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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Oct 06. 2022

내가 없는데 슬프지 않았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S: 엄마, 나 엄마 아빠 결혼식 사진 또 볼래. 엄마 이때 정말 예쁘다!


 우리집 안방에는 소은이의 손이 닿을 만한 곳에 작은 사진첩들이 진열되어 있다. 소은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씩 사진들을 모아 사진첩을 만들었고 언제든지 소은이가 펴볼 수 있도록 소은이의 키가 닿는 곳에 공간을 만들어두었다. 아이는 어릴 적 사진을 보고, '내가 이렇게 귀여웠어?' 하며 좋아하기도 하고 너무 어려서 기억하지 못하는 여행지를 사진을 통해 추억하곤 했다. 사진첩 사이에는 우리 부부의 결혼식 사진과 결혼 전 찍은 웨딩 스튜디오 사진도 있었다. 이날도 소은이는 우리의 웨딩 화보 사진을 꺼내 골똘히 보고 있었다.


S: 엄마, 아빠 행복해 보여.

M: 응, 정말 행복했지.

S: 내가 없는데?

M: 응?

S: 내가 없는데 슬프지 않았어?


 나는 말문이 막혀서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본인이 태어나기도 전인데 자기가 없어서 슬프지 않았냐는 아이의 말도 안 되는 질문. 그리고 사실은 아이가 없어도 너무 행복했던,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평화롭고 평온했던 그 시절 내 모습을 보며 나는 여러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아련하고, 그립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우리 부부만의 행복한 시절. 소은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지금 나의 삶은. 남편의 삶은 어떻게 달라져있을까?


M: 그때는 소은이가 태어나기 전이니까 엄마가 소은이를 몰랐어. 소은이는 엄마, 아빠가 결혼하고 나서 3년 만에 찾아왔거든.

S: 그럼 나는 어디 있었어?

M: 소은이는 원래 하늘나라에 있는 천사여서 하늘나라에서 놀고 있었는데 엄마, 아빠가 열심히 기도를 해서 하느님이 엄마, 아빠에게 보내주신 거야.

S: 아, 그렇구나.

M: 응, 그래서 소은이가 엄마 배 안에 있을 때 이름이 은총이잖아.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란 뜻이지. 그리고 소은이란 이름도 부를 소, 은혜 은. 은혜를 부르는 아이란 뜻이야.

S: 내 이름 정말 예쁘지?

M: 그럼, 예쁘고말고.


 나는 복잡한 감정들을 억누르며 소은이에게 하느님 얘기를 들려주었다. 사실이었다. 소은이를 갖기 위해 우리는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부부처럼 매일매일 하느님께 기도를 했다. 예쁜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를 내려달라고.


 하느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 소은이는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건강했다. 예민한 아이였을 뿐. 그 예민함이 나의 인생을 바꾸어 버릴 만큼 힘들었을 뿐.


S: 엄마, 그럼 하느님한테 전화해봐.

M: 응? 하느님은 핸드폰이 없는데..

S: 왜?

M: 하느님한테 핸드폰이 있으면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하느님은 핸드폰을 안 쓰셔.


 나는 하느님에게 전화를 해달라는 아이의 생각이 귀여우면서도, 정말 하느님과 통화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들었다. 막상 하느님과 통화가 된다면, 하느님께 가장 먼저 어떤 얘기를 꺼내게 될까?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왜 내게 이렇게 큰 시련을 주셨는지 목놓아 울지, 아니면 앞으로 제발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달라고 매달릴지 모를 일이었다.  


S: 그럼 하느님한테 어떻게 얘기하지?

M: 마음속으로 기도하면 되지. 하느님은 다 듣고 계시거든.

S: 하느님, 엄마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성부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아이는 고사리 같은 손을 휘휘 저어가며 어설프게 성호경을 긋고, 기도를 했다. 그 순간 마음 한 구석이 쿵 소리와 함께 내려앉았다. 아이는 엄마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데. 나는 잠깐이지만 진심으로 아이가 없을 때 행복한 우리 부부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었다니.


S: 나 잘하지?

M: 응, 우리 소은이 정말 잘한다. 그런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순서로 하면 되는 거야.


 나는 아이 손을 잡고 성호경을 다시 그려주었다.


 S: 엄마, 나 또 기도할래. 아빠가 화 안 내게 해 주세요. 엄마가 저랑 놀아주게 해 주세요. 아멘.


  두 번째로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요즘 소은이는 아빠와 자주 부딪쳤고, 남편도 예전과 달리 소은이에게 화를 내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나도 아이가 어릴 때보다 아이와 놀아주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다.


 M: 엄마가 소은이랑 잘 안 놀아줘?

 S: 응, 나 아기 때는 엄마가 많이 놀아줬는데. 이제는 안 놀아줘. 엄마 나 동생이 되고 싶어. 동생이 되면 엄마가 잘 돌봐주잖아. 응애응애 하고 울면 잘 돌봐주잖아. 다시 애기로 변해랴. 얍!


 이렇게 주문을 외우다니 응애응애, 아기 흉내를 내며 울기 시작하는 아이. 그 뒤로도 소은이는 곧잘 응애응애 소리를 내어 울면서 '엄마, 나 소은이 아니야. 은총이야.'라는 말을 하곤 했다. 소은이가 아니라 은총이로 돌아가고 싶다니, 심지어 동생이 없는데도, 아기 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소은이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내 몸이 아프고 나서, 소은이에게 쏟았던 에너지를 많이 거두어들인 것은 사실이었다.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데 바빠서 소은이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아이는 겉으로 말하지 않을 뿐, 다 알고 있었구나. 엄마의 사랑이 없어진 건 아니지만,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소은이의 방에서 역할 놀이를 하고, 아이와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장난감을 만지고 놀던 그 시절로. 아이는 이제 다섯 살에 불과하지만 오늘따라 왠지 아이가 더 훌쩍 커버린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제 소은이는 엄마보다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많고, 집에 와서도 엄마와 놀기보다 티브이를 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어쩌면 아이가 커가면서 당연히 겪는 과정일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엄마와 함께할 시간이 좀 더 많아도 괜찮을 텐데.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난다.


 소은이의 다섯 살 가을. 후회하지 않게, 오늘은 아이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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