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건망증이란, 반려견이나 반려묘처럼 '반려증(伴侶症)'이라 이름 붙여도 될 듯싶다. 지금까지 같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동고동락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몇 년 전 여름휴가로 온 가족이 평창에 가는 길이었다. 한 시간쯤 가다가 휴게소에 들러 식사했다. 식사 후 남편이 애들을 데리고 편의점으로 갔고 나는 먼저 차로 돌아가서 기다렸다. 사 온 과자랑 음료수를 먹으며 다시 출발했다. 애들이랑 끝말잇기도 하고 난센스 퀴즈 게임도 하면서 30분쯤 지나 드디어 예약해 둔 펜션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려는데 핸드백이 안 보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휴대폰만 있고 핸드백이 온데간데없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생각을 더듬어봤다. '아침에 집에서 안 가지고 나왔나? 아니, 차 탈 때 메고 있었는데?'
휴게소에서 식사할 때 가지고 있던 게 생각났다. 핸드백을 의자 등받이에 걸쳐 놓았던 것도 떠올랐다. 맙소사! 밥을 먹고는 그냥 그대로 일어서서 나온 것이었다.
시간도 꽤 지났고 지갑 속 카드를 떠올리니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서둘러 휴게소로 전화해서 물어보았다. 천만다행으로 분실물 센터에 가방이 보관돼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의자를 정리하던 직원이 가방을 발견하고 분실물 센터에 갖다 놓았다고 했다.
남편은 짐을 내려놓자마자 그 길로 다시 돌아갔다. 1시간 반 만에 남편이 핸드백을 가지고 왔다. 지갑과 내용물이 온전하게 다 들어있었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먼 길을 되돌아갔다 온 남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가지고 나가야 하는데 잊어버려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 마트에서 사야 할 것들,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이 외에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할 건망증 일화가 적지 않다. 나는 언제든 어디서든 사고 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 살 한 살 나이 먹을수록 건망증이 치매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검색해 보니 건망증과 치매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라고 하기에 조금은 다행이긴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서 건망증에 관련된 경험담을 들을 때마다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하며 위안 삼기도 했다. 하지만 마냥 안심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처음엔 스마트 폰에 일정을 등록해 놓는 게 최선의 해결책인 듯했지만. 스마트폰의 유혹에 번번이 빠져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결국엔 그냥 화면을 닫고 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작 해야 할 일은 잊은 채로.
다음으로는 종이에 써놓는 거였다. '나중에 써야지' 하면 잊어버리기에 설거지하다가도 고무장갑을 벗고 즉시 메모지에 적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디지털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아도 나에게는 적합한 방법이라 여겼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또 발생했다. 기껏 적은 메모지를 잃어버린다는 것.
그래서 나는 이중 장치를 하기로 했다. 종이에 적은 후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어 놓기다. '둘 중의 하나는 걸려라'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이 이중 장치를 뚫고 건망증이 사고 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다. 누가 내 뒤통수를 좀 때려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