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기는 엄마의 인내가 필요해.
내가 국민학생 시절 그렸던 할머니집 뒷 산과 화단에 피어있던 빨간 장미 그림을 어른이 되고 친정집에서 찾았다. 다시 봐도 어린 나이에 참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 선생님의 추천으로 대회에 나가 입상을 했던 적도 있다. 지나 놓고 보니 그림 그리기에 재능은 있었던 것 같은데 업으로 삼고 싶을 만큼 흥미는 없었던 것 같다.
첫째는 나의 미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는지 어렸을 때부터 그림으로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잘 표현했다.
나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종이, 물감, 크레파스, 색종이, 색연필 등을 준비해 두었다.
아이가 재능이 있는 것 같아 일찌감치 미술학원을 보낼까 생각도 했지만 어린 나이에 미술 학원에서부터 구조화된 입시미술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너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그려라"고 강조하고 아이들에게 엄마의 욕심을 강요하지 않았다. 풀어놓고 그림을 그리게 해서 그런지 지난 학기에 방과 후 미술 선생님도 아이가 미술 활동을 정말 즐겁게 참여한다고 하셨다. 아이의 그림도 창의적이고 색을 정말 잘 사용한다고 칭찬을 하셨다. 아이에 대한 최고의 칭찬을 들은 것 같아 감사했다.
쿠팡으로 도화지를 250장 주문해서 아이들이 제주에 머무르는 동안 마음껏 그리게 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두 아이는 서로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겠다고 티격태격했다. 아이들 그림 그리기가 시작되면 전쟁이 시작되었다.
두 아이의 다툼에 어린 조카까지 합세해서 울기 시작하면 집은 전쟁터였다. 두 아이의 투닥거림은 나에게는 큰 스트레스였다.
첫째가 정성껏 그린 그림에 둘째가 낙서를 하는 날이면 두 아이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첫째는 화가 나서 둘째에게 소리를 지르고 언니한테 혼이 난 둘째는 울면서 나에게 와 이르기 바빴다. 두 아이를 중재해야 하고 뒷정리까지 감당해야 해서 참 힘들다.
더구나 둘째는 크레파스 껍질을 벗기고 부러뜨리고 손이며 발, 온몸에 낙서를 한다. 둘째에게 크레파스 망가뜨리는 즐거운 놀이라서 포기시키기 힘들다. 방바닥에 크레파스를 묻혀놓는 등의 행동은 나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둘째가 그림을 그리고 나면 할 일은 더 늘어났다. 둘째에게는 손에 묻지 않는 크레파스를 사줘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후회를 했다.
아이들은 250장이 되는 스케치북도 순식간에 거의 다 썼다. 끄적이며 낙서하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새 종이를 꺼내오기를 반복했다. 거실 바닥은 아이들의 습작 도화지로 가득했다. 큰 종이 가방에 아이들 그림을 모으기 시작했다. 모아진 그림이 제법 많다.
쿠팡으로 주문했던 물감과 붓, 팔레트가 도착했다. 오전에 오전 내내 아이들과 함께 숙소에 머무르며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아이들은 숲과 바다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물감과 붓으로 표현했다.
둘째가 물감으로 그린 바다 그림도 제법 창의적이다.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 둘째는 내가 한 눈 파는 사이에 붓에 뭍은 물감을 온 방에 뿌려놨다. 장판에 스며든 물감을 닦느라고 고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물감으로 그림 그리기가 끝나고 아이 키즈카페 가까이에 드로잉 카페가 있다고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기대를 잔뜩 했지만 드로잉 클래스는 작년에 중단했다고 한다. 한지로 만든 작품 몇 점 구경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제주에 와서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아이들 그림 전시를 하기 위해 여러 곳을 알아봤다. 제주에 갤러리 카페가 제법 있지만 아이들 그림 전시가 가능한 갤러리 카페는 찾기가 쉽지 않았다. 챗GPT로 제주시로 범위를 좁혀 검색을 한 결과 '거인의 정원'이 뜬다.
긴장되고 흥분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가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한두 시간 후 갤러리 매니저님과 통화하며 궁금했던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아이들 그림 전시도 흔쾌히 받아주셔서 감사했다.
1층 갤러리는 15일 동안 전시를 하고 40만 원 대관료가 있다고 하셨다. 아이들 작품을 판매해서 수익을 낼 가능성은 없고 제주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도 일주일이 남지 않아 갤러리 대관은 힘들 것 같다. 대신 2층 세미나실에서 전시를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바로 예약을 했다.
일시: 8월 4일 월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12시 30분.
장소: 거인의 정원 세미나실
아티스트: 연우&유진
아이들아 오늘도 신나게 노느라 바쁘겠지만 내일 전시를 위해 마지막까지 열심히 준비를 해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