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놀이에 진심인 아이들
제주의 서쪽 바다인 곽지과물, 협재, 금능해수욕장은 제주에 올 때마다 들러서 시간을 보냈지만 제주의 동쪽 바다는 거의 처음이었다. 바닷가에 도착하기 전 함덕 다이소에 들러 모래놀이 도구와 조개 잡을 때 쓰는 호미와 바구니, 장갑 등을 샀다.
함덕 해수욕장은 조개 잡이하러 오조리에 가기 전에 잠깐 들르기로 했다. 그런데 텐트까지 치고 아이들 모래놀이하다 보니 하루의 반나절을 다 보냈다. 물때를 맞출 수도 없었고 함덕 해수욕장에서 오조리까지는 제법 거리가 되었다. 조개잡이는 나중에 성산 쪽으로 여행할 때까지 미루기로 했다.
다이소에서 파는 모래놀이 도구로 아이들은 케이크도 만들고 아이스크림도 만들며 나에게 먹어보라고 자꾸 권했다. 나도 아이들이 만들어준 모래 케이크와 모래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다.
둘째는 모래 담는 수레에 모래를 가득 담아 파도가 밀려드는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모래를 쏟는 것을 재미있어했다. 수십 번은 모래를 담았다 파도에 버리는 일을 반복했다. 아이가 파도에 휩쓸릴까 봐 매번 손과 팔을 꼭 붙잡고 여의치 않으면 옷 뒤쪽 목덜미를 붙잡았다. 햇볕은 뜨겁고 파도에 모래 쏟기 무한 반복 행동이 슬슬 지겹기 시작했다. 가자고 꼬드기고 어르고 달래도 이미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한 두 녀석을 모래놀이와 떼어놓기는 불가능했다.
세 겹이 넘는 바다의 색은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바쁘게 일하고 있을 남편이 생각났다. 전화를 걸었다. 남편에게 영상 통화로 바다의 모습과 파도 소리, 모래놀이 하는 두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이들도 남편도 이산가족이 다시 만난 듯 무척 반가워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아빠가 튜브에 태우고 물놀이를 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 혼자서는 아이 둘을 파도가 밀려드는 바다에서 수영하게 할 자신이 없었다. 여벌 옷도 챙겨 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은 남편이 올 때까지 미루기로 했다.
선크림을 발라도 피부에 닿는 태양빛은 뜨거웠다. 모자하나로 버티기에는 양산을 챙겨 오지 않아 피부는 까맣게 타가고 두 아이 출산으로 완벽하게 지우지 못한 얼굴 기미도 더 진해지는 것 같다. 내 마음은 바싹바싹 타들어간다.
더는 뜨거운 태양아래 모래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들 모래놀이 하는데 계속 지켜볼 수는 없어 간식 먹으러 가자고 아이들을 데리고 텐트로 갔다.
몇 년 전 그늘막을 잘 못 사서 엄청나게 고생하고 원터치 텐트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여행이라 해봐야 호텔이나 펜션, 카페 가는 것이 취미인 우리 가족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라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돗자리와 텐트가 필요할 것 같아 미리 주문을 했다. 원터치라서 펴는 것은 쉬운데 접는 것은 몇 번을 해봐도 쉽지 않다.
아이들이 두 시간 넘게 모래밭에서 놀고 온 사이 텐트에서 쉬고 있던 동생 가족이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사겠다고 잠자고 있는 조카를 봐달라고 하고 갔다.
모래 놀이하며 진땀을 다 뺀 아이들은 간식을 찾았고 미리 챙겨 온 간식을 먹느라고 부산스러운 소리를 내는 바람에 곤히 자고 있던 조카가 잠에서 깼다.
조카는 나와 아이들이 익숙해서인지 엄마가 없는 상황에서도 울지도 않고 과자를 하나라도 더 먹겠다고 아웅다웅하는 언니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듯했다.
동생이 사 온 아이스크림과 보리차 덕분에 텐트 안은 시원함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고드름 같은 얼음과자를 3통이나 다 먹었다.
챙겨 온 간식을 다 먹고 텐트 안에서 발을 뻗고 누웠다. 짙은 에메랄드 빛 바닷물, 신나게 물놀이하는 아이들과 어른들, 모래로 작품 만드는 것에 진심인 아이들..
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떠가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부드럽게 온몸을 구석구석 간질였다. 잔뜩 긴장되어 있었던 몸과 마음도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는 것 같다. 물아일체.. 충만하다. 감사하다. 이제야 제주 여행이 실감이 난다. 앞으로 하나씩 기록될 제주에서의 하루하루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