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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naine Jul 19. 2022

심심한데 카페나 차릴까

퇴사하고 차린 카페의 시작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 시작은 언제나 어렵다.


언제일지 모르는 훗날 나의 노년은 조용한 곳에서 소소하게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것이 막연한 꿈이었다. 약 일 년 전 까지의 나는 일 년 뒤에 카페 사장이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고 커피는 생명수였으며 출근과 동시에 마시는 커피가 행복이고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 하는 것이 하루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동안은 나름 열심히 일한 뒤 한 템포씩 쉬어가게 해 주던 여행마저 코로나라는 변수로 못 가게 되어 일상이 재미없고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있었다.


집과 회사의 거리가 멀어 출퇴근이 힘들다는 핑계, 몇 년째 진급 누락이 되어 회사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들과 개인적인 일들까지 더해져 이직과 창업 중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직을 시도했으나 코로나 시국에 경력직 채용, 게다가 전문직도 아닌 30대 후반 미혼 여성의 채용은 대부분의 회사들에서 꺼려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하던 일이었으니까.


주 타깃으로 삼았던 스타트업의 관리직 업무 역시 너무 어린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터라 나이에 비해 많은 경력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나보다 어리고 뛰어난 친구들이 많았기에 내가 원하는 곳으로의 이직 기회는 나에게 오지 않았다. 사실 개인적인 다른 이유로 이직과 창업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었다. 경력이 있지만 이직에 대해 적극적이지도 않았고 부끄럽지만 모아둔 돈도 별로 없었으며 당장은 버티더라도 앞으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것은 나의 숙제였지만 구체적으로 구상을 한적도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라고는 약간의 손재주와 취미 부자라는 것. 무언가를 꾸준히 해본 적이 없다고 인지한 뒤 캘리그래피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퇴근 후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처음 출품했던 나름 큰 공모전에서 입선도 감사할일인데 특선을 받았고 마지막 2년 동안은 퇴근 후 도예를 배우며 주말에는 꽃꽂이 수업을 들으며 제과제빵과정까지 수료했다. 정말 어느 것 하나 나의 이직을 위한 경력에 도움 되는 것들은 없었고 오직 나의 취미생활이었으며 최대의 단점은 이 모든 것들을 잘하는 것이 아닌 애매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사람은 항상 배워야 한다고 취미로 배웠던 것들이 필요한 순간들이 찾아왔다.


자칭 집순이였던 나는 어느 순간 가만히 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고 그 가만히 있는 시간이 나를 뭔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고 가만히 있는 시간이 무섭고 견디기가 힘들었다. 몸은 피로감이 가득해서 쉬고싶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쉬는시간을 만들지 않았다. 다크서클은 얼굴밑으로 내려오고 있었음에도 불안감에 스스로 쉬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1년 가까이 쉬는 날이 하루도 없던 어느 날 사진속에 찍힌 나를 보게 되었고 사진 속에 있는 나는 살아있는것이 맞나 싶을정도의 표정과 이 세상의 걱정과 근심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어느 직장인이나 해봤을 것이다. 어차피 내 마음에 백 프로 드는 회사는 없다. 그동안은 동료들과의 유대감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난 뒤의 성취감과 함께 약간의 당근이 주어지는 것으로 회사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퇴사 2년 전 회사가 매각되고 회사의 분위기도 알게 모르게 긴장감이 가득했다. 그래도 돈을 벌어야 하니 버티자며 마음속으로만 생각해왔던 퇴사는 그맘때 찍힌 사진 속의 나를 보고 결심했다.


작년 6월,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데 친구가 밥을 먹자며 전화를 했고 다니고 있던 회사의 유일한 장점은 자유로운 휴가여서 선뜻 반차를 쓰고 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고 있었고 좋은 가게가 있는데 한번 보러 오라는 부동산 사장님의 전화. 그리고 두 시간 거리에 사는 건물주가 갑자기 그곳을 지나갔던 것. 그리고 말도 안 되게 그날 아침 인센티브를 받게 되어 딱 계약금을 낼 수 있는 돈이 통장에 있던 것부터 그날은 아침부터 뭔가 일을 저질러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그렇게 순식간에 창고로 사용하고 있던 상가를 계약하게 됐다. 계약을 마치고 잔금을 치르고 나서야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인수인계를 끝낸 뒤 8년간 재직했던 회사를 드디어 탈출했다.


잔금을 치르기 직전까지도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를 고민했다. 계약금을 날릴까하는 생각도 셀수없이 해봤다. 내 성격은 서비스직에 맞지 않는다. 가볍게 할 수 있는 스몰토크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며 카페를 하다 보면 당연히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 들이었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점심은 드셨냐는 인사가 어렵고 주말 잘 보냈냐는 가벼운 인사말이 나에게는 가장 힘든 일인 것이다. 어쨌는 도장은 찍었으니 뭐라도 하자고 생각했다. 회사를 계속 다니기는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무리가 있었으니까.


가게 계약 후 회사를 다니며 한 달은 인테리어 업체와 미팅을 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나머지 한 달은 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의욕적이지 않은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그냥 넘어갔고 퇴근 후 가보면 큰 공사는 거의 끝나 있었다. 공사가 많이 늘어지게 되고 퇴사하며 받은 퇴직금으로 월세를 내며 처음 예상한 설계도와 다른 모습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 동네에 이 정도 인테리어면 나머지는 커피맛 반, 디저트 반으로 채우겠다는 말도 안 되는 자신감으로 최대한 미루고 미뤄가며 11월 말 드디어 오픈을 하게 되었다.


퇴사는 8월 오픈은 12월 전.. 6월부터 월세를 지급했으니 반년치 월세는 시작 전부터 날린 것이 사실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싫어 싫어 병에 걸렸던 나는 최대한 천천히 일을 진행했다. 처음 해보는 자영업, 생각보다 준비할 것이 많은 서류들.. 그리고 코로나.. 이왕 시작했고 시간도 오래 걸렸으니 더 신경 쓰고 완벽하게 시작하고 싶었지만 역시 모든 것은 자본이기에 인테리어를 제외한 비용은 발품을 팔며 그동안 다녔던 여행에서 사 온 소품들도 하나씩 가져다 놓았다. 집에 있던 식물들도 가게로 옮겨놓고 몇 번이나 용인까지 가서 하나하나 골라왔던 테이블과 의자들 이태원의 빈티지 샵. 그리고 카페의 벽 미장은 나의 손재주를 굳이 믿으며 백신을 맞은 다음날부터 일주일 동안 혼자 하게 됐다.

남대문 시장과 방산시장은 한 달 내내 출퇴근하듯 드나들었지만 일은 진행되지 않고 혼자서만 바쁜 나날이었다. 오픈이 계속 미뤄지고 발등에 불 떨어진 느낌으로 카페 이름을 정하고 나니 로고도 만들어야 했고 이것저것 서류도 챙기고 비품들도 들여놓으며 정말 오래된 건물의 창고를 그나마 카페처럼 꾸며놓고도 한동안 지인들과 아지트처럼 사용했다.


오픈이 늦어지니 주변인들의 걱정어린 잔소리가 늘어났고 어차피 늦어진 거 나의 마음이 회복되고 난 뒤에 새로운 것들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주어진다 했어도 쉬지 못했을것이며 쉬었다고 한들 그것도 부족하다고 핑계삼았을것이 뻔하다. 나에게는 충분히 쉴 심적인 여유가 없었다. 아마도 이유는 회사 다니면서 얻은 번아웃이었을 테고 회복되지 않은 번아웃 상태에서는 나무늘보처럼 움직였다. 오픈은 생각보다 아주 많이 미뤄지고있었고 공사도 너무 오랫동안 진행됐지만 지금 생각해도 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였다.

주변에서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자영업이었고 생명수처럼 아침 점심으로 마시던 커피맛을 모를 리 없다 자신했지만 창업의 진입장벽이 그나마 낮다고 생각한 커피는 많이 어렵고 까다롭다는 것을 커피머신을 들여놓은 뒤에 알게 되었다. 아마추어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하루에 몇십 잔씩 마셔가며 연습을 하고 디저트 역시 수없이 많은 테스트를 하며 우여곡절 끝에 나의 미숙함을 가오픈이라는것에 숨긴채 오픈을 하게되었다.


그렇게 오픈 후 정신없는 한 달이 지났다. 어떻게 알게 된 건지 오픈 이튿날 커피로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다녀가서 인스타에 피드들을 올려주었고 오픈 초기의 주말은 혼자 있기 벅찰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이러다가 대박 나는 거 아니냐는 말도 안 되는 기대감을 가지며 시작했던 나는 요즘 내가 만든 예쁜 감옥에 하루 종일 갇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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