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발견
제주 여행을 하며 15년 전쯤 이호테우해수욕장에 온 적이 있다. 그때 이호테우해수욕장은 안 좋았던 기억으로 가득했다. 소나무밭 곳곳에 펼쳐진 텐트들, 해변에 떠밀려온 조개껍데기, 나뭇가지들, 온갖 쓰레기들. 최악은 악취였다. 바다에서 썩은 냄새가 났었다.
그 이후 이호테우 해수욕장은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아이 수업 끝나고 가볼 만한 곳.. 계속 이호테우 해수욕장이 눈에 밟힌다. 동생은 그 이후에도 이호테우 해수욕장을 왔었는데 흐린 날씨에 비까지 와서 별로였다고 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이번에 안 가면 계속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고 했더니 동생도 가보자고 한다.
주차장이 만차이다. 두세 바퀴 돌아도 차 댈 곳이 없다. 내비게이션을 다시 찾아보니 2 주차장이 근처에 있다. 차를 대고 보니 해수욕장 메인과는 거리가 있다. 아이들 세명 짐과 간식거리, 도시락, 돗자리까지 양손 가득 들고 보니 해수욕장 메인까지 움직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다리 아프다고 징징대는 둘째, 쉴 곳이 필요하다.
왼쪽으로 정자가 몇 곳 보인다.
짐을 들고 아이들과 함께 정자로 이동한다.
'현서마을'이라는 마을 표지석이 보인다.
정자에는 아저씨 한분이 커피를 들고 앉아서 졸고 있다.
햇빛이 들지 않는 구석에 작은 돗자리를 펼친다.
점심때가 훌쩍 지난 뒤라 배가 고프다.
아이들과 함께 돗자리에 둘러앉는다.
미리 사온 도시락을 꺼내어 먹는다.
정자 그늘에서 맞는 바닷바람이 정말 시원하다.
포구에는 배들이 매여있다.
잠시 후 마을 주민인듯한 할머니 세 분이 오셔서 대화를 나누신다. 제주도 방언으로 말씀을 하시는데 사투리라 정겨우면서도 처음 듣는 단어와 어투가 낯설다. 할머니들은 아이들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시며 예쁘다고 해주신다. 할머니들의 관심에 둘째가 장난기를 보이기 시작한다.
첫째는 키즈 카페에서 신나게 놀고 온 터라 피곤하다고 한다. 도시락과 챙겨 온 간식들을 다 먹고 나서 돗자리에 잠시 누워 잠을 정한다. 둘째가 누워있는 첫째를 괴롭힌다. 둘이 티격태격한다.
동생이 아이들을 데리고 해변으로 간다. 멀리서 바라보니 모래사장에서 한 참을 쭈그리고 앉아있다 이동하다를 반복한다.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아이들이 정자로 돌아온다. 모래 속에서 조개껍데기를 가득 주워왔다고 한다. 엄마는 어떤 조개껍데기가 예쁘냐고 첫째가 묻는다. 아이들이 주워 온 조개껍데기가 모두 다 예쁘다. 조개껍데기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둘째가 다시 바닷가로 나가자고 내 손을 잡아끈다. 모래사장에 발을 딛는 순간. 감탄이 나온다. 금빛 모래이다.
내가 기억하던 이호테우 해수욕장이 아니다. 새로운 발견에 흥분이 된다. 모래를 집 삼아 들락날락하는 바닷물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맑고 투명하다. 물살이 잔잔해서 아이들 손을 잡고 바닷물이 들이치는 지점에 가만히 서있는다. 파도를 피해 달아날 필요가 없다.
파도가 휩쓸고 간 모래 위에 다양한 그림이 그려진다.
한참을 서서 모래 위를 헤엄치는 맑고 투명한 바닷물을 바라본다. 내 마음도 맑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