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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Oct 30. 2022

이 세상의 모든 아픈 엄마를 위하여

 2021년 4월, 나는 유방암을 진단받았다. 10년 차 국어교사에서 하루아침에 암 환자가 되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나에게는 이제 네 살 밖에 되지 않은 지켜야 할 딸이 있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다. 진단 4일째 되던 날, 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가 가진 치유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암 진단 후 1년의 과정을 모아 첫 책 <유방암,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출간했다. 이 책은 유방암에 대한 치료 정보와 유방암 환자의 마음을 담았다. 환자의 시선에서 유방암 치유 과정을 기록했고 암을 치료하는 의사 선생님께 감수를 받았다. 질병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환우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책을 만들고 싶었고 감사하게도 나의 바람을 담은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첫 책이 유방암 환우들을 위한 책이었다면, 이번 책은 이 세상의 모든 아픈 엄마를 위한 책이다. 아프지만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엄마를 위한 책. 내가 암을 극복하고, 치유될 수 있었던 건 딸이 주는 위로와 사랑의 힘 덕분이었다. 때로는 암환자로서 아픈 엄마가 딸을 바라보는 애틋한 마음을 그렸고, 때로는 보통의 엄마가 아이를 키우며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담았다. 그래서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아픈 엄마라면 더더욱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39살 암환자 엄마와 다섯 살 딸이 주고받은 사랑의 메시지가 이 세상의 모든 아픈 엄마들에게 조금의 위로가 되길 바란다.    


 작년 가을, 표준치료를 마치고 다시 새로운 삶을 부여받았을 때 문득 아이와 나눈 인상 깊은 대화를 글로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지만, 여운이 길게 느껴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글로 써두면 휘발되지 않고 영원히 남게 되는 거니까. 내가 혹시 세상에 없더라도 아이가 엄마를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게, 우리들의 아름다운 순간을 남겨놓고 싶었다. 내가 죽더라도, 글은 남아있을 것이고, 그럼 아이는 글을 통해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니. 그렇게 나는 <아이는 말하고 엄마는 씁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며 아이와의 시간을 박제하기 시작했다. 암에 걸리고, 죽음에 대해 한번 생각하게 되니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그런데 아이와의 대화를 글로 옮기다 보니 글로 쓰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할 감정들을 만나게 되었다. 아이가 말하는 보석 같은 말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싶은 욕심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을 쓰며 아이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어른은 따라갈 수 없는 아이만의 천진난만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속에서 나의 마음도 정화되고 영혼까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처음 글을 쓸 때 글을 쓰는 기간을 1년으로 잡았다. 유방암을 진단받고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 1년의 과정을 유방암 투병 에세이를 썼다면, 이번 책에서는 표준 치료가 끝난 뒤 아이와 함께한 사계절을 글 속에 담아내며 엄마의 삶을 회복한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글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 왔다. 처음 글을 쓸 때 44개월이었던 아이가 어느새 아이는 자라 56개월이 된 것이다.


 모든 아이는 말한다. 그러나 모든 엄마가 쓰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말한 것을 기록하다 보면, 아이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고, 아이에게 내가 어떻게 대꾸했는지, 어떤 대화를 이어나갔는지를 좀 더 객관화해서 보게 된다. 사실 글을 쓰며 이 대화로 어떤 주제를 이야기할지 미리 구상한 적은 없다. 처음에 아이와 나눈 인상적인 대화를 적고, 거기에 대한 내 생각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글 한 편을 완성할 때마다 한 가지의 주제가 완성되었다. 글쓰기의 힘이다.     


 가능하다면 많은 엄마들이 어떠한 형태로든 좋으니 아이와 있었던 일, 아이와 대화한 일을 글로 남겨보면 좋겠다. 예전처럼 일기장에 직접 쓰는 것도 좋고, SNS를 활용해도 좋다. 그 분량이나 형식에 관계없이 그 소소한 기록들이 켜켜이 쌓이면 엄마와 아이의 역사가 된다. 먼 훗날 아이가 이 글을 보고, '아, 엄마가 이렇게 나를 사랑했구나.', '엄마와 내가 이런 대화를 나누었구나.',  '나의 어린 시절은 이러했구나.'를 아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글쓰기는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는 동안 많은 분들이 글을 읽어주시고,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봐주셨다. 소은이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분들에게도 소은이가 사랑받는 것을 보며, 감사하고 또 행복했다. 항상 글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아이가 말하는 반짝이는 말들, 그리고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지금 이 순간들이 활자로 저장되어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의 마음에도, 나의 마음에도 보석처럼 빛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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