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씨의 의자|노인경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 있다 보면 지지고 볶는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두 아이가 사이좋게 잘 노는 것 같다가도 순식간에 삐치고 싸우고 울면서 둘 중 하나는 나에게 다가와 상황을 일러바친다. 아이들 장난감과 책으로 집은 정리를 해도 끝이 없고 한창 옷 갈아입기에 재미가 들린 둘째는 옷장을 다 뒤지고 옷을 하루에서 4-5번은 갈아입는다. 빨랫감도 덩달아 늘어난다.
일주일 전 아파트 연못에서 따온 부들이 10일이 넘어가자 민들레 홀씨처럼 만개해서 온 집안을 날아다니는 통에 청소기와 돌돌이를 동원해서 치우느라 애를 먹었다.
지친 엄마가 누워서 잠깐이라도 쉬려고 하면 수시로 찾아와 배고프다, 간식 달라를 외치고 둘째는 아예 냉장고에서 사과며 포도 등 과일을 통째로 꺼내와 누워있는 나에게 달라고 한다. 낮잠을 좀 자고 싶었다가도 홀라당 깬다.
책이라도 읽어볼라치면 간식을 다 먹은 아이들은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꺼내온다. 한숨이 푹 나온다. 책을 좋아하는 두 아이.. 하지만 두 아이의 나이 차이가 있다 보니 수준이 달라서 그림책 읽어주기는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 나의 에너지도 점점 바닥이 난다.
곰씨의 의자.. 이 책을 보는 순간.. 곰씨의 상황에 몰입이 된다. 결혼 전 혼자 만의 공간에서 연습하고 책 보고 음악 듣고 조용한 카페를 좋아하던 나의 모습과 겹쳐진다.
아기 토끼들은 하루 종일 곰씨의 시간과 공간을 침범한다.
육아하는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가 태어나고 잠자는 것, 식사하는 것, 여유 있게 커피 한 잔 내려서 책을 보고 음악을 듣는 것, 꽃을 사서 집을 화사하게 꾸미는 것.. 이 모든 것들을 내려놓았다. 시간과 나의 에너지에 쫓겨 정말 전투적으로 억세고 드센 아줌마로 살아간다. 슬프다.. 결혼 전의 나의 과거를 알던 사람들은 현재 변해버린 나의 모습이 적응이 안 될 것 같다.
미련탱이 곰씨는 아기 토끼들 때문에 속으로 불만이 곪아 터지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꾹꾹 눌러 담는다. 그저 아기 토끼들이 자신의 의자에 앉지 못하도록 의자에 페인트를 칠하고 일인용 의자도 만들지만 아기 토끼들은 어떻게 서는 곰씨의 공간을 파고든다. 의자에 바위도 올려놓으려 했지만 결국 자기 발등을 찍는다. 의자에 똥도 싸보지만 비가 와서 실패하고 되는 일이 없다. 곰씨는 비를 맞고 쓰러진다. 아기 토끼들은 곰씨를 정성껏 간호하고 곰씨는 커다란 용기를 내서 혼자만의 시간을 달라고 말한다.
맞아. 곰씨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표현했듯이 육아가 힘든 것은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아기 토끼들처럼 끊임없이 엄마의 경계에 침범을 한다.
그리고 곰씨가 1년 동안 끙끙 앓으면서도 지키고자 했던 자신의 이미지. "세상에 다시없는 친절한 곰"
완벽한 엄마에 대한 허상을 내려놓자. 엄마도 사람이다. 엄마도 감정을 못 다스리고 쏟아내는 미성숙한 존재이다. 단지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그래도 내 아이들이 예쁘니까, 지켜주고 잘 키우고 싶다는 이타적인 마음이 있으니 소중한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엄마가 쉬고 싶을 때는 건드리지 말고 기다려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