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가진 아이들
제주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조개잡이를 하려고 다이소에 들러 장갑, 호미, 가래 등을 구입했다. 오조 포구에서 조개 잡기가 가능하다고 해서 가보고 싶었지만 숙소에서 너무 멀어 어린 조카까지 데리고 가기에는 너무 멀어서 포기했다.
남편과 제부가 있으니 이번에는 먼 길도 갈 수 있겠다 싶다. 남편에게 오조포구가 있는 성산읍 물 때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남편은 오후 1시 30분부터 4시까지 물이 가장 많이 빠진다고 한다.
아이 영어 수업 마치고 비밀의 숲이나 비자림을 들렀다가 오조포구로 넘어가면 되겠다고 여행 동선을 짠다.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카페에서 챗gpt에게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때를 다시 물어보니 오전 11시부터 2시까지라고 한다. 남편이 찾은 자료는 2년 전 것이었다. 남편 말만 믿고 갔다가는 큰 일 날뻔했다. 오조포구 조개잡이는 포기하기로 했다.
비자림은 첫째 임신 중에 태교 여행으로 왔었다. 그때 만삭의 몸으로 걷는 것이 힘들어서였는지 별로 기억이 좋지 못했다. 비밀의 숲은 한 번도 안 가본 곳이기도 하고 곳곳에 포토존이 있다고 해서 호기심을 끈다.
비밀의 숲 가는 길에 삼나무 숲을 다 베어내고 도로를 확장하는 중이었다. 뉴스 기사에서 봤던 곳이었구나 싶었다. 나무가 다 잘려나가서 그런지 아쉬웠다. 숲이 우거진 사려니숲 드라이브 코스와 비교되었다.
비밀의 숲에 다가올수록 길이 울퉁불퉁하다. 속도를 10km/h 이상 낼 수가 없다. 창문을 내린다. 시원한 바람과 새소리, 매미 소리, 숲의 냄새가 좋다.
매표소 입구에서부터 민트색 캠핑카 두대를 보니 요즘 20대 여성들 인스타 감성 제대로 저격한 느낌이다. 숲길을 따라 들어가니 숲이 아기자기하게 잘 가꿔져 있다. 동화 속 요정이 살고 있는 느낌이다. 숲이 내뿜는 향기마저 달콤하다.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한다. 비밀의 숲 근처는 식당이나 그 흔한 편의점도 보이지 않는다. 의자에 앉아 과자와 귤을 먹는다. 곳곳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놀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15분 거리에 있는 비자림으로 이동한다.
비자림 입구에는 숲 해설사 선생님이 한 무리를 이끌고 설명을 하고 계신다. 숲 해설 듣고 싶지만 첫째는 다리가 아프다고 하고, 동생도 호기심을 보이지 않는다. 아쉽지만 숲 해설을 뒤로하고 숲길을 따라 걷는다.
초록빛 비자나무 열매가 땅에 떨어져 있다. 아이들은 보물 찾기를 하듯이 비자 열매를 줍는다.
아이들이 비자 열매 줍기에 경쟁이 붙었다. 내가 땅에 떨어진 비자 열매를 주워서 주는 날에는 자기는 안 준다고 서로가 삐치기 바쁘다. 아이들이 납득할만한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너희들도 선물을 주고 싶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지? 바람과 비자나무도 선물을 주고 싶은 아이들에게 열매를 주는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엄마말 잘 듣고 떼 안 쓰고 서로 비자 열매를 나누는 아이들에게 주는 거라고 덧붙였더니 아이들은 알겠다고 한다.
첫째와 둘째는 서로가 주운 비자 열매를 사이좋게 나눈다.
땅에 떨어진 비자 열매가 누군가의 발걸음에 밟혔는지 터졌다. 즙이 흘러나오는 비자열매 주워 냄새를 맡아본다.
푸른 청귤 냄새가 난다. 숲의 향기처럼 상쾌하다.
비자나무 덕분인지 숲에는 진드기나 흔한 모기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숲의 공기와 향기에서도 비자 냄새가 난다. 걷는 내내 몸과 마음이 이완되는 느낌이다. 역시 여름에는 벌레들이 싫어하는 삼나무숲이나 비자나무 숲으로 와야 한다.
숲 길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약수터가 있다. 물병에 가득 담아 한 모금씩 마신다. 물 맛이 부드럽다. 숲길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얼마 걷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벌써 출발했던 입구이다.
몸도 마음도 재충전되는 곳 제주에 한 달이 아닌 일 년 살이를 하고 싶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아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