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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Oct 26. 2022

나 엄마 딸로 태어나서 너무 기뻐.

부모를 향한 아이의 사랑

 어릴 때 엄마가 내게 해주신 특별한 스킨십이 있다. 바로 얼굴을 서로 마주 보고 노래를 부르면서 코와 코를 부딪치는 것. '코치기 코치기 코코코'라는 구절을 리듬감 있게 두 번 반복하면 되는데 '코치기' 부분에서는 코를 좌우로 비스듬하게 부딪치고, '코코코' 부분에서는 코를 마주 대고 코 끝을 세 번 콩콩콩 부딪치면 된다. 엄마가 지어낸 것인지, 원래 있는 놀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코치기 스킨십은 엄마와 우리만의 사랑 표현이 되었다. 그리고 소은이가 태어나고 아기 때부터 나도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코치기 노래를 불러주며 스킨십을 하곤 했다. 간지럼을 많이 타는 소은이는 내가 코치기를 하려고 하면 까르르 웃기도 하고, 어떨 때는 너무 신이 나서 코를 세게 부딪히는 바람에 코가 아플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주말 아침이었다. 잠에서 깬 소은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는데 소은이가 먼저 코치기를 제안했다.     


S: 엄마, 우리 코치기하자. 코치기 코치기 코코코~


 여느 때처럼 우리는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코를 부딪치고 서로를 끌어안았다. 코치기가 끝나자 소은이가 말했다.


S: 엄마, 이번엔 우리 뽀뽀하자.

M: 뽀뽀는 아직 안돼. 엄마 감기 덜 나았잖아.

S: 이미 내가 했는데? 아무렇지도 않았어.

M: 언제?

S: 엄마 어제 잘 때 내가 몰래했어. 히히.

M: 어머 그랬어? 엄마 몰랐네.


 나는 태연한 척 대화를 이어나갔지만 사실 소은이의 말에 코 끝이 찡해질 만큼 감동을 받았다. 내가 자고 있을 때 아이가 나 몰래 내 입술에 뽀뽀를 할 줄이야. 아이의 잠든 모습을 보며, 너무 사랑스러워 내가 뽀뽀를 한 적은 많지만, 아이가 내게 그런 행동을 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마를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소은이가 내게 물었다.


S: 엄마, 예쁜 여자 아가가 태어나서 좋았어?

M: 예쁜 여자 아이가 바로 너야?

S: 응, 내가 태어나서 엄마 좋았지?


 가끔은 이렇게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사랑 고백을 하기도 했다. 언제였을까, 소은이가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S: 나 엄마 딸로 태어나서 너무 기뻐.

 

 난 그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래서 소은이를 꼭 껴안아주며 말했다.


 M: 소은아, 엄마도 너를 낳아서 너무 기뻐. 엄마가 소은이 엄마라서 행복해.


 그럼 소은이는 내 품에 안겨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하루는 내가 끄적거린 그림을 보고 소은이가 물었다.

 

S: 엄마, 이거 뭐야?

M: 잉크가 번진 거야. 잉크가 많이 묻으면 이렇게 번질 수 있거든.

S: 그래도 난 예뻐. 엄마 꺼 봐도 봐도 예뻐. 나 이거 유치원에 가져갈 거야. 엄마가 그렸다고 할 거야.

 

 다섯 살. 아직은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최고일 나이. 엄마가 그린 그림을 좋아해 주고, 엄마가 하는 건 뭐든 예쁘게 봐주고, 엄마의 사랑이 아직은 최고인 시기. 그러나 나는 안다. 소은이가 한 살, 두 살 나이를 더 먹게 되면 어느 날 엄마가 못마땅해지고, 엄마가 싫어지고, 엄마의 사랑이 간섭으로 느껴질 때도 올 것이다. 어쩌면 부모를 향한 자식의 사랑은 반비례 곡선처럼 자녀의 나이가 들수록 아래로, 아래로, 내려갈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자식에게 서운할까, 아니면 예정된 수순으로 여기며 담담하게 마음을 추스를수 있을까.

 

 요즘 우리 부부가 소은이를 혼내거나 소은이에게 화를 낼 때면 소은이는 울먹이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리고 하는 말.


S: 엄마, 아빠. 나 안 사랑하지?


 처음에는 소은이가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봐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의 사랑이 부족했나? 어떠한 순간에라도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고한 믿음을 주지 못했나?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알았다. 사랑하는 연인이 다툴 때, '자기, 나 안 사랑하지?'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것처럼. 소은이도 자신의 마음이 상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결국 부모에게 '아니야. 엄마, 아빠는 너를 정말 사랑해.'라는 말이 듣고 싶어서임을.


 나는 그럴 때마다 아이에게 말했다.


M: 엄마가 화를 내고, 소은이를 혼내도 엄마는 너를 사랑해. 소은이가 잘못을 해도 엄마는 너를 사랑해. 소은이도 엄마에게 화내고 짜증 낼 때 있지? 그렇지만 그래도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지 않아?


 그럼 소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품에 안기곤 했다. 사실 소은이도 안다. 엄마, 아빠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저런 말을 하는 게 나는 마음 아팠다.


 얼마 전 소은이와 함께 본 그림책 중에 <엄마가 화났다>라는 최숙희 작가님의 그림책이 있다. 소은이가 세 살 때였나. 한참 육아가 힘들 때 이 책을 읽어준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소은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 내가 펑펑 울었다. 화를 내는 엄마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봤던 걸까. 하지만 소은이는 너무 어려서였는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다섯 살이 된 지금은 달랐다. 책에는 엄마가 불같이 화를 내자, 주인공인 산이가 사라져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뒷장에는 자장면으로 변한 산이가 등장한다. 소은이는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는지, 내가 소은이에게 화를 내던 날, 그림책을 가져와 그 장편을 펴서 내게 보여주며 물었다.


S: 엄마, 엄마가 자꾸 화내서 나 사라지면 어떡해? 이렇게 스파게티 되어버리면 어떡해?

<엄마가 화났다, 최숙희, 책 읽는 곰, 2011>


 천진난만하게 묻는 소은이를 보며 나는 가슴이 더 먹먹했다. 그 뒤로 소은이는 내가 혼을 내거나 야단을 치면, "엄마, 엄마도 그림책에 나오는 괴물 같아."하면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었다. 아이는 부모를 정말 많이 사랑하는데, 사랑하는 부모가 화를 내면 자신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구나. 엄마가 화를 내면 아이는 사랑하는 부모가 마치 괴물로 변한 것처럼 무섭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 그 동안 아이에게 화를 냈던 내 자신이  후회되었다. 그리고 이 날 이후, 아이에게 다시는 화를 내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물론 그 다짐을 지키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확실히 아이에게 울컥 하는 일이 줄었다.  


  언젠가 소은이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S: 엄마가 화내면 엄마가 덜 예쁘고, 엄마가 나 사랑해주면 엄마가 더 예뻐. 엄마가 화내면 내 기분이 어떨까?


 엄마가 화를 내도 안 예쁜 게 아니라 덜 예쁘다고 말하는 아이. 이런 아이에게 어찌 화를 낼 수 있을까.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 그리고 아이가 엄마, 아빠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을 만큼 무한한 사랑을 심어주는 것이 이제 나의 또 다른 목표가 되었다. 아이는 잘 키우기 위해서 낳은 게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낳은 거라는 어느 육아 전문가의 말을 떠올리며, 오늘도 더 많이 사랑하고, 안아주고 싶다.


 소은아! 널 키우며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엄마는 여전히 너를 사랑해. 소은이가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너무 기뻐. 부디 더 오래, 더 많이, 사랑하며 마주 보며 살자, 우리.


Photo by Kenny Krosk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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