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에 공존하는 기억.
공항과 가까운 폴바셋을 왔다. 바다는 번거롭고 숲은 벌레가 많아서 무더위를 식히기에 카페만 한 곳이 없다. 오전에 이미 커피를 한 잔 마신 터라 아이들과 함께 먹으려고 팥빙수를 주문했다.
자리를 잡은 곳이 에어컨이 너무 강해서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로 자리를 옮겼다. 따뜻한 햇살 덕분에 나른해지면서 졸음이 몰려온다. 폭신한 소파 의자에 고개를 젖히고 잠시 눈을 붙인다.
갑자기 둘째가 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첫째랑 계단을 오르내리다 무엇인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두 아이가 서로 티격태격하는 중이었다.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아이들은 내 주변에서 맴돌며 놀잇감을 찾기 시작한다.
내 가방을 뒤져 모기 패치를 꺼내더니 스티커 붙이기 놀이를 한다. 모기 패치 냄새가 독하다. 실내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더니 둘째가 입을 삐죽이며 울기 시작한다.
카페에 계속 있기에는 주변에 민폐인 것 같고 아이들도 심심해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온다. 뜨거운 햇살을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식혀준다.
오션뷰 카페나 호텔은 부산에도 이미 많아서 카페 창 너머로 바라보는 오션뷰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
그런데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는 눈 부시게 아름답다. 제주 바다의 반짝이는 윤슬을 15년 전 성산일출봉에서 봤다. 15년 전.. 나의 20대 시절.. 금빛 반짝이는 바다가 황홀할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워 카메라 셔터만 연신 눌러댔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참 빠르다.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 세상의 모든 풍요로움이 몰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는 금빛, 은빛 모래보다 더 화려하다.
바다를 한없이 멍 때리며 보기에는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수시로 나를 호출하는 두 녀석 덕분에 더 이상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다.
두 아이는 놀이터를 보더니 놀고 싶다고 한다. 미끄럼틀, 그네, 시소.. 제주에 와서 아이들은 계속 놀이터에 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지나쳐봐도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 놀이터를 찾기는 불가능했다. 남의 아파트를 방문하기도 껄끄러워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달래기만 했다.
아이들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그네도 타고 시소를 탄다. 아이들이 즐거워한다. 나도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공항 근처라 비행기가 자주 뜬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탈 것을 이리저리 바꿔가면서 놀다가도 비행기 소리가 들리면 "비행기다!" 감탄을 연발하며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본다.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며 바다를 바라본다. 오래전 대만 예류 지질 공원을 갔던 곳과 비슷한 풍경을 발견했다. 나중에 운전하고 오면서 관광지로 유명한 용두암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이한 풍경 때문인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인다. 그중에는 한껏 차려입고 사진작가까지 대동하고 사진을 찍는 젊은 여자도 있었다. 제주 여행에서 멋진 풍경과 인생의 순간을 기록에 남기고 싶었겠지..
찬란하게 빛나던, 다시 봐도 젊음 그 자체가 아름다웠던 나의 20대 시절이 생각난다.
나도 아이들과 함께 한두 시간 멋진 풍경에서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스냅작가 섭외해볼까 싶다.
멋진 풍경을 배경 삼아 아이들 사진 찍는데 갑자기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싶다. 둘째가 갑자기 팔을 뒤로 뻗더니 갈매기 흉내를 낸다. 첫째도 따라 한다. 햇빛에 새카맣게 그을린 두 녀석이 영락없는 촌 갈매기 같다. 부산 촌 갈매기.. 남편에게 전송하고 전화 통화하며 한참 웃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