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주살이 1일 차 제주의 날씨

이번 여행 망했다.

by 메이의정원

7월 12일에 제주도로 출발했던 이유는 아이 방학이 시작되는 무렵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기나긴 6월 장마의 끝무렵이라 날씨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혼자서는 에너지 넘치고 사고뭉치 두 아이를 감당하기에는 힘들겠지만 동생이 있었기에 남편 없이도 한 달 살기를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런데 제주를 출발하기 전 월요일에 5개월 된 조카의 상태가 이상했다. 기침과 콧물이 나오고 열까지 난 것으로 보아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야간 진료를 보는 달빛 소아과를 급하게 다녀왔다. 폐렴이 의심된다고 했다. 5개월 밖에 안된 아이라 걱정이 컸다. 다음날 바로 소아과 전문 병원에 입원을 하라고 했다. 동생과 제부는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조카를 입원시켰다. 폐렴과 모세 기관지염이 같이 왔다고 했다. 영아는 폐렴으로 입원을 하게 되면 한 달 가까이 병원에 있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조카의 건강이 걱정이 되었다. 미안해하는 동생에게는 아이 다 낫고 오라고 걱정 말라고 했다. 그리고 동시에 드는 생각은.. 이번 제주 여행은 망했다였다. 나 혼자서는 저 두 녀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고 출산하고 육아하며 나를 쥐어짜며 하루하루 버텨온 시간이었다.


날짜가 임박해서 계획된 여행을 취소하기에는 위약금이 너무 컸다. 예정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 그냥 부산에서 살던 대로 지내자. 무리해서 관광지 돌아다니지 말자. 숙소 근처 가까운 곳만 다니자. 어떻게 해서든 남편이 오기까지 3주만 버티면 된다. 생존 본능이 발동했다. 말귀 알아먹는 첫째에게는 엄마 도와줘야 한다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알아서 해야 한다고, 이번에 엄마 힘들게 하면 다음 여행은 없다고 협박까지 하며 단단히 일러두었다.


모기에게 뜯기며 모기를 잡으며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고 나서 계속되는 모기와 전쟁을 치르려면 전기 모기채가 필요했다. 쌀이며 김치, 반찬거리, 간식거리 등 먹거리도 필요했다. 아이 둘을 차에 태우고 이마트로 향했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해서 인지 아이들은 이마트 시식 코너를 돌며 온갖 것들을 맛보기 시작했다. 만두, 비엔나, 요플레, 고기, 버섯, 수프 등등 시식 코너만 돌아도 배가 불렀다. 먹기만 하고 안 살 수는 없어서 카트에 잔뜩 채우고 나니 15만 원 정도 나왔다. 그래도 배불리 먹고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쓴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이마트 들어가기 전에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비 맞는 것이 싫어서 건물 내부에 주차를 했다.


차 트렁크에 장본 것을 가득 싣고 이마트 건물 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폭우가 쏟아진다. 반대편 지나가는 차가 고인 물을 뿜어대느라 차가 휘청일 정도였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두 아이도 무섭다고 했다. 이번 여행은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마가 시작되는 것 같았다. 장마를 피해서 날짜를 잘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날씨마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비가 온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이었다. 비를 피해서 잘 왔건만 짐을 옮기며 나와 아이들은 비에 쫄딱 젖었다.

주인아주머니도 날짜를 잘못 잡았다고, 한 달 만에 제주도에 비가 오는 거라고 하셨다.


아이들부터 씻기고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고민이 커졌다. 그냥 부산으로 돌아갈까 생각이 들었다.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조카가 다행히 금요일에 퇴원을 했고 외래 진료에도 특이사항이 보이지 않아 통원 약만 먹고 병원은 더 이상 안 와도 된다고 했다고 했다. 증상이 보이자마자 입원을 해서 쉽게 나았다고 했다. 동생은 월요일 비행기로 제부와 함께 오겠다고 했다. 이제 하루만 버티면 된다. 드디어 나의 상황을 구원해 줄 동생이 온다.

keyword
이전 01화제주도 한 달 살기를 시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