. 이미 한 번 실패를 겪고 나서 알게 된 일이었다.


행복을 유보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기록까지 남겨둘 정도로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글을 적으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얼마나 많이 포기하고 있는가를 다시 깨닫게 되었다. 마치 지금 포기한 것을 미래가 모두 보상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런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좋은 대학에 가면 모든 고생을 보상받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들어가면 취업이라는 더 강한 압박감이 존재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도 끝없는 인간관계나 업무 불일치에 새로운 길을 찾는 이들이 많다. 분명 성공하면 그 이후의 인생은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러울 것 같았는데 부유물이 된 것처럼 물길을 제대로 따라가기가 버겁다. 미래를 꿈꿀 때는 자꾸만 가라앉는 스스로의 모습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괴리 때문에 쉽게 우울에 빠진다. 분명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돌아보니 이룬 것도 없고, 지금 내가 맞는 자리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여태껏 즐거웠던 것도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실패한 인생이기 때문이라고 자조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현재의 나에게서 모든 행복을 뺏어간 결과인 것 같다.


먼지가 쌓여가던 팔레트와 물감을 꺼냈다. 미술학원을 그만둔 초등학생 이후로는 손도 대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말라비틀어진 붓은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근처 문구점에 가서 붓을 하나 사왔다. 어떤 붓이 좋은 건지는 몰라도 고르는 과정은 즐거웠다. 미대생이 된 것 같은 착각에 잠시 빠지며 깔끔한 붓을 사서 돌아왔다.


예전 기억을 되살려 붓을 움직였지만 내 생각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그리고 싶은 것도 애매했다. 오래도록 미술을 멀리 한 상황에서 갑자기 뭔가를 그리라고 하면 그려낼 수 있을리 없었다. 물감을 칠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그러니 멋대로 가는 붓으로 하는 물감 놀이가 최선이었다.


여기서 만족하고 끝내고 싶지 않았다. '완성된 그림'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 선택한 방법은 유튜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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